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청설모를 외래종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빈번한데 사실 청설모는 과거부터 한국에서 서식해온 작은 포유동물이다. 조선시대 땐 청설모를 '청서'(靑鼠)로 불렀고 청서의 털로 붓을 만들어 붓글씨를 쓰는데 사용하였다. 청설모가 다람쥐를 잡아먹는다고 잘못 오인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사실로 단정하기 어렵다. 습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람쥐는 땅위에서 살아가며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먹는반면 청설모는 나무 위에서 살아가며 나무위에 열린 잣과 호두, 밤 같은 견과류를 먹는다. (드물게 영역이 겹치는 일이 있을 경우 싸우기도 한다.) 또한 다람쥐는 추워지기 시작하면 양곡을 비축해 땅속으로 들어가 겨울을 나는 반면 청설모는 털갈이를 하기 때문에 추운 겨울이 와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 청설모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잣농사를 하는 분들이 청설모로 인해 입게 되는 피해가 크기 때문에 사실과 다른 정보를 주위 사람들에게 퍼뜨려 파생된 것이 아닐까?
외양이 쥐를 닮은 동물은 대체로 '쥐'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그 명칭을 만들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람쥐, 두더지, 박쥐 등이 그러한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쥐를 닮았지만 쥐라는 단어를 이용한 이름이 확인되지 않는 동물도 있으니 그것이 바로 청설모가 여기에 속한다. 청설모는 청서(靑鼠)라는 쥐 서(鼠) 자를 이용한 한자어 이름은 있으나 쥐를 이용한 고유어 이름은 없다. 물론 있었을 수도 있지만 현재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래종 취급을 받기도 한다.
청서(靑鼠)에 대해서는 청설모가 소나무나 잣나무처럼 사계절 늘푸른 나무에서 사는 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실제 청설모는 소나무나 잣나무에 집을 짓고 그 위에서 잣과 밤을 먹고 산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동물의 명칭이 서식하는 나무의 속성에 근거하여 만들어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왠지 의심이 든다.
흑서(黑鼠 털빛이 검은 쥐), 백서(白鼠 시궁쥐의 변종), 황서(黃鼠 족제빗과의 동물) 등과 같이 털빛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쥐 또는 족제빗과 동물의 명칭이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청서(靑鼠) 또한 털빛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명칭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중국 둥베이산에 서식하는 북만청서의 털빛이 잿빛이면서 파란색을 띠는 회청색이기에 보기에 따라서는 파란색 또는 회색으로 비쳤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하여 청서 또는 회서와 같은 명칭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청서의 가죽이 청서피이고 청서의 털이 청서모다. 청서피는 섬세하고 가벼워 방한용 털옷을 만드는 데 이용되었고, 청서모는 부드러워 붓을 만드는 데 이용되었다. 그러나 요즘 청서피나 청서모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청소모에 ㄹ이 첨가된 어형이 우리가 주목하는 청설모다. 청설모는 청서모와 같이 한동안 청서의 털이라는 그 본래의 의미대로 쓰였다. 그러다가 청서, 곧 청설모라는 의미로 변했다. 털을 지시하다가 그 털을 갖고 있는 대상을 지시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의미 변화는 19세기 이전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전에서는 청설모를 청서와 날다람쥐 따위 털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청설모는 주로 청서의 의미로 쓰이는데, 청서보다는 더 일반적으로 쓰인다. 날다람쥐의 털이라는 의미는 좀 이상하다. 이는 청서의 털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의미는 청서모가 더 적합하다. 청서=청설모가 성립하고 청설모는 털을 지시하는 청서모에서 변형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다람쥐, 두더지, 청설모’ 세 단어는 ‘쥣과’는 아니지만 ‘쥐’와 관련되어 조어된 단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람쥐’는 18세기 문헌에 ‘다람쥐’로, ‘두더지’는 15세기 문헌에 ‘*두디쥐’로, ‘청설모’는 15세기 문헌에 ‘靑鼠’로 보인다. ‘청설모’에 대한 고유어는 딱히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쥐’와 ‘두디쥐’에 대해서는 등장 시기, 조어 구조, 변화 과정을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함으로써 기왕의 논의가 합당한지를 확인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다람쥐’와 ‘두더지’를 지시하는 또 다른 단어를 찾는 데에도 관심을 두었다. 이에 ‘쥐’는 ‘라미’를 이어 근대국어에 새롭게 등장한 단어이며, 이는 ‘(-+-)’과 ‘쥐’가 결합된 어형임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다람쥐’를 뜻하는 단어로 ‘솔쥐’라는 단어가 있었을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솔쥐’는 한자어 ‘松鼠’에 대응하는 고유어이다. ‘두디쥐’는 동사 어간 ‘두디-’와 명사 ‘쥐’가 결합된 어형인데, 이것이 구개음화 이후 ‘두지쥐’로 변했다가 사라졌음을 밝히고, ‘두디쥐’가 ‘두더쥐’로 변한 것은 어휘 개별적인 변화로 파악하였다. ‘두더지’를 뜻하는 단어로 ‘뒤덕이’를 새롭게 찾아내, 이를 동사 ‘뒤져기-’에서 파생된 명사로 설명하였다. ‘청설모’에 대해서는 그 등장 시기, 단어 구조, 형태 및 의미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울러 ‘청설모’를 지시하는 고유어를 찾는 쪽에도 관심을 두었다. ‘청설모’는 19세기에 ‘쳥셜모’로 보이는데, 이는 ‘쳥셔모(靑鼠毛)’에 ‘ㄹ’이 첨가된 어형이며, 본래 ‘청설모의 털’을 지시하다가 ‘청설모’ 그 자체를 가리키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그 의미 변화는 19세기 이전에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靑鼠’는 청설모의 회청색 털빛에 기반하여 명명된 한자어로 보았다. ‘청설모’를 지시하는 고유어는 딱히 드러나지 않으나 ‘다람쥐’를 지시하던 ‘솔쥐’가 ‘청설모’까지 아울러 지시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처음부터 ‘솔쥐’가 소나무에서 주로 서식하는 ‘다람쥐’와 ‘청설모’를 범칭했을 수도 있다고 보았다.
청설모(청서모·靑鼠毛)는 한자로만 해석하면 청서(靑鼠)의 털이 된다. 실제로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붓을 만드는 원료로 이 청설모의 꼬리털을 많이 이용한다. 워낙 이 털이 유행이다 보니 청서라는 이름보다 청설모가 아예 동물 이름이 되어 버렸다. 간단히 이 이야기만 보더라도 청설모는 예부터 우리 산하에 많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야산에서 인간의 무분별한 침습으로 인해 맹금류, 늑대, 여우 삵, 담비, 구렁이 같은 청설모의 천적이 사라지면서 환경 적응력이 강한 청설모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어디 이들뿐이랴 멧돼지, 야생고양이, 너구리, 고라니 심지어 야생들개까지, 생태계 파괴 후 인간의 방심과 무단 폐기가 부른 동물들이 생태계의 우점종으로서 새로운 균형을 잡아가는 추세다. 이들은 새 생태계의 탄생을 알리는 한편 산림 파괴로 초점을 맞춘 개발지상주의 인간들과의 피치 못할 충돌 선상에 서 있기도 하다.
그중 날렵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청설모는 잣, 호두 등 예전에 자기 고유의 주식이었지만 이제는 값 비싼 인간의 기호식품이 되어 버린 나무 열매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총까지가진 골리앗 인간과의 웃지 못할 한 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미 이들은 몇몇 이해 당사자들에 의해 유해조수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쟁에서 선동전이 중요하듯, 전선에 선 인간들은 청설모에게 나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데 안간힘을 쓴다. 가령 청설모가 다람쥐를 모두 잡아먹어 버린다느니, 청설모는 원래 우리나라에 없던 중국산 외래종이라느니 하는 유언비어들이다.하지만 청설모가 비록 벌레나 작은 새알들을 취하기는 하지만 다람쥐를 사냥해서 먹을 정도의 극단의 육식성은 지니고 있지 않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들 주식의 99% 나무열매이다. 그리고 대개 가족 또는 단독 생활을 하기 때문에 다람쥐를 통째로 몰아낼 만한 조직성도 갖추고 있지도 않다. 대부분 우리 야산에는 다람쥐와 청설모가 사이좋게 영역을 나누어 생활하는 걸 누구나 흔히 볼 수 있다.
다람쥐는 주로 땅 위에서 생활을 하고 청설모는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한다. 먹이 또한 다람쥐는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청설모는 나무에 달린 잣이나 호두 등을 먹기 때문에 먹이 다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인간들이 한 산을 사방으로 깎아 고립된 섬으로 만들어 버리면 두 종의 마찰이 빚어질 수는 있지만 그 경우 또한 주로 힘이 약한 다람쥐가 먼저 이사를 가는 방식으로 조용히 해결된다.위에서 언급했듯 청설모는 그 이름조차 청서의 털로 쓰일 정도로 우리 조상들의 문방사우의 필수 품목이었다. 그리고 청설모의 명칭 또한 Korean squirrel 즉, 한국 다람쥐로 표기한다. 비록 쥐 과로 천시되어 많은 문헌이나 민화 등에 별로 등장하진 않지만 청설모는 오히려 세계적으로 다람쥐보다도 인정받는 분명히 우리 토종 동물이다.
아무리 중국산 물품이 범람하고 청설모가 보기 싫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우리 고유의 토종동물을 중국산이라고 우기는 행위는 우리 스스로 독도가 일본 땅이라 부르는 것과 하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우리나라는 중국과 육지로 국경이 마주 닿아 수많은 동물들이 우리나라와 중국을 자유로이 오고 갔었다. 그 중 일부는 사람의 왕래 중에 섬나라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하게 됨으로써 우리나라는 두 나라 사이에 생태통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동물이동에 있어 교량역할을 하다 보니 동물 종 다양성이 중국의 어느 지역보다 풍부했다. 중국과 일본에 공통적으로 있는 동물은 대부분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다만 일본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는 일본원숭이가 옛 기록에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야생에는 공식적으로 단 한 마리도 살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를 한반도 생물학적 미스터리라 부르기도 한다. 얼마 전 사육장을 탈출해 야생에서 홀로 5년 넘게 살아온 일본원숭이를 본 적이 있었는데 매우 건강하고 잘 적응하던 걸 보면 우리나라에 원숭이가 살지 못할 이유가 없었을 것 같다.
포유동물들의 경우는 어느 정도 텃세권이나 영역이 있어 지역에 고립되어 자체 진화하기도 하지만 새들의 경우에는 사실 국경이 없다. 그러니 동물들을 굳이 같은 생태권인 중국산, 한국산, 일본산으로 나누어 차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최근 몇 년 사이 여러 매체에서 앞다투어 보도되고 있는 곤충이 있다. 그 주인공인 중국산 주홍날개꽃매미는 색깔도 다른 매미에 비해 꽤 원색적이라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 매미는 중국이 아닌 중국 이남과 동남아시아에 분포하는 아열대 매미라 불러야 맞다. 이들은 알 형태로 한반도에 우연히 들어와 대부분이 우화 과정에서 죽고 극히 일부가 살아남아 성충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은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한반도의 아열대화가 가속된다면 그들은 계속해서 번창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자연도태하게 될 것이다. 작년에 번성했다면 앞으로 알이 성충이 되는 4~5년 후를 주목해 보아야 한다. 매미 앞에 중국산이란 별칭을 붙여 과민반응을 보였지만 사실 우리나라 매미의 대부분은 중국과 일본에도 똑같이 분포한다.
주홍날개꽃매미의 약충(불완전 변태를 하는 곤충의 성충이 되기 전 상태)과 성충은 나무의 즙액을 빨아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선호하는 나무는 가죽나무나 참죽나무 등의 활엽수이다. 이 매미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해를 끼치진 않으나 나무줄기와 잎이 까맣게 그을린 듯 변하는 그을음병을 유발시킨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주홍날개꽃매미에 대해 과수에 피해를 주는 검역해충으로 분류해 놓고 있어 우리나라도 이 매미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그리고 지금 그런 신종의 출현만큼 무서운 것은 몇 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이다. 바로 레이첼 카슨이 경고한 ‘침묵의 봄’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은 오싹함을 느끼게 하는 전조이다.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우연하게도 ‘꿀벌이 없어지면 인류도 없어진다.’라는 무서운 예언을 남겼다. 한 외래종의 반짝 출현도 분명히 우려할 만한 현상이긴 하지만 정말 우리가 머리 싸매고 걱정해야 할 현실은 한 종의 이유 없는 사라짐이다. 그것이 크든 작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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