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사람들이 퇴근할 때 인사말로 “먼저 가겠습니다”라는 말을 즐겨 쓴다. 상사와 후배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오래전 윗사람과 함께 일하다 먼저 자리를 뜨면서 “그럼 수고하십시오”라고 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윗사람에게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수고하세요”
라고 인사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는 우리 ‘표준언어예절’에 어긋나는 인사법이다. ‘수고’는 ‘고통을 받는다’의 뜻을 가진 한자말 ‘受苦’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윗사람에게 ‘수고하십시오’라고 하면 윗사람에게 고통을 받으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가 있다. 이는 윗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으므로 윗사람에게 ‘수고’란 말을 절대 써서는 안 된다.
원래 ‘수고’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동정과 위로의 표시로 하던 말이다. 언어란 변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윗사람에게 ‘수고’란 말을 쓰는 것이 적절치 않다. 윗사람에겐 ‘수고하십시오’란 말 대신 상황에 따라
"먼저 가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등으로 적절하게 바꾸어 표현하는 게 좋다. 또 감사의 의미로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애쓰셨습니다’(국립국어원)라고 말하는 것은 괜찮다. 반면 동년배끼리나 아랫사람에게 ‘수고하게’ ‘먼저 갈게, 수고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방하다.

현대어에서 ‘애쓰다, 애먹다, 애를 태우다, 애닯다’의 ‘애’가 간이나 쓸개(膽)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쓸개(膽)의 뜻을 지녔던 ‘애’는 쓸개의 세력에 밀려 소실되고 말았다고 하겠다. ¶애(膽)<南明下4>, 애(膽)<金三5:32>. 15세기 문헌에 ‘애’와 쓸개(膽)가 같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장(腸)의 뜻도 있다. elige(肝)<蒙>, elige(膽)<蒙>, slsn(膽)<蒙>, sadarhai(肝)<蒙>. 몽골어에서 간(肝)과 쓸개(膽)의 뜻을 지니는 말이 동원어(同源語) 임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어 kimo는 간과 쓸개의 두 뜻을 지니며, kimori(肝煎)는 애쓰다, 애타다의 뜻이다. 쓸개(膽)의 뜻을 지닌 ‘애’가 간(肝)의 뜻도 지녔을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애달프다, 애쓰다, 애먹다, 애타다’의 ‘애’는 쓸개라기보다 간의 뜻을 지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애간장이 탄다”할 때 ‘애간장’은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가 합성된 말이라 하겠다. ‘애쓰다, 애먹다, 애가 탄다, 애태우다, 애간장이 녹는다’의 ‘애’는 간(肝)의 뜻을 지닌다고 하겠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에 지은 시조 ‘한산섬 달 밝은 밤에’의 종장은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로 끝난다. 큰 전쟁을 앞두고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며 깊은 시름에 잠겨 있는 터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 가닥의 피리소리는 남의(이순신 장군 자신의) 애를 끊어 놓으려 한다는 뜻이다. 이순신 장군의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시조이다.
‘애를 끊다’는 말 외에도 ‘애타다’, ‘애쓰다’, ‘애먹다’ 등 ‘애’가 들어가는 말이 많다. 애는 창자의 옛말이기도 하고 간이나 쓸개의 옛말이라고도 하다. 나중에는 어느 장기 하나만을 칭하는 말이 아니라 오장육부 전체를 다 칭하는 말로 그 뜻이 확대되어 ‘속’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애가 탄다는 말은 몹시 답답하거나 안타까워서 온갖 내장 즉 속이 타들어간다는 뜻이다. 속이 끓는다고도 한다.
애를 쓴다는 말은 온갖 내장은 물론 마음까지 다하여 뭔가를 이루려고 힘쓰는 것을 이름한다. 내 ‘속’의 모든 역량을 다하고자 하는 것을 애쓴다고 하는 것이다. 애를 먹는다는 것은 애가 타든 애를 쓰든 간에 속이 온통 상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을 꿀꺽꿀꺽 삼키며 견뎌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나라 걱정으로 애가 타고, 나라 일을 하느라 애를 쓰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라면 내가 애를 먹더라도 애써 그 일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텐데 요즈음 보도에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을 보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애타고 애쓰고 애먹는 사람은 아예 없는 것 같다. 더욱이 이순신 장군처럼 나라 걱정으로 인해 그렇잖아도 끊어질 듯 쓰라린 창자인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소리가 다시금 그 창자를 끊어내려 한다는 감정을 느끼는 정치인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 들고 당리당략만을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판을 치고 있다. 게다가 언론은 그런 정치인들의 말장난과 말싸움을 흥미 위주로 보도하고 있는 듯하니….
젊은이들이 들어와 무얼 사고 나가면서
"수고하세요."
라고 인사를 한다. 나이 지긋한 어른이 아이들의 뒤통수에 대고 쩝쩝 입맛을 다시면서
"세상이 말세야. 다 큰 놈들이 인사할 줄도 모르고, 제 아비뻘 되는 사람에게 수고라니, 원."
가끔 보는 현상이다. 도대체 '수고하다'는 어른에게나 손윗사람에게 쓰면 안 되는 인사인가? '수고'는 힘을 들이고 애를 스는 것 또는 그런 어려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많이 하십니다.'라고 '수고'에 대해서 감사하거나 치하해야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은데 오히려 '수고하세요'라거나 '수고하십시오'라고 하면 아무래도 기분이 좋을 것 같지 않다. '왜 내가 더 수고해야 하는데?'라는 반감이 생길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건 '안녕하셨어요?'라는 인사말에 대해서 '네 눈에는 내가 안녕하게 보이니?'라고 나무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반감은 '수고하세요.'를 낱말의 의미대로 이해하였을 때에나 생길 것이고, 단순히 인사말로 여긴다면 별로 대수롭게 여길 일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높임법과 관련해서 '수고하세요.'라는 인사를 손윗사람에게 해도 되는지에 관한 문제가 남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인사말은 어른들에게 쓰기 거북한 점이 있다. 어른들에게도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은 무리가 없어 보이지만, '수고하십시오.'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말이다. 그 차이는 '수고'의 의미와 관련이 있다. 어른들이 일하고 있는데 '수고하십니다.'라고 하면 인사말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수고하십시오' 하면 괘씸하게 여길 공산이 크다. 이는 '고생하십니다.'와 '고생하세요'가 같은 말이지만 전자는 받아들일 수 있고, 후자는 사용하기 거북한 것과 같다. 그것은 '고생'이 상대에게 하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고 대신에 '애'를 써서 인사하면 어떨까? '애쓰십니다.'라는 인사는 보편적으로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애쓰십시오'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도 상대에게 할 만한 인사는 아니다. 구태여 상대에게 수고하라거나, 고생하라거나, 애쓰라고 하는 인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따라서 상대에게 하는 인사는 언제나 상대를 즐겁고 기쁘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
"수고하세요." 대신에 "안녕히 계세요, 잘 계십시오, 편히 계십시오." 같은 인사로 바꾸기를 권한다. 손아랫사람에게 인사할 때에도 '수고해라' 또는 '수고하게, 애쓰게' 같은 인사는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 '잘 있어' 나 '잘 있게' 정도로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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