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까래'란 ‘비탈진 지붕에서 지붕면을 만들기 위해 용마루의 마루대로 부터건물의 가로 방향으로 도리나 들보위에까지 걸쳐 지른나무'를 말한다. 요즈음의 콘크리트 건물에서는 ‘서까래'를 볼 수 없어서 이제 어린이 들에게‘서끼쾌'는 잊혀져가는 단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서까래'는 그 표기의 형태상으로 보아 더 이상 분석되기 힘든 것처럼 보인다. ‘서 + 가래'로 분석하자니 ‘서'와 ‘까래'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서 까와 ‘래'로 분석해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서까래'를 ‘혀'가 구개음화된 ‘서'와 ‘깔다[布]'의 어간인 ‘깔-'에 접미샤 ‘-애'가 붙어서 된 ‘까래'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단어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까래'는 ‘깔다'에 '애'가 합쳐져 만든 것으로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서까래'는 ‘까는'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까래'의 된소리는 ‘깔다'와 연관시킬 것이 아니고 앞에 사이시옷이 있어서 ‘가래'가 ‘까래'의 된소리로 된 것으로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이렇게 분석하면 ‘서까래'는 ‘서 + -ㅅ- + 가래'로 분석된다. 이때의 ‘서'와 ‘가래'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면 ‘서까래'의 어원은 자연이 밝혀질 것이다.
‘서까래'를 뜻하는 단어는 15세기에는 ‘셔'였다. 즉 ‘가래'가 붙지 않은 ‘셔' 자체가 오늘날의 ‘서까래'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두 푼 날애난 터러글 가잘비시고 셔난 뼈를 가잘비시니 <1463법화경언해, 2, 105b>
지븨셔 믄득 브리 니러 四面이 一時예 그 브리 다 盛하야 마라와 보콰 셔와 긷괘 뿍뚜기 소리 나 震動하야 쁴야디여 믈어 것거 뻐러디며 담과 바람괘 믈어디거날 <1463법화경언해, 2, 124b>
또 西方 麥相알 그리니 따해셔 퍼 나 집 웃 셔랄 더위잡게 하얏도다(又揮西方 變發地扶屋椽) <1481두시언해, 16, 28b>
이처럼 ‘셔' 자체가 오늘날의 ‘서까래'를 뜻하는 단어로 쓰였던 것은 18세기까지 계속된다.
셔 연(椽) <1527훈몽자회, 중, 4a>
셰 연(椽) <1664칠장사판유합, 14b>
셔 연(椽) <1700영장사판유합, 14b>
셔 연(椽) <1781왜어유해, 상, 32a>
그러나 17세기에 와서 이 ‘셔'에 두 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하나는 ‘셔'가 ‘혀'로 변화하는 현상이고, 또 하나는 이렇게 새로 생겨난 단어 ‘혀' 에 ‘가래'라는 단어가 합쳐지는 현상이다.
혀(椽), 혀 거다(擺椽)<1690역어유해, 상, 19a>
한 빵 귓바회와 열 자길의 꼬리와 혓가래 굴긔예 네 오리 노흐로 쇠 술위예 매고<1677박통사언해, 하, 46a>
‘혀'가 ‘셔'로 변화하였다면 ‘형님'이 ‘성님'으로 변화하는 것과 같은 구개음화가 일어났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셔'가 ‘혀'로 변화하였으니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7卄 두 가지 해석 방법이 았을 것 같은데, 하나는 15세기부터 ‘혀'가 ‘셔'로 구개음화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과도 교정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弓 구개음화는 대개 16세기 이후에 남부 방언형에서부터 나타나는 현상이어서, 15세기에 이미 ‘혀'가 ‘셔'로 구개음화되었다는 해석은 억지이다. 그래서 ‘혀'가 ‘셔'로 과도교정 되었다고 해석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다. 과도교정이란 화자가 구개음화가 일어난 어형을 비표준어로 생각해서 구개음화가 일어나지 않은 어형으로 잘못 고쳐서 말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컨대 ‘질들이다'를 ‘길들이다'로 잘못 바꾸거나 ‘점심'을 ‘겸심'으로 잘못 바꾼 예들 같은 것이다. ‘길들이다'는 원래는 ‘질들이다'가 바른 어형이었는데, 이것이 ‘길들이다'에서 구개 음화된 형태로 착각히여 표준어로 바꾼다고 ‘길들이다'로 잘못 바꾼 것이고, ‘점심'은 원래 ‘뎜심'이 구개음화 되어 생긴 단어인데, 이것이 마치 ‘겸심' 에서 구개음화된 어형으로 잘못 알고 원래 구개음화 이전의 형태로 바꾼다고 바꾼 것이 잘못 바꾸어서 ‘겸심'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길들이다'는 표준어가 되었지만, ‘겸심'은 아직도 방언형이다.
이처럼 과도하게 교정을 해서 ‘셔'를 ‘혀'로 바꾼 것이다. 그래서 ‘셔'가 ‘혀'로 변회하고 이 ‘혀'와 ‘가래'가 통합되어 합성어가 되었는데, 그 과정에 ‘혀'와 ‘가래' 사이에 사이시옷인 ‘ㅅ'이 들어가 ‘혓가래'가 등징하게 되었다. ‘가래'는 ‘갈래'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가르다[分]'를 뜻하는 단어였던 ‘갈다'의 어간 ‘갈-'에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애'가 붙어서 생긴 단어이다. ‘가래떡'의 ‘가래'와 같은 것이다. ‘서까래'와 ‘가래떡'의 모습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腰絰은 크기 닐곱 치 남작하니 두 가래랄 서라 꼬아 두 머리랄 매자 <1632가례언해, 6, 3b>
결국 ‘혓가래'는 ‘서까래의 갈래'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서까래'가 들보 위에까지 갈라져 나온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혓가래'의 발생으로 동시에 사용되고 있었던 ‘셔'도 ‘셧가래'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셧가래'는 ‘셔 + -ㅅ- + (갈- + -애)'로 분석되는 것이다. 가끔 ‘셧가래'와 같은 표기도 등장한다.
셧가래(椽) <1768몽어유해, 상, 269, 26a>
셧가래 <1748동문유해, 상, 35a>
대문짝도 간대 업고 듕문깐도 흔허지고 압뒤 벽은 잣바지고 셧가래난 고의 벗고 방안의난 하늘 뵈고 마당의난 꼴을 븨고<18xx남원고사, 4, 35b>
그래서 19세기 말에는 ‘셧가래'와 ‘혓가래'의 두 가지 형태가 다 나타나서 사전에 이 두 가지 형태가 다 실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셧가래 혓가래(椽木) <1880한불자전, 408>
이 ‘셧가래'의 ‘샷의 ‘ㅅ'이 ‘가래'의 ‘ㄱ' 음에 동화되어 ‘셕가래'가 된 도 18세기의 일이다. ‘셕가래, 석가래, 석가릐' 등으로도 표기되기도 하고, ‘에'와 ‘애'가 중화되어‘셕가레'로도 나타나기도 한다.
오량각 셕가래 우 아래 가막 다흔 것(簷椽閱) <18xx광채물보, 궁실, 2a>
관새 다만 가레만 남앗시대 슈리할 돈이 업난지라<17xx진쥬탑, 163>
석가래(椽木) <1895국한회어, 175>
땅을 파고 석가래를 버틴 후 그 우에 흙을 덥고<1925지형근, 1, 93>
석가래끼지 비들기장처럼 파란 펜키칠을 하였고<1936상록수, 36>
부엌 석가래에 목을 매고 늘어진 시체를 제 손으로 풀어 내려 놓아야 했었다.<1938쑥국새, 290>
이것이 어중에서 된소리가 되어 ‘서까래' 등으로 나타나는 시기는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언제든지 家具와 같이 주저앉었거나 서까래처럼 드러누웠거나 하였다. <1949공포의기록, 153>
주춧돌이 놓이고 기둥이 서고 보자 오르고 서까래가 걸렸다<1932흙, 131>
서까래가 탁탁 튀는 소리와 함께 <1933영원의미소, 296>
‘서까래'는 원래 ‘서까래'를 뜻하는 ‘셔'가 그 원래의 형태이었는데, 여기에 ‘기르다'를 뜻하는 동사 ‘갈다'의 어간 ‘갈-'에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애' 가 통합된 ‘가래'가 붙어서 합성어가 되면서 그 가운데 사이시옷인 ‘ㅅ'이 들어가 ‘셧가래'가 되었던 것인데 이것이 음운변화를 일으켜 오늘날의 ‘서까래'가 된 것이다. 그런데 ‘셔'를 과도교정하면서 ‘혀'가 등장하면서 ‘서까래'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혓가래'와 ‘셧가래'가 그것이다. 그래서 17세기부터 두 가지 형태가 다 나타나며, 그 결과로 오늘날 일부 남부 방언(경상도 지역)에 ‘혀까래'도 님아 있는 것이다.
서까래라 함은, 목조건축물의 골격이 완성된 다음, 도리와 도리 사이에 도리와 직각이 되게 걸쳐놓는 건축 부재(部材)를 말한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여러 개를 올려서 그 위에 산자나 서까래개판을 깔 수 있도록 한다. 주심도리주13나 외목도리주12의 밖으로 내밀어서 처마가 생기도록 한다. 서까래는 그 형태에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단면의 형상이 원형인 것과 장방형인 것의 두 가지인데, 대부분의 집에서는 원형이 채택되고 있다. 근 통나무를 그냥 쓰면 연(椽), 방형(方形)으로 다듬어서 쓰면 각(桷)이라 부른다. 도리와 도리는 높이에 차이가 있어서 서까래는 자연 경사를 이루게 되는데, 이것을 물매라 한다. 서까래의 물매는 집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 비슷하며, 비가 많은 남부지방에서 비교적 센 물매를 가진다.
집이 삼량가(三樑架)이면 장연(長椽)으로만 구성되지만, 오량가(五樑架) 이상이면 장연과 단연(短椽)으로 나누어지고, 아주 큰 집에서는 중연(中椽)이 더 있는 경우도 있다. 장연은 주심도리와 중도리 사이를 덮으면서 처마를 이루는 부분까지를 이르고, 단연은 종도리주15에서 중도리 사이를 덮는 것으로 그 길이가 짧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붕의 구조가 팔작이나 우진각, 또는 삿갓지붕이 되면 추녀가 걸리게 되고, 처마의 앙곡을 잡아주기 위하여 선자서까래가 구성된다. 선자서까래를 간략하게 꾸미는 방법으로 엇선자 · 말굽선자도 있다. 서까래의 간격은 서까래의 굵기와 관계가 있는데, 대략 한자[一尺]가 많이 쓰인다. 초가에서는 지붕의 무게가 가볍기 때문에 서까래가 가늘어지지만 그 간격은 대략 한자 내외이다. 기와집에서는 서까래가 굵어지더라도 그 간격을 한 자 두 치 이상 넓게 하지는 않는다. 보통 규모의 기와집일 경우 서까래의 굵기는 직경이 5치[五寸]이고, 간격은 굵기의 배인 한자가 표준이다.
오량집의 경우, 장연과 단연은 중도리에서 서로 엇비껴 만나게 된다. 그 중심축선이 교차되는 지점에 구멍을 뚫고 도리방향으로 꿸대를 꽂는다. 이 꿸대는 싸리나무가 주로 쓰이며, 연침(聯針)이라고 부른다. 서까래와 도리를 결구하기 위하여 연정(椽釘)을 박는데 서까래의 굵기에 따라 광두정(廣頭釘)으로 길이가 7치 내지 한 자짜리를 쓴다.
서까래의 치목(治木)은 둥근서까래의 경우, 처마의 끝부분을 약간 가늘게 후려 준다. 서까래가 다섯 치이면 말구의 지름은 네 치 반 정도가 된다. 서까래 위에 덧붙이는 부연(副椽)이나, 박공부분에 설치되는 목지연(木只椽)주9은 각(桷)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서까래라 할 수 있으나, 통상의 서까래와는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도리와 도리 사이에 높이의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규모가 작은 일각문이나 평사량(平四樑)에서 나타나는데, 서까래가 수평으로 걸리게 된다. 이 경우 지붕의 물매는 헛서까래를 써서 잡아 주어야 한다. 수평으로 걸린 서까래는 평서까래[平椽]라 부른다. 헛서까래는 밑에서 보이지 않게 되는 것으로 팔작이나 우진각의 상부 양측에 지붕의 물매를 잡아주기 위하여 거는 경우가 있다.
서까래는 지붕 구조에서 최상단에 위치하며 갈비뼈처럼 생긴 기와나 지붕재를 떠받치는 구조이다. 서까래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중요한 건축 구조이며 선사시대부터 서까래 구조가 등장한다. 한국 전통 건축에서는 지붕에 얹어진 둥그런 나무가 서까래이다.
먼저 한국의 서까래는 곡선미가 있다. 한 점에서 뻗어나가는 방사형 배치로 직사각형에서 균등하게 직각으로 뻣어나가는 평연 구조에는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 한국형 방사형 배치는 선자연(扇子椽)이라고 부른다. 추녀마루에서 방사형으로 부채살 모양으로 배치가 되는데 그냥 나무만 직각으로 배치하면 끝나는 평연과는 달리 나무를 상당히 깎아내 쐐기모양으로 만들어 끼워 맞추기 때문에 난이도가 상승한다. 때문에 서민의 집에서는 세미 선자연인 마족연(馬足椽/말발굽 서까래)을 사용한다.
중국은 서까래 배치 양식이 주로 말발굽 모양의 마족연으로 되어있다. 일본은 마족연, 평연(平椽/나란히 서까래)을 둘다 사용하나 평연이 압도적으로 비율이 높다. 평연은 그냥 직각으로 배치하면 된다. 한국에서는 단청도 기하학적인 무늬로 화려하게 칠한다. 반면 일본은 단조롭게 칠하여 정갈하고 담백한 느낌이 장점이다. 마족연, 선자연, 평연 이 셋 중에서 가장 구사하기 어려운 배치는 선자연이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서 주로 궁궐이나 중요한 건물에 쓰였다.
일본은 서까래를 매우 단순하게 배치하는 절제된 수수한 미가 있다. 곡선이 적게 들어가고 평연 배치의 경우에는 곡선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서까래의 단청도 끝에 흰색으로 칠하는 것이 전부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물에도 평연 배치를 사용한다는 점이 중국, 한국과 다르다. 평연을 좋게 평가하자면 단순 담백미나 높은 생산성이 장점이다.
지붕판을 만들고 추녀를 구성하는 가늘고 긴 각재(角材). 서까래[椽木]는 처마도리와 중도리 및 마루대에 지붕물매의 방향으로 걸쳐 대고‚ 지붕널을 덮는다. 서까래는 보통 5cm 각재를 45cm 간격으로 도리에 큰못질한다.서까래의 이음은 도리 위에서 맞댄이음으로 큰못질하고‚ 이음 위치는 서로 엇갈리게한다. 지붕 귀에 오는 서까래는 길이가 모두 다르며‚ 추녀 옆 또는 위에 큰 못으로 박는다. 귀서까래는 일반면에 있는 평서까래에 평행으로 걸 때와 귀의 한 점에부챗살처럼 되게 걸기도 하며‚ 서까래의 연장선상의 한 점에 모이게 하여 방사형으로거는 법도 있다. 평행으로 댄 서까래를 평행귀서까래‚ 방사형으로 댄 것을 말굽서까래[馬足椽]라 하며‚ 부챗살 모양으로 댄 것을 선자서까래[扇子椽]라고 한다.
목조건물의 처마 끝에 나와 있는 둥근 서까래, 즉 椽木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백제에서 매우 성행하였던 기와이다. 수막새의 가장자리가 생략하고, 가장자리를 치밀하게 깎아내어 제작한 것일 뿐, 8개의 연꽃잎으로 이루어진 연화문 수막새 기와와 큰 차이가 없다. 회청색을 띠며 경질로 구워져 단단하다. 태토는 가는 사립이 많이 섞인 점토가 사용되어 표면이 거칠다. 뒷면에는 가는 布자국과 손누름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연꽃잎의 볼륨이 매우 크고 꽃잎 끝 부분의 장식이 거의 없는 형태이다. 직경 3.7cm 크기의 子房에는 6顆(1+5)의 蓮子를 도드라지게 표현하였으며, 가운데에는 0.7×0.7cm 크기의 네모난 구성을 뚫어 쇠못을 박아 서까래에 부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양식의 연화문 서까래기와는 부여 군수리사지, 익산 미륵사지 등 사비도읍기의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6세기 후반·7세기초를 중심으로 한 사비도읍기 연화문 수막새 기와 양식을 따르고 있다. 특히 미륵사지 출토 서까래기와는 綠釉를 시유하여 구운 것으로 화려한 장식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로부터 “서까래 없는 지붕은 없다”는 말이 있다. ‘한옥’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너른 기와로 이은 지붕이며, 그 지붕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서까래다. 다시 말하면 전통 한옥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는 지붕에 반드시 덧대줘야 하는 것이 ‘연목(椽木)’ 즉 서까래다. 사전적인 의미로 ‘지붕 밑을 지탱하고, 지붕의 형을 만들고 있는 사재(斜材, 비스듬히 세우는 목재)’라는 뜻을 지녔는데, 지붕을 지탱해주는 만큼 서까래를 견고하게 박아야 튼튼한 지붕을 올린 한옥이 완성된다.
서까래는 용마루로부터 도리에 걸쳐진 끝을 돌출시켜 처마를 형성하는데, 가늘고 길며 단면이 둥글거나 사각형이고, 그 위에 판자 또는 대를 박아 지붕면의 바탕이 된다. 서까래를 올리는 방법은 먼저 처마도리와 중도리 및 마루대에 지붕 물매의 방향으로 걸쳐 대고 지붕널(지붕의 중도리나 서까래 위를 덮는 널빤지)을 덮는데, 보통 5㎝ 각재를 45㎝ 간격으로 도리에 못질을 한다. 서까래의 ‘이음’은 도리 위에서 서로 맞댄이음으로 큰 못질을 하며, 이음 위치는 서로 엇갈리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붕 귀에 대는 서까래의 길이는 모두 다르다. 각기 다른 형태에 따라 종류를 구분할 수 있는데, 직접 처마도리에 올려놓는 ‘바탕서까래’, 끝에 겹쳐 놓는 ‘비첨서까래’, 평행으로 댄 ‘평행귀서까래’, 방사형으로 댄 ‘말굽서까래’, 부챗살 모양으로 댄 ‘선자서까래’ 등과 그 외에도 ‘홑처마서까래’ ‘귀서까래’ ‘평서까래’ 등이 있다.
이처럼 서까래는 서로 다른 길이에 다른 모양을 지녔지만, 각각 다른 형태로 맞물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올려 지붕을 받쳐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서까래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두꺼운 판자를 댄 지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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