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개국 정상이 모인 핵안보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이렇게 큰 규모의 행사가 한국에서 열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세계 속 한국의 높아진 위상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말에는 ‘이의’와 ‘의의’, ‘이례적’과 ‘의례적’ 등과 같이 모습과 발음이 비슷해 헷갈리는 단어가 적지 않다. ‘방증(傍證)’과 ‘반증(反證)’도 단어를 이루고 있는 한자와 그 뜻이 다르지만 모양이 비슷해 많은 사람이 혼동해 쓰는 낱말 중 하나다.
“한류의 확산은 대한민국이 경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성장했음을 반증한다”
“국제적 행사의 유치는 국가 위상이 높아졌다는 반증이다”
“팬미팅의 입장권이 매진된 것은 높은 인기를 반증한다”
등과 같이 ‘반증’이 들어간 문장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대부분 ‘방증’을 잘못 쓴 것이다. ‘방증’은 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되지는 않지만 주변의 상황을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 그 증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증거를 의미한다. ‘방증’은 그냥 ‘증거’로 바꾸어도 말이 잘된다. 즉 ‘높아졌다는 방증이다’는 ‘높아졌다는 증거다’로 해도 말이 잘 통한다.
‘반증’은 어떤 사실이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그에 반대되는 근거를 들어 증명하는 일을 말한다. 예를 들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증’은
“범인의 논리가 워낙 치밀해 반증을 대기가 어렵다”
“우리에겐 그 사실을 뒤집을 만한 반증이 없다”
와 같이 쓸 수 있다. 방증’은 ‘(일반적) 증거’, ‘반증’은 ‘반대되는 증거’라 생각하면 헷갈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다.
"업무 관련성을 입증(立證)할 책임을 근로자에게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
근무 시간에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근로자가 산업 재해 보상을 받으려고 할 때에 그가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증거를 제시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이다. 입증(立證)이란 자기가 주장한 바를 증거를 제시하여 증명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법률 용어이다. 증거 가운데에서 범죄 행위가 찍힌 비디오 장면 같은 증거는 범죄를 입증하기에 매우 유리하다.
입증과 같은 말로 거증(擧證)을 쓰기도 한다. 증거를 대는 것을 거증 또는 입증이라고 한다. 사실 '입증'이나 '거증'이나 별로 좋은 낱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한자어가 태어난 곳이 한국이나 중국이 아니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렇다. '증거를 세우든, 증거를 들든' 결국 증거를 이용해서 사실대로 밝히는 것이므로, 증명과 다를 바가 없다. 법을 하는 분들이 이런 말을 평이한 말로 바꿔 주시길 기대해 본다.
반증(反證)은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는 증거의 의미가 있지만 주로 법률상으로 '본증(本證)'을 부정하는 증거를 가리킨다. 원고나 검사가 주장을 하지 않으면 반증이란 성립되지 않는다. 흔히 기자들은 '반증'을 '반대되는 또는 부정하는' 증거 정도로 이해하고 기사를 쓰는데, 그건 잘못이다.
"그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그것을 반증할 만한 증거가 없었다."
라는 기사는 '반증'을 잘못 쓴 것이다. 부정하든 긍정하든 상관없이 자기 주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증거이다. 자기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증명할 증거를 대야지 '반증할' 증거를 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위의 문장은
"그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그것을 증명할 만한 증거가 없었다."
라고 써야 한다. 꼭 알아둘 일은 반증이란 '본증'을 부정하는 증거, 또는 본증에 반대되는 증거라는 점이다.
"검사의 범죄 인정에 대해서 피고가 반증하였다."
"피고가 재판부에 반증 자료를 제출했다."
"피고는 피의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고는 자기에게 잘못이 없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오."
위의 증거와 증명 대신에 '반증'을 쓰면 안 된다. 피의 사실을 증명하는 데는 피해자나 피의자의 범죄 사진이나 영상물, 범죄 행위를 보았다는 목격자 진술 등이 직접 증거로 이용된다. 그러나 그런 증거가 없을 경우에는 피의자의 행동에 수상쩍은 점을 찾아 범죄의 증거로 쓰기도 한다. 예를 들면 피의자가 범죄 현장에 없었다는 증거를 대지 못하는 것. 빨래를 하지 않던 사람이 사건 당일에 빨래를 했다는 사실 등은 범인으로 지목할 만한 실마리가 된다.
이처럼 정황(情況)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인 증거를 법률 용어로 간접증거라고 하는데 이를 식자층에서는 방증(傍證)이라고 한다. 직접증거가 없을 경우에 방증이라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다. 방증도 증거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경찰이나 검사 또는 원고가 증거로서 제시하는 것에도 방증이 있을 수 있고, 피의자가 반증 자료로 제시하는 것에도 방증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피의자가 무죄를 방증할 몇 가지 사실을 반증 자료로 제시함으로써 검찰이 더욱 난감하게 되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낱말로서 방증은 권장할 만한 낱말이라고 할 수 없다. 특히 무죄를 방증할 자료 같은 표현은 현학적일 뿐 말 같지 않다. '방증', '방증하다' 대신에 간접증거, 간접적으로 증명하다를 권하고 싶다.
'우리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최 vs 주관 (0) | 2024.02.15 |
---|---|
정한수 vs 정안수 vs 정화수 : 유래를 알고 써야 바른 말이 된다 (0) | 2024.02.15 |
수고, 애, 고생_어휘 자료 (0) | 2024.02.15 |
조위금 vs 조의금 (0) | 2024.02.15 |
눈썹, 눈곱_어휘 자료 (0) | 2024.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