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졸업식이나 되어야 가족 전체가 우르르 몰려가서 맛있게 한 그릇 뚝딱 비우고 호사스럽게 탕수육까지 곁들여 넉넉하게 먹고 나올 수 있었다. 그게 외식의 전부였고 나름 정겨운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짜장면을 파는 집이 그 때는 '짱개집'으로 불렸다. 중국 음식을 파는 식당을 보통 '중국집'이라고 한다. 물론 '반점(飯店), 중화요릿집, 중화요리점'과 같은 제법 고급진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짱깨집'과 같이 약간 얕잡아 부르는 명칭도 있다. 이 가운데 '짱깨집'은 아주 독특하다. 한식집이나 일식집에는 없는 중국집 특유의 속된 말이기 때문이다.
짱깨집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하다. 가장 먼저 보이는 예는 김남일의 소설 <명동블루스 1988>에서
"짱궤집 배달원은 대중이 아닌 거여?"
여기서 '짱꿰집'이 바로 짱깨집이다. 이후 문헌에는 '짱꿰집'과 더불어 '짱깨집, 짱께집'도 보인다. 짱꿰집이 짱꿰집, 짱게집을 거쳐 드디어 짱깨집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짱깨집이라는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 1999>에도 올라 있지 않다. 사전으로는 <고려대한국어사전 2009>에 처음 올라 있는데, 중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 또는 중국 음식점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풀이 되어 있다. 반면 <우리말샘 2016>에는 <중국집>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는 한 가지 의미만 달려 있다. 이렇듯 두 사전에서 짱깨집의 해석이 다른 것은 짱깨의 읨를 다르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 짱깨, 곧 짱꿰는 무엇일까? 짱꿰는 한자어 장궤(掌櫃) 또는 중국어 짱꿰이에서 온 말로 보인다. 장궤(掌櫃)의 한자 뜻 그대로의 의미는 돈 궤짝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돈 궤짝을 꿰차고 있는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고 또 물건을 파는 가게의 주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장사를 하여 많은 돈을 번 중국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현대국어 사전에서 장궤를 돈이 많은 사람, 가게의 주인, 부자라는 뜻으로 중국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풀이한 것이다.
짱깨는 한자어 장궤와는 또 다른 여러 의미가 담겨 쓰이고 있다. 실제 용례를 통해 살펴보면 '짱깨'는 중국 음식점 주인, 중국 음식점에 종사하는 종업원, 중국 사람 또는 중국, 중국 음식, 짜장면 등과 같이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만큼 중국과 관련된 부분에서 거의 대부분이 사용된다고 봐도 무관하다. <표준국어대사전 1999>에서는 짱깨에 짜장면이라는 의미만 부여하고 있어 현실 의미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짱깨집의 짱깨는 중국 음식이나 짜장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자로 보면 짱깨집은 중국 음식을 파는 집, 곧 중국집을 뜻하고 후자로 보면 짱깨집은 짜장면을 파는 집을 뜻한다. '짱깨집'은 대체로 중국집이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짜장면집을 짱께집이라 부른 이유는?" (지식IN 2003년 1월 8일)
에서 보듯 실제 짜장면을 파는 집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2009>에서 짱깨집을 중국집과 더불어 중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한 것은 짱깨집의 짱깨를 중국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깨집이 이러한 의미로 쓰이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짱깨집은 중국 음식을 파는 집과 짜장면을 파는 집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한다.
어린 시절 먹어본 음식 가운데 가장 맛있었던 음식을 하나 들라고 하면 ‘자장면’을 드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특별한 기회에 먹어본 ‘자장면’ 맛은 놀라움과 환히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옛날 자장’을 찾아 추억을 되새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 시절에는 ‘자장면’이 아니라 ‘짜장면’으로 불렸다. ‘짜장면’은 어
린아이들의 대표적인 ‘외식’이었다. 무엇인가 색다른 것이 먹고 싶으면 ‘짜장면’ 사달라고 얼마나 졸라댔던가? 그러나 가난했던 시절에 ‘짜장면’은 아무 때나 얻어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아니었다. 생일이나 졸업 때와 같은 특별한 날에나 겨우 얻어먹을 수 있었던 귀한 음식이었다. 지금이야 맛있는 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짜장면’의 명성은 예전만 못하다.
‘짜장면’은 중국 음식이니 ‘짜장면’이라는 이름 또한 중국어로 생각하기 쉽다. 물론 ‘짜장면’의 ‘짜장’은 중국어 ‘炸醬[Zhajiang]’에서 온 말임에 틀림이 없으므로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중국에서는 그들의 된장을 ‘炸醬[Zhajiang]’이라 하는데, 이를 이용한 음식이 ‘炸醬[Zhajiang]’이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면’은 한자 ‘麵’이다. 중국어로는 ‘멘’이지만 한국식 한자음으로는 ‘면’이다. 이렇게 보면 ‘자장면’은 ‘중국어’와 ‘한자어’가 결합된 독특한 구조의 단어가 된다.
최근 ‘짜장면’은 ‘자장면’에 표준어로서의 자격을 내주었다. 외래어는 원지음(原地音)의 발음을 존중해서 표기한다는 외래어 표기법 규정에 따른 것이다. ‘짜장면’이 ‘자장면’으로 대체되면서 ‘짜장면’에 대한 명성은 추억 속에나 남아 있는 느낌이다.
‘자장면’을 파는 음식점을 ‘중국집’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중국집’이라는 말 이외에 ‘짱깨집’이라는 말도 쓰이고 있다. ‘짱깨집’에는 좀 비하(卑下)하는 의미가 담겨 있어 그렇게 호감이 가는 것은 아니다. ‘짱깨집’은 ‘짱깨’와 ‘집’이 결합된 단어임에 틀림이 없다. 어떤 큰 사전을 보면 ‘짱깨’를 ‘자장면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풀이해 놓고 있다. 그렇다면 ‘짱개집’은 ‘자장면을 파는 집’이라는 뜻이 된다. 중국집에서 파는 대표적인 음식이 ‘자장면’이니 중국집을 ‘자장면을 파는 집’으로 이해해도 될 듯도 하다.
그런데 ‘짱깨’가 ‘자장면’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짱깨’는 중국어 ‘掌櫃’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掌櫃’는 중국 음으로 ‘짱궤이’인데 이것이 변하여 ‘짱깨’가 된 것이다. 그러면 ‘掌櫃’는 어떤 의미인가? 한자 뜻 그대로 ‘돈궤를 장악하는 사람’이니 ‘주인장’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짱깨집’은 ‘자장면을 파는 집’도 아니고 ‘중국 음식을 파는 집’도 아닌 ‘주인장 집’이라는 조금은 모호한 의미가 된다. ‘주인장 집’과 ‘자장면을 파는 집’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렇듯 ‘짱깨집’이라는 엉뚱한 단어가 생겨난 것은 ‘주인장’을 뜻하는 ‘짱깨’를 음식 이름 ‘자장면’으로 잘못 받아들인 결과이다. ‘짱깨’를 ‘자장면’의 뜻으로 잘못 이해한 뒤 이 단어에 ‘집’을 붙여 ‘짱깨집’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든 것이다. 아마도 ‘짱깨집’은 최근에 조어(造語)된 단어로 추정된다. ‘掌櫃’는 중국어로서뿐만 아니라 한자어로서도 국어에 들어와 있다.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어 ‘장궤’라 한다.
사전에서는 ‘장궤’에
① ‘부자’라는 뜻으로, 중국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② 돈 많은 사람,
③ 가게의 주인이라는 세 가지 의미를 달고 있다.
이 가운데 ③이 그 원래의 의미에 가깝다. 장사를 하는 가게의 주인은 돈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부자’라는 의미가 생겨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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