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 동요는 일제 강점기시대 윤극영이 지은 동요다. 이때 만해도 설날이 있었지만, 이후 양력 설을 ‘신정’, 음력설을 ‘구정’으로 불렀다. 1985년에는 ‘민속의 날’이 됐고, 1989년부터 ‘설날’의 이름을 다시 찾았다. 일본의 설은 양력 1월1일이고 보면, 일본의 문화가 일제 강점기시대에 우리나라에 강제로 접목된 것이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까치설날은 음력 섣달 그믐이 된다. 여기서 ‘까지’는 조류 까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학설이 있다. 국어학자 서정범교수는 옛날에는 설날을 ‘아치설’이라고 불렀고, ‘아치’는 ‘작다’라는 뜻으로 음이 비슷한 ‘까치’로 변형 됐다는 것이다. 까치설날은 ‘작은 설날’,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그믐을 뜻한다.
남서 다도해 지방에서는 조석 간만의 차(밀물과 썰물의 수위 차이)가 가장 좁아지는 음력 22일을 가리켜 '아치조금'이라 하는데, 경기 지방에서는 이를 '까치조금'이라 부른다. 아치조금이 까치조금으로 바뀌었듯이, 아치설이 까치설이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이 설대로라면 까치설은 동물 까치와는 큰 관계가 없다.
그러나 고려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의 설화에는 까치 설날의 유래에 동물 까치가 등장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승려와 내통해 왕을 죽이려고 했으나 왕이 까치(까마귀)와 쥐, 돼지, 용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했다. 쥐, 돼지, 용은 모두 십이지에 드는 동물로 그 공을 기념하지만 까치는 기념할 날이 없어 이를 안타깝게 여긴 왕이 설 전날을 까치의 날로 정해 까치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는 근거 없다는 게 학계의 인식이다. 실제 삼국유사 원문을 찾아보면 관련 설화의 주인공은 알려진 것처럼 까치가 아니라 까마귀여서다. 최근 까치 설의 유래를 설명하는 글이 인터넷에 돌면서 잘못된 이야기가 전해졌다는 뜻이다. 이밖에도 설은 다양하다. 옛말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이 있다. 이 때문에 까치가 울면 다음 날인 설에 친척과 지인들을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지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설날 하루 앞의 날은 섣달 그믐날이다. 그리고 작은설로 까치설이라고 한다. 작은설, 까치설 또는 이에 날을 덧붙여 까치설날이라고 한다. 작은설은 몰라도 까치설은 좀 독특하다. 왜 갑자기 까치가 설날과 결합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까치설을 까치가 쇠는 설로 알고는 있지만, 새가 설을 쇨 리 만무하고 또 새 가운데 까치만이 설을 쇨 이유도 없어서 이는 민간어원설로 조금 엉터리 없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까치설은 "아치설"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 까치와는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해진다.
'아치설'은 옛 문헌이나 방언에서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 희귀한 단어다. 얼마 전 문익환 목사의 모친인 김신묵(1895~1990 함북 용성 출신) 권사의 육성 구술 자료에서 이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아치설'이 20세기 초까지도 함북 방언에 고스란히 살아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아치설'을 기억하는 함경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아치설의 어원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그 가운데 중세국어 '아찬설(작은설)'이 '아츤설, 아츠설'을 거쳐 나타난 어형으로 보는 설(아찬설 > 아츤설 > 아츠설), '앛설'이 '아츠설'을 거쳐 나타난 어형으로 보는 설이 우세하다. 그런데 전자는 'ㅅ' 앞에서 'ㄴ'이 탈락한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후자는 '앛설'의 존재를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다만 '앛감(앛-+감, 아침 간조), '아츠조금(앛-+-으-+조금, 조수 간만의 차로 볼 때 이렛날과 스무 이틀을 이르는 말)' 등을 통해 '앛설(앛 + 설)'의 존재를 증거할 수 있지 않나 하여 후자의 설에 무게가 실린다.
중세국어 '아찬설'의 '아찬'은 형용사 '앛다(작다)'의 관형사형이고, '앛설'의 '앛(작다)'은 그 어간이어서 '아치설'의 '아치'가 형용사 '앛다'와 관련된 어형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하여 '아치설'은 '작은설'과 같은 의미가 된다. '아치고개(작은고개)', '아치섬(작은섬)' 등의 '아치'도 '아치설'의 그것과 같은 것이다. 형용사 '앛다'는 '작다'에 밀려나 아치설을 비롯한 아침, 아창아창(키가 작은 사람이나 짐승이 이러저리 찬찬히 걷는 모양) 등에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치설은 일차적으로 가치설로 변했을 것이다. 아치와 앛다와의 유연성이 상실되어 그 어원이 궁금해지자 우연히 음상이 유사한 가치(까치)를 떠올려 가치설로 바꾸고 그 의미도 까치와 관련하여 재해석했을 것이다. 가치는 지혜와 부지런함을 상징하는 새로서 설날이 지향하는 희망적 이미지와 맞아떨어지기까지 하기 때문에 아치설을 가치설로 바꾸어 부르는 데 큰 저항은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치(까치)는 15세기 이래 20세기 초 문헌에서도 보인다. 가치가 지금과 같은 까치로 변한 것은 19세기 이후로 보인다. 가치가 까치로 변함에 따라 가치설 또한 까치설로 변했다. 아치가 까치로 변한 단어에는 아치설 말고도 아치고개, 아치밭, 아치산, 아치섬 등과 같은 지명도 있다. 전국에 분포하는 까치고개, 까치밭, 까치신, 까치섬 등은 해당 지형지물이 작아서 붙여진 이름이 대부분이다.
음력으로 열한 번째 달은 '동짓달'이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이 든 달인 만큼, '동짓달 긴 밤'은 매서운 추위나 어두운 시기를 그려 낸다. 동짓달 다음 달은 '섣달'이다. 동짓달과 섣달을 아울러 이르는 '동지섣달'은 그저 두 달을 묶어 내는 데 그치는 말이 아니라, 혹한의 겨울 날씨나 한 해의 마지막 시기라는 뜻으로 쓰인다. 동지섣달이 지나가면 한 해가 다 가는 셈이므로, 옛 어른들은 '동지 전에 일 년 동안에 진 빚을 다 갚는 법'이라 했다.
지금 섣달은 한 해의 끝 달이지만, 흥미롭게도 섣달은 원래 '설이 드는 달'이란 뜻이었다. 인류는 수천 년 전부터 해와 달을 보며 날을 세었다. 한 해의 첫 달을 어느 것으로 잡느냐에 따라 계산법이 달라지는데, 지금 우리가 음력 마지막 달을 섣달이라 이르는 것은 음력 12월을 설로 쇠었던 흔적이다. 한 해의 첫 달인 '섣달'과, 한 해의 첫날인 '설날'은 관련된 말이다. 열두 번째 달이 지나면 다시 정월이 된다. 정월 초하룻날은 지금 우리의 설날이다. 새해의 처음이라는 '설'이 되면 우리는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한다. '맛'과 '멋', '마리'와 '머리', '낡다'와 '늙다' 등 모음의 차이로 분화된 여러 말과 같이, '살'과 '설'도 우리말에서 각각 제구실을 하고 있다.
섣달 그믐날을 우리는 '까치설'이라 부른다. 사전에서는 설날의 전날을 이르는 어린아이의 말이라 한다. 그런데 까치도 설날이 있을까? 왜 사람 설의 하루 전날일까? 다른 새도 아니고 하필이면 까치일까? 왜 어린아이의 말이라 할까? 궁금증이 난다. 이 말은 원래 '아ᄎᆞᆫ설'이었다. '아ᄎᆞᆫ'(옛말)은 '강아지, 망아지, 송아지' 등의 '-아지, 아치'와 같이 작은 것을 이르는 말이었다. '까치설'이란 곧 '작은 설'로, '아ᄎᆞᆫ'이란 말이 사라진 이후에 길조였던 까치가 이 자리를 꿰찼다. 비슷하게 생겼더라도, 까마귀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안 될 일이다. 동요에서 어린아이는 '곱고 고운 댕기'도, '새로 사 온 신발'도 자기 것이라고 생떼를 쓴다. 노랫말의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처럼, 과거에 아이들 새 옷이란 설날쯤은 되어야 마련되었다. 그 옷을 어머니는 동지섣달 내내 밤새 눈 비비며 지으셨을 것이고, 그 곁에 둘러앉은 아이들은 설렘 속에서 잠들었을 것이다. '까치설'이란 말에 소복이 담긴 기대와 설렘은 다 자란 어른의 마음에도 그대로 남는다.
'우리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ㄷ 받침 바뀜 쓰기 (1) | 2024.02.12 |
---|---|
우레_어원 자료 : 하늘이 우는 소리가 바로 우레다 (1) | 2024.02.12 |
쓰르라미_어원 자료 : 쓰를 쓰를 우는 매미 (2) | 2024.02.12 |
푸르다_어휘 자료 (2) | 2024.02.12 |
물_어휘 자료 (1) | 2024.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