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말

개판_어원 자료 : 승부가 나지 않으면 다시 하게 되는 판

by 61녹산 2024. 2. 15.
반응형

 

개판 5분 전

 

 

 

며칠 전 학문하는 자세가 올곧은 학생으로부터 '개판'의 어원을 묻는 질문을 받았다. 자기 학급의 종례 시간에 주로 듣는 말이 이 '개판 5분 전'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개판'의 정확한 뜻과 유래를 알고 싶다면 머리를 긁적이며 질문하는 모습에 살포시 웃음 지었다. 세상이 하 무질서하고 난잡하니 대중이 '개판'의 어원에 큰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라 판단에 서둘러 연구자료를 뒤적이게 되었다.

 

'개판'의 어원은 아쉽게도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고 설 차원의 주장만 무성하다. 지금까지 제기된 어원설에는 '개판(開版 나무 널로 된 솥뚜껑을 엶)' 설, '개[犬]판(개가 날뛰는 자리)' 설, '개판(改版 판을 다시 고침)' 설 등이 있다. 

 

이들 여러 설 가운데 '개판(改판)' 설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인다. '개판(改-)'은 '씨름에서 승부가 나지 않거나 승부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에 다시 하게 되는 판'을 뜻하는 씨름판 용어다. 씨름 경기에서 두 선수가 함께 넘어졌을 때 누가 먼저 땅에 닿았느냐를 두고 시비가 벌어질 수 있다. 그 판정 시비는 쉽게 결론이 나지 않고 큰 소란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그 판을 무효로 하고 다른 판으로 승부를 겨루게 되는데, 바로 다시 하는 경기 판을 '개(改 다시 개) 자를 이용해 '개판(改-)'이라 한다. 이는 원래 '재경기'와 같은 뜻이다.

 

 

김홍도의 씨름도

 

 

 

이렇듯 재경기를 하기 직전에는 서로 자기편 선수가 이겼다고 우겨대며 옥신각신 싸우는 어수선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하여 '재경기 5분 전'이라는 뜻의 '개판 5분 전'이라는 표현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씨름판의 어수선한 상황과 맞물려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황'이라는 비유적 의미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개판 5분 전'에서 '5분 전'이 생략된 '개판'도 그와 같은 의미를 띠게 된다. '5분 전'이 생략되면서 '개판(改-)'에 의미 변화가 일어난 것인데, 이를 '생략'에 의한 의미 변화라 한다.

 

혹자는 '씨름'은 '5분'이라는 시간 표시 방법이 생겨 나기 이전부터 있었던 전통 민속놀이인데, 어찌 '5분 전'과 어울릴 수 있느냐고 반박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해 답변을 미리 준비해 보면 '개판 5분 전'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표현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할 수 있을 듯 하다. 물론 정확한 답변은 아니지만 말이다. 

 

'개판(改-)' 설은 일단 한자 '改'가 '개판'의 '개'와 같이 장음으로 발음이 난다는 점에서 더욱 합리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싸우고 욕하고 함으로써 그로 인한 결과는 과연 무엇이냐? 한 말로 말하면 개판 씨름 격밖에 되지 안 했을 것이다."

 

동아일보 1948년 4월 10일에서 보듯, 씨름 용어 '개판(改-)'이 '서로 싸우고 욕하는 상황'에서 실제 사용된 예가 있어 더욱 믿음직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