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중국에서는 모란을 화중왕, 작약을 재상이라 하여, 모란과 작약은 왕과 재상으로 비교되어 사랑을 받아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작약을 함박꽃이라 하는데, 꽃모양이 함지박처럼 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 때 충렬왕은 원나라 세조(世祖)의 외딸 제국공주(齊國公主)를 왕비로 맞았다.
왕비가 된 공주는 어느 날 수녕궁(壽寧宮) 향각(香閣)의 어원(御園)을 산책하다가 작약이 탐스럽게 피었으므로 시녀에게 명하여 한 가지를 꺾어오게 하였다. 한 가지를 꺾어들고 한참 귀여워하더니 그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로부터 병이 들어 얼마 뒤에 죽었다는 슬픈 애화가 있다.
작약은 봄에 줄기가 나와서 5∼6월에 핀다. 제국공주가 향각에서 소요하던 때는 5월이라 모란은 시들고 작약이 만개하였으며 송경(松京)의 궁에는 작약이 많이 심어졌는데, 제국공주도 이 아름답게 핀 작약을 보고 잠재의식 속에 생명의 무상함을 직관하면서 슬피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꽃이 크고 탐스러워서 함박꽃이라고도 한다. 백작약·적작약·호작약·참작약 등 다양한 품종이 있다. 백작약은 높이 40∼50㎝로 밑부분이 비늘 같은 잎으로 싸여 있으며, 뿌리는 육질(肉質)이고 굵다. 잎은 3, 4개가 어긋나며, 3개씩 2회 갈라진다. 소엽(小葉)은 타원형 또는 도란형(倒卵形:거꿀달걀형)으로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6월에 피며 백색이다. 적작약은 뿌리가 붉은빛이 도는 품종으로 높이가 50∼80㎝이다. 뿌리는 방추형이고, 근생엽은 1∼2회 우상(羽狀)으로 갈라진다. 소엽은 피침형·타원형 또는 난형으로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5∼6월에 피는데 백색·적색 등 여러 품종이 있다.
봄철 내내 학교 운동장 옆쪽 화단에서는 여러 꽃이 순서를 가려가며 피고 졌다. 그 많은 봄꽃 가운데는 붉은빛을 띤 채 환하게 웃는 함박꽃도 당연히 있다. 수업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도 가끔 앞쪽 화단을 찾곤하는데 함박꽃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반겨주는 것이 매우 정겹기까지 했다. 그런 함박꽃이 6월이 되자마자 싹 자취를 감춘다.
함박꽃은 여러해살이풀인 작약에 피는 꽃이다. 물론 깊은 산골짜기에서 자라는 함박꽃나무에 피는 함박꽃도 있다. 작약에 피는 함박꽃과 함박꽃나무에 피는 함박꽃은 모양이 조금씩 다르나 던아가 갖는 의미에서는 동일하다.
함박꽃은 함박과 꽃이 결합된 말로 분석된다. 함박은 한박의 자음동화 형태이며, 한박은 형용사 하다[大]의 관형사형 한과 명사 박이 결합된 어형이다. 한은 한길(넓은 길 <번역소학 1518>), 한비(큰비 <용비어천가 1447>), 한새(황새 <엮어유해 1690>), 한쇼(황소 <용비어천가 1447>) 등에서 보듯 단어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 박은 본래 한해살이 덩굴풀과 그 열매를 가리킨다. 또한 그 열매로 만든 바가지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한박, 곧 함박은 큰 박 또는 큰 바가지라는 뜻이다.
"함박 시키면 바가지 시키고 바가지 시키면 쪽박 시킨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무슨 일을 시키면 그도 자기의 아랫사람을 불러 일을 시킨다는 뜻
와 같은 속담 속의 함박은 '큰 바가지'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함박은 보통의 바가지보다 큰 바가지이고, 쪽박보다 훨씬 큰 바가지임을 알 수 있다. 꼳 함박과 쪽박은 정반대의 개념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바가지를 뜻하는 함박이 전남 방언에서 확인된다.
함박꽃의 함박은 큰 박의 뜻이어서 함박꽃은 큰 박처럼 크고 탐스러운 꽃으로 해석된다. 함박꽃을 이것에서 꽃을 생락한 채 함박이라고 한다. 합성어 함박눈, 함박웃음의 함박도 그러한 것이다. 함박눈은 함박꽃 송이처럼 굵고 탐스러운 눈이고 함박웃음은 함박꽃 송이처럼 크고 환하게 웃는 웃음이다.
그런데 현재 함박은 큰 박이나 큰 바가지라는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함박꽃(작약의 꽃)이라는 의미로만 쓰인다. 함지박(통나무의 속을 파서 큰 바가지같이 만든 그릇)을 뜻하는 함박도 있는데, 이는 함지박에서 지가 생략된 어형이어서 한박에서 변한 함박과는 성격이 다르다.
화단의 함박꽃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건만 자꾸 그쪽으로 눈길이 간다. 꽃은 사라졌어도 그 꽃을 피우는 작약은 여전하다. 작약이 그대로 있기에 내년 5얼이 되면 다시 크고 탐스러운 함박꽃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살포시 웃음살을 흘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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