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을 찾아보니
1. 쑥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는 거친 땅. [비슷한 말] 쑥밭.
2. 매우 어지럽거나 못 쓰게 된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비슷한 말] 쑥밭.
국어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이 국어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겠지만 모든 현실을 알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국어사전의 내용이 순 엉터리처럼 보일 때가 있다.
'[비슷한 말] 쑥밭'이라고 했는데 절대로 쑥밭을 쑥대밭이라 하지 않는다. 쑥밭의 뜻과 쑥대밭의 뜻은 엄청난 거리가 있다. 아무리 쑥이 잘 자란 쑥밭이라 해도 '쑥대밭'이라 말하지 않는다.
쑥은 그 생명력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가령 쑥 뿌리가 말라서 불에 탈 정도로 보여도 수분을 제공하면 그 중에서는 다시 살아난 놈이 있다. 또, 아무리 캐내도 그 뿌리가 깊어서 완전히 재거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쑥은 현재도 우리나라에서 산야의 식물 중에 가장 많이 채취하여 식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지금은 먹을 것이 지천이지만 그래도 쑥은 우리의 구미를 끌어내는 식물이다. 만일 쑥이 다른 식물처럼 생명력이 강하지 못했다면 진즉 명종하고 말았을 것이다. 만일 쑥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사람이 과거에 많이 굶어 죽었을 것이라 짐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에 의해 쑥대밭이란 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쑥의 씨앗을 보지는 않았다. 분명코 쑥의 씨앗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보지는 못했다. 왜 쑥의 씨앗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것은 빈 땅이 생기면 쑥이 자란다. 물론 쑥은 뿌리로 번식한다. 그러나 공터에 쑥이 있다는 것은 바람으로 씨앗이 날려와서 발아했을 것이다. 이처럼 쑥은 씨와 뿌리로 번식하는 식물임이 틀림없다.
쑥은 이처럼 끈질기게 번식하고 좀처럼 죽지를 않는 식물인데 이 쑥이 봄에는 부드럽다가 가을이면 쑥의 대가 올라와 꽃이 핀다. 물론 모든 쑥이 대가 올라오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단단한 마당 같은데 즉, 빈집 터가 여러 해 방치되면 가을에 쑥대가 사람이 안 사는 황량함을 연출한다. 즉, 1m 이상 자란 쑥대가 황량함을 말해주고 있다. 빈집이 몇 년 되면 틀림없이 이룩되는 장면이다. 즉, 가을에 쑥대가 우거진 곳은 패망과 파멸을 대변하는 것 같이 된다. 이래서 쑥대밭이란 말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쑥대밭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패망과 파멸, 그리고 황량함을 이야기할 때 사용한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이 뜻을 명확히 알지 못하고 국어사전마저도 정확한 뜻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쑥대밭이라 하면 쓸쓸함과 어쩐지 가슴이 꽉 조여지고 울음이 나올 것 같은 감정이 이다. 그런데 쑥대밭도 다른 잡초들이 우거지면 쑥대밭이 없어진다. 절대로 다른 식물들이 우거진 곳에는 쑥대가 우거지지 않는다. 그런 곳에는 잡풀 속에 조용히 자란다. 또 햇빛이 없으면 쑥도 없어진다. 이런 것으로 보아 쑥은 빈터를 메우기 위하여 씨앗을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쑥을 밭에 재배하면 쑥대가 생길지 모르겠다. 아마도 대가 많이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여튼 쑥대는 슬픔의 대명사가 되었으니 쑥이 왜 그런 결과를 만드는지 식물학자가 아닌 이상 알지 못하겠다. 묘소에는 잔디를 심는게 우리 문화다. 그런데 그 잔디밭에 쑥이 자란다. 그런데 잔디가 쑥에 밀려 자꾸 성글어진다. 그래서 쑥을 없애려고 캐내고 제초제도 뿌리지만 끄떡도 않는 게 쑥이다. 생명력이 아주 강한 게 잔디인데 쑥에게는 비교가 안 된다. 묘소 같은 곳의 쑥에서는 절대 쑥대가 나오지 않는다. 묘한 일이다.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 폭격을 맞은 자리, 무너진 건물 잔해 주변 등을 그야말로 '쑥대밭'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쑥대밭'은 '매우 어지러운 모양', '아주 못 쓰게 된 모양', '아주 엉망이 된 모양' 등을 지시한다. 그러나 쑥대밭이 본래부터 이러한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니다. 이들 의미는 그 본래의 의미에서 비유적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른 봄 아직 풀들이 다 올라오지 않을 때에는 이게 토끼풀인지 쑥인지, 개밥꽃다지인지 구분하지 못하다가 푸름이 녹녹해질 즈음 쑥이 부쩍 자라 둘레길 한쪽 모퉁이를 가득 채우게 된다. 그 모양이 본래부터 질서없는 형태로 쑥쑥 자라서 넓게 퍼지게 되기에 쑥대밭이라는 표현이 쓰이지 않나 추정하고 있다.
'쑥대밭'은 갈대밭, 골밭(골짜기에 있는 밭), 자갈밭, 콩밭' 등과 같은 '밭'의 하나다. '갈대밭'이 '갈대가 무성한 밭'이듯이, '쑥대밭'은 쑥대가 무성한 밭이다. 그럼 쏙대는 무엇일까? 쑥대는 쑥의 줄기라는 뜻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가 쑥숙 올라오는 약쑥(산쑥)의 줄기를 가리킨다. '쑥대머리(머리털이 마구 흐트러져 어지럽게 된 머리), 쑥댓불(쑥을 뜯어 말려서 단을 만들어 붙인 불)' 등에 쓰인 '쑥대'도 그러한 것이다.
'대'를 '갈대'로 보아 '쑥대'를 '쑥과 '갈대'로 해석하기도 하나 '대'를 '갈대'로 보기는 어렵다. 만약 갈대를 지시하려 했다면 그러한 의미의 '갈을 이용하지 줄기를 뜻하는 대를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쑥대가 약쑥의 줄기를 가리키므로 쑥대밭은 약쑥이 거칠게 우거진 넓은 공간으로 해석된다. 이는 쑥밭과 같은 의미다. 약쑥은 키가 작고 솜털같이 뽀얀 식용 쑥과 달리 키가 크고 억세다. 그리고 무엇보다 번식력이 강하여 한번 번졌다 하면 그 주변을 온통 쑥 천지로 만든다. 이를 쑥대밭이 되다라고 표현한다.
쑥대밭이 되면 쑥이 거칠게 퍼져 어지럽고, 쑥 이외의 다른 식물은 얼씬도 못하는, 못 쓰는 땅이 되고 만다. 그리하여 쑥대밭이 되다가 어지러운 모양을 띠다, 엉망이 되다, 못 쓰게 되다 등과 같은 비유적 의미까지 가지게 된다. 이러한 의미로부터 쑥대밭은 매우 어지럽거나 못 쓰게 된 모양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쑥대밭이 좀 특이한 의미 변화 과정을 거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어사전 1938>이나 <큰사전 1957>의 쑥대밭에는 쑥들이 무성하게 퍼진 거친 땅이라는 그 본래의 의미만 달려 있지, 숙대밭이 되다라는 관용구를 통하여 생성된 비유적 의미는 달려 있지 않다. 다만 <큰사전 1957>에서 쑥대밭이 되었다를 집이 없어지고 빈터만 있음을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는 것을 보면, 쑥대밭이 되다가 비유적 의미로 확장된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사전에서는 쑥대밭에 그 본래의 의미와 함께 비유적 의미도 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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