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 ‘여편네'는 ‘결혼한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되 어 있다. 그런데 ‘여편네'를 남편의 ‘옆'에 있어서 ‘여편네'가 된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즉 ‘옆편네'가 ‘여편네'가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여편네'를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로 인식할 정도로 ‘여편네'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단어가 되어 있다. ‘여편네'의 ‘여편'은 한자어이다. 남편(男便)에 대해 여편(女便)이 있었던 것이다. 「가례언해」(1632)에 ‘녀편은 남편의 長幼로뻐 차례하고'란 문장이 나오는데, 여기에 ‘남편'에 대립되는 ‘녀편'이 보이고 있어서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여편네'에서 ‘네'를 뺀 ‘여편'이 쓰이지 않아, 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지만, 옛 문헌에는 ‘여편'의 옛날 표기인‘녀편'이 단독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俱夷난 발간 녀펴니라 하논 쁘디니<1459월인석보, 1, 9b>
일홈으로뻔 어딘 녀편이라 일칻고<1659여훈언해, 24a>
이 문장에서 보듯이 ‘녀편'은 단지 ‘남편'에 대립되어 사용하는 단어였지, 오늘날처럼 낮추어 보는 의미는 없었다. 그런데 옛날부터 ‘여편'과 ‘남편'에 대한 어원의식 속에 ‘여'와 ‘남'의 대립은 있었지만, ‘편'이 ‘便'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잘 인식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일찍부터 ‘녀펜'과 ‘남편'의 ‘녀'와 ‘남'은 ‘女'와 ‘男'으로 표기하였으되, ‘편'은 ‘便'으로 표기하지 않는 현상까지도 등장한다. 다음 예문에서 ‘녀편'의 ‘녀'는 한자와 한자음을 다 달았지만 ‘편'에는 한자를 쓰지 않고 있는 것이 그러한 의식을 말해 준다.
오직 願호되 모단 어디신 女편아 므스글 求하나뇨(惟願諸賢女아 有何 所須오) / 女편니 닐오대(女ㅣ운호대)<1567몽산화상육도보설, 39b>
‘女便아 / 女便니'로 표기하지 않고 ‘女편아 / 女편니'로 표기한 것은 ‘편' 의 한자를 의식하지 못한 결과로 해석된다. 이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을 한자 ‘男便'으로 표기한 예가 그리 흔하지 않았고 또 그러한 표기 는 19세기에나 가서야 발견되기 때문이다.
오직 婦人의 남편 셤교만 삼가디 아니호미 몯하리며 <1475내훈언해, 2, 99a>
아모 姓 아잠의 남편이며 아모 姓 넛할믜 남편이라 하고<1586소학언해, 6, 75a>
남편(男便) <1880한불자전, 264> <1895국한회어, 57>
閣氏네 내妾이 되옵거나 내 閣氏네 後ㄷ 男便이 되옵거나 <1876가곡원류>
自己 男便이 期米를 하여 가지고<1921빈처, 174>
그래서 후대의 많은 사전, 예컨대 조선총독부의 「조선어사전」, 문세영의 「조선어사전」, 조선어학회의 「우리말큰사전」에는 ‘녀편네'나‘여편네'에 한자를 표기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남편'에 대해서는 모두 ‘男便'이란 한자를 달아 놓아 그 어원이 한자어임을 알리고 있다. ‘남편은 한자로도 표기되지만 ‘녀편네'의 ‘녀편' 이 한자로 표기된 예가 없어서 그러한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편 대 여편의 대립은 분명하고 그 뜻도‘남자 편,여자 편'을 뜻하기 때문에 ‘녀편'의 어원이 한자 ‘女便'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 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여편네'의 ‘여편'에 한자 ‘女便'을 달아 놓은 것이 한자어가 아닌데 한자를 달아 놓았다는 비판을 받을까 걱정이다.
이처럼 ‘녀편'이나 ‘남편'은 ‘네'나 ‘내'를 붙이지 않고 사용되다가 ‘녀편네 /녀편내/녀편늬'나 ‘남편네/남편내/남편늬'처럼 복수의 접미사 ‘네'나 ‘니'가 붙게 되었다. 주로 16세기부터 이러한 예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나17세기 이후에 ‘남편네'는 보이지 않는다.
녀편네난 잠깐도 사괴여 놀옴이 업서<1586소학언해, 5, 68b>
뎡시난 거챵현 사람이니 유학 니경일의 안해라 녀편네 덕이 잇더니 <1617동국신속삼강행실도, 열6, 49b>
녀편내(女人)<1895국한회어, 60>
배예 오라라 하여날 남편내 겨시다 하니<1636병자일기, 252>
남편네난 누른 댱삼 가탄 거살 닙고<1636병자일기, 252>
이때의 ‘녀편네'와 ‘남편네'는 낮추는 뜻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녀편네'가 오늘날처럼 낮추어 말하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근대국어 시기인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원래 '-네'나 ‘내'가 존칭 표시의 체언에 붙는 복수 접미사였는데, 근대국어에 와서 ‘쇼인네'나 ‘우리네 살림살이'에서처럼 평칭이나 자기겸양을 나타내는 말에 쓰이게 되면서 복수의 의미보다는 낮추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여편네'가 낮추는 말로 된 것이 다. 남자를 낮출 때에 지금도 ‘남정(男丁)'에 ‘네'를 붙여 ‘남정네'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아내’을 지칭하는 말이 참으로 많다. ‘내자, 안사람, 마누라, 여편(네), 와이프…’ 등등 참으로 많은 단어들이 있다. 과거에 필자의 전화기에 아내를 ‘마누하님’이라고 저장해 놓았더니 아내가 투덜거렸다. “도대체 ‘마누라’가 뭐냐?”는 말이다. 사실 마누하(마노라)라고 하는 것은 상당한 극존칭인데 듣기에 따라 어색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우리말에서 “00하!”라고 하면 신분이 높은 사람을 부를 때 쓰는 호격 조사다. 3·1절 노래 중에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높으신 선열은 “선열하”, 동등한 동포는 “동포야”라고 부른다. 아무튼 왕족에 준하는 사람을 부를 때 ‘마노라, 마누하(님)’이라고 했다.
아내라는 말은 예전부터 사용하던 말이다. 흔히 ‘안사람’이라고 한다. 우리 전통 풍습에 아내는 안채에 거(居)하게 마련이고, 남자는 바깥채(사랑)에 거한다. 그래서 안에 사는 사람을 지칭할 때 ‘안사람’ 혹은 ‘안해’라고 했다. 요즘 흔히 ‘집안에 있는 태양(해)’이라는 의미로 안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민간어원설이다. 실제로는 ‘안(內)’과 ‘해(人)’의 합성어이다. 예전의 책 <소학언해>에 보면 “六淑(육숙)의 안해ᄂᆞᆫ”이란 문장과 “빙외랑(馮外郞) 안해의 머릿 단장이” 등의 문장이 보인다. 여기에 나온 ‘안해(妻)’가 현재의 ‘아내’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해’가 어떻게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또한 문헌을 보면 알 수 있다. ‘아해(兒)’, ‘사나희(男)’, ‘갓나ᄒᆞㅣ(女)’ 등에 나타난 ‘해’가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말하는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라고 할 때의 ‘이’와 같다.
한편 남편을 말할 때는 ‘바깥양반, 영감(?)’ 등으로 아내를 일컫는 말보다 다양하지 않다. 그저 남편이라고 부르는 것에 족하다. 남편이라는 말은 ‘남자(男) 쪽(便)’이라고 단순하게 하는 표현에 불과하다. 사전에도 “결혼한 남자를 그 아내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나타나 있다. “남쪽 방향” 이를 때도 남편이라고 한다. 예전엔 남편 대신 ‘장부’라는 표현을 많이 했던 것 같다. 1890년 대에 나온 소설을 보면 대부분 남편을 지칭할 때 ‘장부’라는 표현을 한 것이 제일 많다. 그 외에 부군이나 서방이라는 표현도 하지만 서방은 낮춤말로 인식되어 왔다.
남편의 반의어를 찾으면 ‘아내’라고 나온다. 남편의 반의어라면 당연히 ‘여편女便’이 되어야 맞을 텐데, 어쩌다가 이리 되었는지 모르겠다. 여편네(예편네-여편네의 방언)을 사전에서 찾아 보면 “1. 자기 아내를 얕잡아 이르는 말 2. 결혼한 여자를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나타나 있다. 예문으로는
노름에 미쳐 나면 여편네도 팔아먹는다.
여편네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
등과 같다. ‘계집’이라는 우리말이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 된 것처럼 옛문헌에 나오는 계집이라는 단어는 “아내를 얕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볼 때 남자는 남편, 여자는 여편이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은데, 의미를 따지고 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언어학에서 의미론이 중요하다. 커피 마시러 가자고 해도 필자는 ‘믹스 커피’를 생각하고, 젊은이들은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생각한다. 필자의 아내는 ‘라테’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언어는 자의성이 있어서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적용될 수 있으니 말하고자 할 때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서 말하는 것이 좋다.
지난 5월 21일은‘부부의 날’이었다. 이날 아내에게‘여보!’라고 부르면서 꽃을 전달했다면 어땠을까. 아내는‘당신! 웬일이야!’하면서 애들처럼 좋아했을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부를 때 보통 < 여보 >라고 한다. 여보는 한자로 쓰면 < 如寶 >이다. 같을 여(如), 보배 보(寶)이다.
풀이하면 < 아내는 보배와 같이 소중한 사람 >이라는 의미다. 물론 < 여보 >가 < 여기 보오 >의 준말이란 설도 있다. 반대로 여자가 남자를 부를 때 < 당신 >이라고 많이 한다. 한자로는 < 當身 >이다. < 당할 당(當), 주관할 당(當) >, < 몸 신(身) >으로 < 내 몸과 같다 >는 뜻이다.
한편 먼 옛날에는 아내가 남편을‘서방님,‘낭군, 나리’로 불렀다. 남편은 아내를‘각시, 마님, 부인’이라고 했다. 부부가 함께 쓰던‘자네, 임자’도 있다. 그 외에도 남편을‘영감, 그이, 저이, 그분, 집주인, 신랑, 아기 아빠’, 아내를 ’내자, 이녁, 집사람, 아기 엄마‘ 등으로 불렀다.
‘마누라’라는 말은 본래 옛날 궁중에서 상궁이나 후궁과 왕비를 부르던 삼인칭 극존칭이다.‘영감’은 조선 시대에 3품 이상의 벼슬아치다. 현대에 와서도 사법고시를 패스한 검사쯤은 돼야 들을 수 있는 귀한 호칭이다.
마누라는 '마주보고 누워라'의 준말이기도 하다. 여편네는 '옆에 누워 있네'에서 왔다. 세월이 가면 어릴 적 친구와 이웃도 친척들도 다 곁을 떠나게 된다. 마지막까지 내 곁을 지켜줄 사람은 자녀들이고, 남편이고 아내다.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며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요즘에 `마누라`는 약간 다르다. 지금은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그것도 같은 지위나 연령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아내를 지칭할 때나 또는 아내를 `여보! 마누라` 하고 부를 때 많이 쓴다. 다른 사람의 아내를 낮추어 지칭할 때, 예를 들면 `주인 마누라` 등으로 쓰이기도 한다.
원래 `마누라`는 `마노라`로 쓰였다. `노비가 상전을 부르는 칭호`로, 또는 `임금이나 왕후에게 대한 가장 높이는 칭호`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대비 마노라, 대전 마노라, 선왕 마노라'처럼 마마와 혼용되어 쓰이던 극존칭어다. 높일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그리고 부르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부르던 것이었다.
옛날에는 남편보다도 아내를 더 높여서 불렀던 모양이다. 남자는 기껏해야 `정삼품`으로 생각했는데, 아내는 `왕이나 왕비`로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마누라`와 `영감`은 대립어가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지위가 낮은 사람이 그 웃사람을 `마누라`라고 부르거나 대통령이나 그 부인을 `마누라`라고 부르면 큰 일 난다. 큰 싸움이 나거나 국가원수 모독죄로 붙잡혀 갈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것이 아내의 호칭으로 변화하였는지는 아직 명확히 알 수 없다. 조선왕조가 쇠퇴하면서 봉건시대가 막을 내리기 시작할 무렵, 늙은 부인 또는 아내를 가리키는 낮춤말로 변해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 말에는 남성이나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 여럿 있다. 남성과 여성을 지칭하는 말도 그 사람이 혼인을 했는지 여부에 따라,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떠한 벼슬을 했는지에 따라, 그리고 누가 부르는지에 따라 각각 다르게 지칭되었다. 남자를 지칭할 때, `남정네, 남진, 남편, 사나이, 총각` 등이 있다. 여자를 지칭할 때에는 `아내, 여편네, 마누라, 집사람, 계집, 부인, 처녀` 등 꽤나 많다.
`아내`는 지금은 그 표기법도 달라져서 그 뜻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옛날에는 `안해`였다. `안`은 `밖`의 반의어이고, `-해`는 `사람이나 물건을 말할 때 쓰이던 접미사`이다. 그래서 그 뜻이 `안 사람`이란 뜻이다. 그래서 지금도 `안사람`이란 말을 쓰고 있다. 남자는 `바깥사람, 바깥분, 바깥양반` 등으로 쓰인다.
`부부``를 `내외`라고 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여편네`는 한자어다. `여편`에다가 `집단`을 뜻하는 접미사 `-네`를 붙인 것이다. 남편의 `옆`에 있어서 `여편네`라는 말이다. 즉 `옆편네`가 `여편네`가 됐다는 것이다.
마누라는 중년이 넘은 아내를 허물없이 이르는 말이다. 남은 평생을 동반자로 살기로 약속한 부부들의 신뢰와 친밀감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마누라'는 자신의 옆을 지키는 아내를 부르는 말이다. '마주 보고 눕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항상 옆 자리를 지켜 주는 '동반자'이다. 나이가 들면 진정으로 고마운 아내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다.
아낙네, 어떤 의미를 담은 단어일까? 그 어근을 제대로 파헤쳐보자. YG 소속의 아이돌 그룹 WINNER 송민호는 지난 2018년 11월 ‘아낙네’ 타이틀의 곡을 발매했다. “나의 아낙네 이제 알았네 아낙네 나의 파랑새 (woo yeah)” 본 가사를 만약 ‘여편네”로 바꾸면 이 노래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아낙네와 여편네 모두 ‘부녀자’를 가리킨다는 의미에서 동일하지만 그 뜻은 사뭇 다르다. 여편네는 ‘결혼한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면 아낙네는 ‘남의 집 부녀자를 통속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송민호의 ‘아낙네’를 '여편네'로 바꾸어 가사를 해석해본다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여편네는 '여편'과 '네'로 분석되듯이 아낙네는 '아낙'과 '네'로 분석될 수 있다. 원래 '-네'는 15세기에 존칭 표시의 명사에 붙는 복수 접미사였지만 근대 국어에 와서 평칭이나 자기 겸양을 나타내는 말에 쓰이게 되면서 복수의 의미보다는 낮추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아낙'과 의미상 연관성을 지닌 '아내'를 통해 '아낙네' 의미를 분석해보면 '아내'는 원래 '안해'였고 이것은 '안'과 '해'로 분석된다. 마찬가지로 '아낙'은 '안'과 '악'으로 분석된다. '안'은 ' 안 사람'의 '안'처럼 '內'의 뜻을 가지며 동시에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낙'은 '안악'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악'과 '-억'은 모두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인데 주로 작은 것을 뜻할 때 쓰인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단어로는 '주먹(줌 + -억), '터럭'(턱 + -억), '쪼각'(쪽 + -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파생어를 살펴보면 사람을 일컫는 단어로 된 예는 없는데 왜 '아낙'만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을까? 원래 '아낙'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아낙'이 생겨났을 때 원래 뜻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풀이되어 있듯 '부녀자가 거처하는 곳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그 장소에 거처하는 사람의 뜻을 갖게 되어 '안악'은 '장소'와 '사람'을 동시에 의미하기에 이르렀다. '안악'이 '내정'의 뜻을 잃고 '안뜰'에 그 자리를 넘겨준 뒤에 이 '안악'에 '-네'가 붙어 여성을 뜻하는 단어가 된 것이다.
여편네는 '결혼한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그런데 가끔 남편의 '옆'에 있어서 '여편네'가 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옆편네'가 '여편네'가 된 것이 아니냐는 물음을 하기도 한다.
'여편네'의 '여편'은 한자어이다. 가례언해(1632년)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는 '남편'에 대립되는 '녀편'이 있다. 여편네는 오늘날처럼 낮추어 보는 의미는 없었다. 그러다 '녀편네'가 오늘처럼 낮추어 말하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근대국어 시기인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원래 '-네'나 '-내'가 존칭 표시의 체언에 붙는 복수 접미사지만 근대국어에 와서 '쇼인네'나 '우리네 살림살이' 에서 평칭이나 자기 겸양을 나타내는 말에 쓰이게 되면서 복수의 의미보다는 낮추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편네'가 낮추는 말로 되었다. 남자를 낮출 때에 지금도 '남정'에 '네'를 붙여 '남정네'라고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본래의 어형인 '안악'은 특정의 공간을 나타내는 명사와 결합해 작은 장소를 지정하는 역할을 한다. '-악'의 기능을 고려하면 '안악'은 집안의 공간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말의 어근을 파헤쳐 보면 비슷하면서도 그 의미와 경로가 다른 단어가 생각보다 많다. 이번 시리즈는 여편네와 아낙네의 어근을 통해 그 차이를 알아보았다.
'우리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거지_어원 자료 (2) | 2024.02.17 |
---|---|
아낙네_어원 자료 (2) | 2024.02.17 |
오이지, 짠지, 단무지, 장아찌, 찌개_어원 자료 (1) | 2024.02.17 |
심문 vs 신문_구별 방법 (1) | 2024.02.16 |
여편네_어원 자료 (2) | 2024.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