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은 풀이나 나무가 없어 맨바닥의 흙이 드러난 산으로 건조하거나 바위산 많은 지형이면 흔히 볼 수 있다. 한 예로 서유럽 선진국에 속하는 스페인의 동남부 해안지대 근처는 건조기인 여름에 완전히 민둥산이 된다. 겨울은 우기라 그때야 푸르른 산이 된다. 라스베이거스로 유명한 미국의 네바다주 역시 죄다 민둥산이다. 나라가 잘살고 못살고보다 기후 문제이다. 단지 북한이나 인도 같은 후진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조경이나 수목 사업을 할 여유가 없기에 민둥산이 많은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는 1950년대까지 경기도, 충청남도, 충청북도, 전라북도의 산들은 1,000m 이상인 산을 제외하고 전체가 민둥산이었는데, 그중 상당수는 산에서 관목 한 그루, 풀 한 포기 찾아보기 힘든 사막에 가까울 정도로 상황이 매우 나빴다. 옛날부터 건물 짓고 불 피우는 연료는 나무였고, 온돌이 전국으로 보급되면서 아궁이에 넣을 화목을 얻고자 여기저기서 벌목을 하였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산업과 군수 물자 수탈 등으로 어지간한 나무들은 죄다 베어졌고, 그나마 남았던 나무들조차 6.25 전쟁의 포화와 진지 구축으로 싹 다 없어졌다. 그 후로도 전후복구 사업이나 난방에 쓸 장작 용도로 마구 베었는데,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할 시대 상황상 산림보존을 신경 쓸 여력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못 느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사계절의 특성이 뚜렷하고 여름에 사바나기후에 가깝게 비가 쏟아지므로, 산에 나무가 없으면 홍수와 가뭄에 매우 취약해진다. 특히 장마철이면 산의 흙들은 물을 머금어 무게가 불어나고 중력과 물살에 힘입어 저지대로 흘러내려 가는데, 이때 나무가 뿌리로 흙을 붙잡지 않으면 토사가 그대로 쓸려 내려와 산사태가 일어나고, 이후 토사는 인근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 하천의 깊이(저수량)를 줄이고,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게다가 이걸 방치하면 할수록 하천이 쉽게 범람하기에 바닥을 주기적으로 파내어 이 흙들로 주변의 제방을 높여 해마다 이에 대비해야 한다. 반대로 비가 안 와도 문제이다. 물을 머금을 나무가 없다면 빗물은 그대로 하류로 흘러내려 얼마 안 가 바닥이 갈라지고 연병장처럼 황토 먼지가 우기 때까지 쉽사리 날렸다. 이렇다 보니 산의 흙모래가 흘러내리지 않게 관리하는 일, 즉 사방(沙防)사업을 국가가 나서서 처리해야 할 필요성이 극명했고, 실질적으로 식목(植木)사업과도 밀접했다.
결국, 위와 같은 문제를 직시한 정부는 1961년 12월 27일에 산림법을 제정함을 시작으로, 적극적인 산림녹화 사업을 펼쳤다. 당시 산림녹화 사업은 30년을 바라보는 장기계획으로 전국에서 벌어지는 초대형 프로젝트였고, 나무를 심고 가꾸기를 권장하고자 식목일・육림의 날까지 제정했다. 30여 년에 걸친 녹화사업이 성공하여 지금은 마이산, 월출산 같은 일부 돌산을 제외하고 민둥산이 거의 없어졌다. 또한, 연탄 보급으로 국민이 굳이 땔감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북한은 남한처럼 녹화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21세기 현재까지도 대다수 산이 민둥산이다. 원인은 무차별로 숲을 벌목하거나 화전으로 불태우고 지력을 많이 잡아먹는 강냉이(옥수수)를 심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연재해 피해가 증가하기에 군이나 주민들이 장마철마다 대거 동원되기도 한다. 북한의 민둥산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으로는 자유로 문발-낙하 구간 일대가 대표적이다. 과거 금강산 육로 관광이 가능했을 당시에는 금강산을 제외한 나머지 북한 고성의 지역에서도 민둥산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릴적(1970~1980)년대 풍경화를 그릴 때 반드시 산을 그렸고, 그 산에는 몇 그루도 아닌 몇 개 나무만 살짝 그리고 갈색의 민둥산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식목일이 지정되면서 산이 푸르고 푸르러져 가서 지금은 오히려 산림정화 사업을 나무키우기가 아니라 나무가꾸기로 전환한 지도 한참이 지났다. 그래서인지 한반도의 숲을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남한은 거의 전 지역이 선명한 녹색으로 나타나는 반명 북한은 산세가 험한 일부 지역만 녹색으로 나타나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만큼 북한의 산야가 심각하게 황폐화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나무가 없어 헐벗은 산을 우리는 '민둥산'이라 하고, 북한은 '빈산'이라고 한다.
민둥산이라는 단어는 옛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보다 먼저 '믠 뫼'와 '믠산'이라는 단어가 18세기 문헌에 살짝 보인다. '믠뫼와 믠산'은 '믜다'의 관형사형인 '믠(믜+ㄴ)'에서 접두사화한 '믠-'과 명사 '뫼[山]' 및 '산'이 결합된 어형으로 분석할 수 있다. '믜다'는 '(털이) 빠지다, 아무것도 없다'의 뜻을 더한다고 볼 수 있는데 믠머리(털이 없는 머리), 믠비단(무늬가 없는 비단) 등의 믠-도 그와 같은 것이다. 현대국어 사전에서는 '믠-'에서 변한 '민-'을 꾸미거나 딸린 것이 없는, 그것이 없음 또는 그것이 없는 것이라는 의미를 더하는 접두사로 기술하고 있다.
'믠-'의 의미를 고려하면 '믠뫼'와 '믠산'은 아무것도 없는 산, 곧 민둥산으로 풀이된다. 현재 믠뫼와 믠산은 사라지고, 이에 대응된 한자어 독산(獨山)만이 남아 있는 형편이다. 동네 이름으로 흔한 독산동(禿山洞)의 독산이 바로 그것이다.
민둥산은 20세기 초의 <신자전 1915>에 민동산으로 처음 보인다. 이 자전에서는 한자 '동(童)'에 대한 새김으로 '아이, 웃둑웃둑하다, 민동산'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 '동(童)'에 아이라는 의미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에 민둥산이라는 의미도 있다니 놀랍고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민둥산은 '믠동산'에서 제1음절의 모음 '의'가 '이'로 변한 어형일 것이다. <조선어사전 1920>에 제1음절에서 '의'를 유지한 '믠둥산'이 나오고 있어, '믠동산'의 존재는 분명해진다. '믠동산'의 '믠-'은 앞서 언급한 대로 '믠뫼, 믠산'의 그것이다.
문제는 동산인데 이는 다름 아닌 초목이 없는 황폐한 산을 가리키는 한자어 '동산(童山)'이다. 동산은 익숙하지 않은 한자어이지만 옛 문헌에 제법 나오며 현대의 국어사전에도 서술되어 있다. '동산(童山)'만으로도 '민둥산'을 지시할 수 있을 터인데, 굳이 여기에 '믠-'을 덧붙인 것은 일종의 강조 용법으로 볼 수 있다. 아니면 '믠뫼, 믠산'에 이끌린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믠동산'이 '민동산'을 거쳐 '민둥산'(믠동산 > 민동산 > 민둥산)으로 정착하는 데는 너무나도 자연스런 귀결이다.
북한어 빈산은 비다(허虛)의 관형사형 '빈(비+ㄴ)'과 '산(山)'이 결합된 형태로 비어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나무가 하나도 없는 산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물론 북한어 빈산에는 지하자원이 없는 산이라는 의미도 포함된다. 우리도 빈산을 쓰는데 사람이 없는 산을 뜻하여 북한의 빈산과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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