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와 박쥐’는 겉모습이 징그럽기 때문에 그리 호감이 가는 동물은 아니다. 먼저 두더지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6세기 경으로, 당시는 ‘두디쥐’로 적었다. 이후 ‘두더쥐’를 거쳐 오늘날의 ‘두더지’로 변했다(두디쥐>두더쥐>두더지). 뒷말 ‘쥐’는 그런대로 알겠는데, 앞말 ‘두디’가 어원풀이의 진행을 가로막고 있다. 언뜻 이해가 안되면 우리말 동사 ‘뒤지다’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사전은 뒤지다에 대해 ‘들추거나 헤집는 행동’이라고 적고 있다. 바로 동물이름 두더지는 ‘땅속을 이리저리 뒤지는 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두더지의 한자 표현도 매우 재미있다. ‘밭전’(田) 자와 ‘쥐서’(鼠) 자를 써서 ‘전서’라고 한다. 직역하면 ‘밭쥐’라는 뜻이다.
우리말 박쥐도 두더지처럼 행동 양태에서 이름이 생겨난 경우다. 앞말 ‘박’ 자가 어원풀이의 힌트가 되고 있다. 박쥐는 밤에만 활동하는 전형적인 야행성 동물이다. 따라서 옛사람들은 박쥐를 눈이 매우 밝은 동물로 생각했다. 바로 앞말 ‘박’ 자는 동사 ‘밝다’에서 온 말이다. ‘밝쥐’가 빠르게 발음되면서 ‘박쥐’로 변했다. 따라서 박쥐는 ‘밤눈이 밝은 쥐’라는 뜻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박쥐는 옛사람의 생각처럼 밤눈이 밝지는 않다. 거의 퇴화되어 시력이 제로에 가깝다. 두더지처럼 박쥐의 한자 표현도 재미있다. ‘날비’(飛)와 ‘쥐서’(鼠) 자를 써서 ‘비서’라고 한다. 우리말로 풀면 ‘날아다니는 쥐’가 된다.
다시, 시골의 밭 주변을, 특히 산으로 뒤덮여 있는 밭을 자세히 살펴보면 고르게 올라온 흙무더기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두더지'라는 놈이 뚫고 지나간 자리의 흔적들일 가능성이 높다. 두더지는 흙속에 사는 지렁이, 애벌레, 땅강아지 등을 잡아먹기 위해 땅 밑을 이리저리 쑤시며 다닌다. 흙을 헤집고 다닌다는 점이 두더지의 두드러진 습성인데, 이러한 습성이 단어 만들기에도 반영되어 있어 흥미롭다.
두더지와 관련하여 가장 이른 시가에 보이는 예는 15세기의 '두디쥐'다. '두디쥐'는 동사 '두디다'의 어간 '두디-'와 명사 '쥐'가 결합된 형태이다. 중세국어 '두디다'는 '이러저리 헤치거나 들추다'의 뜻으로 현대국어에 '뒤지다'로 남아 있다. '쥐'는 물론 지금의 쥐여서 두더지를 일종의 '쥐'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두디쥐'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헤치거나 들추는 습성이 있는 쥐처럼 생긴 동물'로 설명된다.
두더지는 땅에 굴을 파고 살며, 또 먹이를 찾기 위해 땅을 뒤지고 다닌다. 굴을 파고 땅을 헤치고 살기에 적합하도록 진화되어 주둥이가 뾰족하고 앞발이 삽 모양으로 넓은 것이 특징이다. 이로 보면 '두디쥐'는 대상 동물의 특징적 습성과 그 외양에 초점이 맞추어져 만들어진 단어임을 알 수 있다.
두디쥐는 옛시조에 구개음화된 '두지쥐'[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는 지금에는 쓰이지 않는다. '두디쥐'의 흔적이 경남 방언 '두디지'에 남아 있다. '두디쥐'에 이어서 등장한 단어가 17세기의 '두더쥐'다. '두더쥐'는 15세기의 '두디쥐'와 비교할 때 제2음절의 모음에서만 차이를 보인다. 그만큼 이 단어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방증해준다. 그리하여 '뒤더쥐'를 '두디쥐'에서 직접 변한 어형으로 보기도 하나 이러한 변화를 음운론적으로 설명하는 어렵다. '두더쥐'를 '두덕이'이라고도 했으므로 그것에 유추되어 '두디쥐'가 '두더쥐'로 변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분명한 것은 아니다.
'두더쥐'는 어느 시기인지 모르지만 '두더지'로 또 어형이 변한다. 19세기 말의 <한영자전 689 1897>에는 '두더쥐'로 올라 있으니 20세기 초의 <조선어사전 1938>에는 '두더지'로 올라 있다. 이로써 '쥐'와의 연계성이 점점 희박하게 변화해 왔다.
특이하게도 평안도나 함경도 지역에서는 '두돼지'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이는 '지'의 '쥐'와의 유연성(有緣性)이 상실되면서 엉뚱하게 생겨난 것이다. 얼핏 보기에 두더지의 주둥이가 돼지의 그것과 비슷하고 또 '더지'가 '돼지'와 음이 유사하기에 그것에 이끌려 '디지'를 '돼지'로 바꾸어 두돼지라 한 것이다.
이로써 보면 두더지가 쥐와 관련된 명칭이라는 점은 분명해지지만, 지에 선행하는 두더의 정체가 아직까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아서 두더지의 어원에 설명은 아직 미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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