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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푸르다_어휘 자료

by 61녹산 2024.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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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노래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5월의 노래>

 

무심코 들어 넘기다 생각해 보니 재미있다. 왜냐하면 하늘도 벌판도 다 같이 푸르다고 하기 때문에 외국인이 들었을 때 꽤 놀랄 듯싶다. 원래 '푸르다'는 순우리말 '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경우 푸른빛이나 초록빛이나 똑같이 여긴다. 하지만 영어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은데, 푸른색과 초록 색은 아주 다른 색깔로 마구 섞여 함부로 쓰이는 법이 없다. 벌판을 보고 하늘처럼 푸르다(blue)고 했다가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군대를 KATUSA(미육군에 배속된 한국육군)로 다녀왔던지라 훈련장 취재를 나갔다가 동료 미군에게 우리나라 봄날을 좀 더 싱그럽게 표현한다고 "blue blue all blue" 외쳤다가 '미친놈' 취급을 받기도 했다.

 

색감에 대한 정서도 서양과 우리와는 아주 다른 것 같다. 푸른빛이라고 하면 우리는 금세(금시에의 준말) 젊음과 희망을 연상한다. 젊은이는 靑年(청년)이요, 희망은 靑雲(청운)의 꿈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청색은 오히려 슬프고 침울하고 무기력한 것으로 종종 표현된다. '블루 먼데이(blue Monday)'라고 하면 희망에 찬 월요일이 아니라 월요병을 의미하는 말이 된다. 주말에 놀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그 기분이 착 가라앉고 맥이 빠진다. 그런 기분을 색채로 표현하면 푸른색이 되는 게 서양문화다.

 

푸른색과 초록색의 차이 때문에 같은 교통 신호등을 달아놓고도 우리는 푸른 신호등이라고 하고 서양 사람들은 녹색 신호등(green sign)이라고 부른다. 요즘 줄곧 연습하고 있는 노래인 이무진의 <신호등>의 가사에서도 

 

  붉은색 푸른색 그 사이 3초 그 짧은 시간

  노란색 빛을 내는 저기 저 신호등이

  내 머릿속을 텅 비워버려 

  내가 빠른지도 느린지도 모르겠어 

  그저 눈앞이 샛노랄 뿐이야

 

 가수 이무진씨도 노래에서 분명히 붉은 신호등과 반대의 신호등은 푸른색이다. 조금 씁쓸한 것이 있는데 우리 딸내미에게서 초록색과 푸른색을 구분하여 인식하는 경우가 조금씩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치원 아이시절의 딸에게 파란 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는 것이라고 했더니 온종일 신호등만 쳐다보고 길을 건너지 않고 있다고 유치원으로부터 연락받고 뛰쳐나갔던 때가 있으니 말이다. 분명 딸애의 눈에는 주황색, 붉은색 그리고 초록색 신호등은 켜지는데 아버지가 보고 건너라던 푸른색 신호등은 보이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던 딸애가 바로 눈앞에 있다. 

 

영화 <그린카드>(1990, 피터 워어 감독)에서도 미국이나 서양 국가에서는 젊은과 희망을 나타내는 색채는 푸른색이 아니라 초록색이다. 그리고 그런 초록빛을 이념의 색채로 상징화한 것이 오아시스를 생명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슬람 국가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에서도 초록색이 바탕색이다. 그러니 탈냉전 이후 자주 듣게 되는 것이 '붉은색에서 초록색으로"라는 구호이다. 구소련의 붕괴로 공산주의의 위협이 이슬람 문화권의 원리주의로 바뀐 시대 상황을 색채 상징으로 나타낸 말이다. 

 

문화에 따라 색깔은 이렇게 달라진다. 분절하는 방식도 표현하는 감정도 모두 다르다. 문자 그대로 各樣各色(각양각색)이다. 죽음을 나타내는 喪服(상복) 하나만 보아도 결코 검은색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흰빛, 브라질은 자색, 멕시코는 황색, 중국은 붉은색이 된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라다고 할 수 없다. 문화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하늘도 들판도 모두 푸르다고 하는 한국인을 비웃는 서양인이 있다면 푸른빛과 쪽빛을 구분하지 못하는 서양 사람들을 비웃어야 할 것이다.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5월의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5월 5일이다. 그래 마음껏 노래 불렀으면 한다. 하늘도 들판도 모두 푸르다고 악을 써가며 불렀으면 싶다. 편견없는 문화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마음껏 푸르게 더욱 푸르게 자랐으면 싶다. 

 

 

파랗다’와 ‘푸르다’가 헷갈린 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1924년에 나온 윤극영의 노래 <반달>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하고 나간다. 이때 벌써 하늘을 ‘푸르다’고 했다는 소리다. 그래서 <표준국어대사전>도 ‘파랗다’를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새싹과 같이 밝고 선명하게 푸르다.” 이렇게 곧장 ‘푸르다’ 그것이라고 풀이해 놓고 있다. 또 ‘푸르다’를 찾으면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 이렇게 ‘파랗다’를 풀이한 소리를 거의 그대로 되풀이해 놓았다.

 

그러나 ‘파랗다’는 “맑은 가을 하늘”까지만 맞다. 바다도 “깊은 바다”는 아니고 얕은 바다라야 그냥 ‘파랗다’ 할 수 있다. 깊은 바다라면 ‘새파랗다’ 아니면 ‘시퍼렇다’ 해야 한다. ‘푸르다’는 “풀의 빛깔과 같이”까지만 맞다. 그래서 ‘파랗다’의 풀이에 “새싹과 같이”는 ‘푸르다’ 쪽으로 옮겨야 하고, 마찬가지로 ‘푸르다’의 풀이에 쓰인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는 ‘파랗다’ 쪽에서만 써야 마땅한 것이다.알다시피 길거리 신호등은 세상 어디서나 빛깔의 세 으뜸인 빨강(빨갛다), 파랑(파랗다), 노랑(노랗다)으로 나타낸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파란 신호등’을 ‘푸른 신호등’으로 바꾸었다. ‘파랗다’와 ‘푸르다’의 헷갈림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풀빛은 ‘푸르다’로, 하늘빛은 ‘파랗다’로 바로잡도록 국어교육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겨울이 다 되어야 솔이 푸른 줄 안다!”

 

산과 들의 푸른빛이 사라진 한겨울이 돼서야 소나무가 푸르다고 느끼는 것처럼 위기 상황에서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우리에게도 한겨울의 푸르른 소나무와 같은 진정한 리더십이 간절하다.

 

“한겨울의 푸른 소나무”를 “한겨울의 푸르른 소나무”라고 해도 문제가 없을까? 올해부터 이러한 표현이 가능하다. ‘푸르다’와 말맛이 다른 ‘푸르르다’를 별도의 표준어로 인정해 사전에 올렸기 때문이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등의 표현이 이제 어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푸르르다’는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는 뜻의 형용사인 ‘푸르다’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로 쓸 수 있게 됐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푸르르다’도 ‘푸르다’와 같은 방식으로 끝바꿈할까?

 

‘푸르다’는 러불규칙용언이다. 어미 ‘-어’ ‘-어서’의 ‘-어’가 ‘-러’로 바뀌는 러불규칙활용을 한다. ‘먹다’는 ‘먹어’ ‘먹어서’로 바뀌지만 ‘푸르다’는 ‘푸르어’ ‘푸르어서’가 아닌 ‘푸르러’ ‘푸르러서’로 바뀐다. 과거형도 마찬가지다. ‘푸르었다’가 아닌 ‘푸르렀다’로 활용된다. 자음으로 시작되는 어미가 붙을 때엔 ‘푸른’ ‘푸르고’ ‘푸르게’ ‘푸르니’ ‘푸르면’ ‘푸르지’ 등처럼 그 형태가 변하지 않는다.

 

 

푸르다

 

 

 

한 문장, 한 문장씩 천천히 읽어보자. 한 문장당 4초씩 들여 천천히 읽어보자. 

하늘이 푸르다. 바다가 푸르다. 바닷물이 푸르다. 바닷속이 푸르다. 푸른 냄새가 난다.

산이 푸르다. 산세가 푸르다. 숲이 푸르다. 나무가 푸르다. 소나무가 푸르다. 나뭇잎이 푸르다. 풀잎이 푸르다. 잔디밭이 푸르다. 푸른 냄새가 난다.

못이 푸르다. 호수가 푸르다. 물이 푸르다. 바람이 푸르다. 강물이 푸르다. 계곡이 푸르다. 폭포가 푸르다. 푸른 냄새가 난다.

봄이 푸르다. 여름이 푸르다. 가을 하늘이 푸르다. 겨울이 푸르다. 입김이 푸르다. 푸른 냄새가 난다.

사방이 푸르다. 사위가 푸르다. 공기가 푸르다. 덴탈 마스크가 푸르다. 푸른 냄새가 난다.

채소가 푸르다. 싹수가 푸르다. 텃밭이 푸르다. 푸른 냄새가 난다.

얼굴이 푸르다. 이마가 푸르다. 눈이 푸르다. 뺨이 푸르다. 입술이 푸르다. 숨이 푸르다. 푸른 냄새가 난다.

동심이 푸르다. 청춘이 푸르다. 청년이 푸르다. 우리들이 푸르다. 인생이 푸르다. 삶이 푸르다. 세상이 푸르다. 푸른 냄새가 난다.

지구가 푸르다. 별이 푸르다. 우주가 푸르다. 세계가 푸르다.

마음이 푸르다. 서슬이 푸르다. 새벽이 푸르다. 밤이 푸르다. 제주가 푸르다. 낮이 푸르다. 너가 푸르다.

푸르다. 푸르다. 푸르고 푸르다. 이것도 푸르고 저것도 푸르다. 온 세상이 푸르다.

푸르다는 형용사다.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는 뜻이다. 곡식이나 열매 따위가 아직 덜 익은 상태에 있다는 의미다. 세력이 당당하다, 젊음과 생기가 왕성하다, 희망이나 포부 따위가 크고 아름답다는 표현이다. 공기 따위가 맑고 신선하다, 서늘한 느낌이 있다는 비유다.

갑자기 바람이 분다. 푸른 바람이 분다. 푸른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푸른 냄새가 코끝에 감돈다. 진하다. 푸른 냄새가 퍼져나간다.

이렇게 푸르다. 많이도 푸르다. 푸르고 푸른데 다 다르게 푸르다. 신기하다. 눈에도 보이고 코로도 맡아진다. 신기한 단어다.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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