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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얼룩빼기의 어원자료_얼굴덜룩 황소

by 61녹산 2024.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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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소 : 얼룩빼기

 

 

 

한가위가 코앞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신경 쓰이는 선물이다. 추석 인기 선물이 예년과 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봄철 일조량 부족과 긴 장마 탓에 과일 같은 신선식품은 지난해만 못하고 일본 방사능 유출 영향으로 수산물을 찾는 발길이 작년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게 한우선물세트이다. 한 대형마트의 한우세트 판매는 전년에 비해 80퍼센트 늘었다고 한다. 어느 식당 차림표에서 ‘얼룩배기 황소 된장찌개’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 것은 이 소식을 들은 뒤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얼룩배기’와 ‘얼룩백이’는 얼룩빼기의 잘못이다. ‘-빼기’는 ‘그런 특성이 있는 사람이나 물건’ 또는 ‘비하의 뜻’을 나타내는 접미사로 곱빼기, 밥빼기(동생이 생긴 뒤에 샘내느라고 밥을 많이 먹는 아이), 코빼기(‘코’를 속되게 이르는 말), 악착빼기(몹시 악착스러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처럼 쓰인다.

 

얼룩빼기는 ‘겉이 얼룩얼룩한 동물이나 물건’이니 얼룩빼기 황소는 얼룩소의 하나이다. ‘얼룩 황소’가 왠지 이상하게 들린다면, 황소를 털 빛깔이 누런 누렁소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황소는 큰 수소이다. 황소에는 얼룩빼기도 있고 검은 것도 있는 것이다.정지용의 시 ‘향수’에 나오는 ‘얼룩빼기 황소’, 동요로 널리 알려진 박목월의 시 ‘얼룩송아지’에 등장하는 ‘얼룩소’는 어떤 모습일까. 바둑이처럼 생긴 젖소? 아니다. ‘향수’는 1927년에 발표되었고 ‘얼룩송아지’는 1948년 국정 음악교과서에 처음 수록되었다. 이 땅에 젖소가 들어온 때는 1902년이지만 얼룩무늬의 홀스타인 종은 1962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최신축산경영학>) 시기를 따져보면 ‘얼룩빼기 황소’, ‘얼룩소’는 온몸에 칡덩굴 같은 어룽어룽한 무늬가 있는 ‘칡소’이다. 엊그제 ‘전통 칡소 고기 품질 탁월’이라는 ㅎ대학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우선물세트 인기에 칡소도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정지용의 향수

 

 

 

정지용(1902~1950)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는 아마도 <향수(鄕愁)>일 것이다. 작품성이 우수할뿐더러 노래로까지 만들어져 애창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고향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한가로운 시골풍경을 통해 한 폭의 그림처럼 풀어낸 서정시다. 그런 풍경 속에는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얼룩빼기"가 등장한다.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에서 보듯 여기서 얼룩백이는 소다. 그런데 얼룩백이에 대한 설명이 좀 수상하다. 어떤 사람은 흰 바탕에 검은 점이 있는 홀스타인 젖소라 하고, 어떤 사람은 온몸에 칡덩굴 같은 어룽어룽한 무늬가 있는 칡소라 한다. 젖소설은 그저 웃어넘긴다 하더라도 칡소설은 시 전공자들이 주장한 것이어서 조금 조심스럽다.

 

얼룩백이는 얼룩박이에서 변한 말이다. 얼룩은 얼룩소, 얼룩말에 쓰인 그것과 같은 것이며, 박이는 박다의 어간 '박-'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것으로 '무엇을 박은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얼룩박이, 곧 얼룩백이는 기원적으로 점이나 선을 얼룩처럼 박은 것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얼룩빼기가 표준어이며, 겉이 얼룩얼룩한 동물이나 물건을 가리킨다. 얼룩빼기가 말을 가리키면 얼룩말이며, 소를 가리키면 얼룩소가 된다. 얼룩백이 황소에서 황소는 얼룩백이가 다름 아닌 황소임을 강조하기 위해 붙인 요소로 보인다. 

 

얼룩소는 사전적으로는 털빛이 얼룩진 소지만, 구체적으로는 검정 바탕에 흰 점이 엉덩이, 목, 배, 귀 등에 박혀 잇는 소일 수도 있고, 누런 빛깔의 바탕에 흰 점이 엉덩이, 목, 배, 귀 등에 박혀 있는 소일 수도 있
다. 전자와 같은 얼룩소는 안악 3호분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고, 후자와 같은 얼룩소는 1950~1960년대 우시장(牛市場)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얼룩소와 얼룩빼기가 같은 의미이므로 얼룩빼기도 얼룩소와 같은 의미를 띤다. 시인의 고향인 충북 옥천에서는 실제 얼룩소와 얼룩빼기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며, 그것도 누런 빛깔의 바탕에 흰 점이 이곳저곳에 박힌 소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얼룩백이 황소의 얼룩백이 또한 그러한 소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충북 옥천에 가서 여러 어르신들께 얼룩빼기가 어떤 소냐고 물어만 보았도 그것을 칡소라는 엉뚱한 해석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아쉽고 안타깝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해석을 현재 옥천 주민들마저 맹신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또 잘못된 것이라 아무리 설명해도 수긍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이 우리말 연구자들이 짊어져야할 멍에이자 비애이고 슬픈 천명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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