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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도루묵의 어원 : 도로 묵이라고 불러라

by 61녹산 2023.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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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목 > 도르목 > 도로목 > 도루목 > 도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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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조때 이야기다. 1592년(선조25)부터 약 6년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임진왜란으로 왜군을 피해 피란을 떠나는 것은 왕도 마찬가지였다. 피란을 떠나는 길에 먹을 것은 당연히 부족했고, 수라상 역시 점점 부실해졌다. 그렇다보니 식재료를 현지에서 급하게 구해야 했고, 선조가 함경도에 갔을 때 한 어부가 바다에서 잡은 ‘묵’을 진상했다. 힘든 상황에서 맛본 묵이라는 물고기는 너무나 맛있었다. 그래서 선조가 생선의 이름을 묻자 신하들이 ‘묵’이라 답했다. 맛에 감동한 선조는 천하일미인 생선에게 묵이라는 이름은 너무 하찮으니 더 좋은 이름이 필요하다며 그 자리에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새롭게 지어 주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궁으로 돌아온 선조는 고된 피란때 맛있게 먹었던 ‘은어’가 떠올랐다. 수라간에 이야기해 은어를 다시 먹었는데 그때 그 맛이 아니었다. 실망한 선조는 “은어라는 이름이 아깝다. 도로 묵이라 하여라”라고 했다. 그래서 묵은 은어에서 도로 묵이 되었다고 하여 ‘도루묵’이라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선조 임금 외에도 고려시대의 왕, 인조 등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지만, 묵에서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가 다시 묵이 된다는 전체적인 내용은 똑같다. 원래 생선의 이름이 묵이 아니라 ‘목(目, 木)’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따라서 ‘도루묵’이 아니라 ‘도루목’이기 때문에 한문으로 ‘환목(還目)’ 또는 ‘환목(還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루묵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알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16세기 문헌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루묵이 ‘돌목’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돌목’이 ‘도루묵’의 이전 어원이라면 ‘도로’라는 부사가 붙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상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돌목’이 사람들이 입에서 전해지면서 ‘도루묵’으로 변화한 것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경도에서는 아직도 ‘은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또한 ‘돌목’의 어원을 밝히는 것은 더 어려운 일로 현재 여러 가지 가설이 나오고 있다.

 

도루묵은 급류를 거슬러 올라와 알을 낳는 생선이다. 힘이 쎈 물고기의 살이 맛이 없을리 없다고 하지만 실은 도루묵은 별로 인기 있는 생선이 아니었다. 비린내는 적지만 감칠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도루묵은 15~25cm 정도의 크기로 등쪽에 흑갈색 혹은 황갈색의 반점이 있고, 배쪽은 은백색이다. 비늘이 없고 입이 크다. 알이 뽀득뽀득 소리가 나는 식감으로 별미로 꼽히는데 그 이유는 난막이 유난히 두껍기 때문이다. 주로 동해에서 잡히고 11월에서 12월 사이가 제철이다. 겨울철 동해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지역별미로 꼽히고 있다. 도루묵이 감칠맛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냥 구워먹기 보다는 절여두었다가 기름에 바싹 지져서 먹거나 양념을 더해 조림을 해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선의 선조가 몽진(임금의 피난길) 길에 얻어 먹은 '묵'이라는 물고이의 맛이 특별히 좋아서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재난이 끝난 뒤 궁으로 되돌아온 뒤에 그 물고기를 다시 먹어 보았으나 예전의 그 맛이 아니어서 '도로 묵이라고 불러라'라고 했다. '도루묵'은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다."

 

도루묵의 어원을 살피다 보면 제일 먼저 찾아지는 답이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면 이는 잘 꾸며진 민간어원에 불과할 뿐이다. 

 

도루묵은 16세기 문헌에 '돌목'으로 등장한다. '도루묵'의 어원은 바로 이 '돌목'으로부터 구해야 옳다. '돌목'만 보아도 '도루묵'이 부사 '도로(다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명칭이라는 사실이 분명해 진다. 돌목은 '관목(貫目), 비목(比目)' 등과 같이 '목(目)'이 들어가는 물고기 종류의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이름에 '목(目)'이 들어가는 물고기는 무엇보다 '눈'에 포인트가 있다. 관목은 눈이 관통되어 투명하고, 비목은 눈이 나란하여 외눈박이처럼 보인다. 그런데 돌목은 눈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돌목의 목이 目이 아닐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도루묵을 목어(木魚)라 한다는 점을 들어 '돌목'의 목을 木으로 보기도 한다. 

 

돌은 석(石)의 돌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도루묵이 산란기에는 연안의 바위 부근에 서식한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돌고기, 돌돔, 돌마자, 돌상어' 등에서 보듯 작은 돌이나 자갈 또는 바위 밑에 서식하는 물고기는 대체로 돌[石]을 이용하여 이름 붙여진다. 한편 '돌-'은 '질이 떨어지는'이라는 의미의 접두사일 가능성 또한 있다. 이와 같은 의미의 접두사 '돌-'이 '참게, 참고래, 참붕어'에 대응하는 '돌게, 돌고래, 돌붕어' 등에서도 확인된다. 도루묵이 지역에 따라서는 그물에 걸리면 버릴 정도로 하찮은 물고기로 여기지므로 얼마든지 '질이 떨어지는'이라는 의미의 접두사 '돌-'을 이용하여 명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접두사 '돌-'은 명사 '돌[石]'에서 온 것이다. 

 

돌목의 돌의 정체는 어느 정도 분석을 마쳤으나 '목'의 정체는 아직은 불확실하여 돌목에 대한 어원 해석은 미완성에 불과하다. 다만 돌목으로부터 도루묵까지의 변화는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 돌목에 조음소(발음을 쉽고 부드럽게하는 요소) '으'가 덧붙여 도르목으로 변한다. 이는 멸치가 며르치로 변하는 것과 동일한 모습이다. 도르목이 도로목, 도로묵을 거쳐 도루묵으로 변하는 과정은 너무 자연스럽다. (돌목 > 도르목 > 도로목 > 도로묵 > 도루묵)

 

 

도루묵
도루묵

 

 

돌목의 어원 해석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이것에서 변한 도루묵의 어원 해석도 자연스레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다만 도루묵이 

 

"도로 묵이라고 해라"

 

에서 온 말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도루묵의 옛 형태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청주 출토 순천 김씨 묘 출토 간찰 (16세기)에 기록된 ‘돌목’이다. 조항범 교수는 이 이름이 ‘’이라는 이름에 상대적으로 조잡한 생물에 붙이는 ‘돌-’이 붙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발음이 변하여 조재삼의 <송낭잡지>(19세기 후반)에 ‘도로목(都路木)’이라는 차자 표기가 확인된다.

조선시대 초에는 도루묵을 은어(銀魚)로 기록하고 있다. 이에 관련해 도루묵이란 이름에 대한 민간어원이 있는데, 원래 ‘목어(目魚)’이었던 물고기 이름을 왕이 그 맛을 좋아해서 ‘은어(銀魚)’로 바꿨는데, 싫증이 나 도로 목어(還目魚)로 바꿨다는 설이 그것이다. 이는 허균의 《도문대작》(1611), 이식의 시 〈환목어(還目魚)〉(1631), 이의봉의 《고금석림》(1789), 《난호어목지》(1820년경), 《송낭잡지》(19세기 후반) 등에 등장하는데, 후대로 갈 수록 왕이 피난을 갔다는 서사가 붙는 등 이야기가 각색이 된다. 조선 시대에 도루묵은 다른 종에 비해 품질이 낮은 물고기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현대에도 ‘말짱 도루묵’이라는 표현이 쓰인다. 《연려실기술》(17세기)에 ‘허적은 산적이 되고 허목은 도로목이 된다(許積爲散炙、許穆爲回目[魚名])’는 숙종 때의 유행어가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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