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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본새의 어원자료

by 61녹산 202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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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새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여 웃어른께 세배도 드리고, 덕담도 듣는 설날, 설날이면 또 생각나는 것이 바로 한복인데, 설날을 맞이하여 혹시 한복을 챙겨 입으십니까? 그렇게 챙겨 입은 한복의 본새가 어떻습니까?

 

요즘엔 한복을 입은 사람에게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 박물관도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한복을 챙겨 입으면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본새가 좋아 보일 겁니다. 

 

흔히 본새를 '뽄새'나 '뽀대'로 잘못 사용하고 있는데, 본새가 맞는 말이다. 본새의 본은 한자 本으로 근본이라는 뜻을 갖고 있고, 새는 일부 명사 또는 용언의 명사형 뒤에 붙어 모양, 상태, 정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흔히 모양새, 생김새, 쓰임새, 짜임새, 차림새처럼 쓰는 말이다. 이처럼 본새는 어떤 물건의 본디 생김새, 또는 어떤 몸놀림이나 버릇의 됨됨이를 뜻하는 말이다. 

 

"그의 말하는 본새가 화가 난 말투였다."

"사람들 일하는 본새를 보니 오늘 안에 끝내기는 틀렸다."

 

앞의 말에서처럼 맞는 말은 역시 '본새'이다.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렇게 말해서 다르고 또 저렇게 말해서 다른 법이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때는 정말 조심해서 해야 한다.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표현으로 흔히 ‘말본새[말:뽄새]’라고 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서

 

"말본새[말:뽄새]가 왜 그래?"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말본새’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아마 많은 분들도 이해하실 수 있을 텐데, ‘말본새’는 ‘말하는 태도나 모양새’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표현에서 앞에 있는 ‘말’이라는 명사를 동사 ‘말하다’로 바꿔서 말하면 어떻게 될까? 


‘말하는 뽄새 왜 그래?’라고 해야 할 것 같지만, 이때는 ‘말하는 본새[본새]가 왜 그래?’와 같이 ‘본새’를 예사소리로 쓰고 또 발음도 [뽄새]가 아닌 [본새]라고 예사소리로 해야 한다. ‘본새’라는 말을 ‘뽄새’로 잘못 알고 사용하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어떤 물건의 본디의 생김새’를 의미하는 말은 ‘뽄새’가 아니라 ‘본새’가 맞다. 그런데 앞에서도 들으신 것처럼 앞에 ‘말’이라는 표현이 붙으면 ‘말’의 ㄹ 받침 때문에 ‘ㅂ’이 된소리로 바뀌어서 [뽄새]라고 발음하게 되는 것이니까 혼동 없이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시대에 따른 트랜드가 있는 모양이다. 한동안 음식과 관련된 예능 프로그램이 유행했었다. 유명 연예인들 몇 명이 몰려다니며 외지에서 음식을 해 먹거나 음식을 팔고, 맛집 탐방을 한다든지 또는 음식 만들기 경연 프로그램 등등 텔레비전을 틀기만 하면 여기저기 음식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종류의 프로그램들이 죄다 없어진 것은 아니다. 아니 앞으로도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조건 중의 하나가 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먹거리와 관련된 예능이 정점을 지나더니만 요즘엔 만남과 연애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눈에 많이 띈다. 연예인과 일반인과의 만남이나 이혼하고 싱글이 된 돌싱들 간의 만남, 또는 일반인들끼리의 만남 등 다양한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 세대를 넘어, 내 집 마련과 경력까지 포기했다는 오포 세대를 얘기하더니만 이젠 아예 N 가지를 포기했다는 N포 세대란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연애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시청률이 높다. 아마 자신은 포기했더라도 남들은 어떤지 궁금해하거나 내가 하지 못하는 걸 다른 사람을 통해 대리 만족하려는 시청자 수요가 시청률을 높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여러 방송사에서 조금씩 변형하여 비슷한 프로그램을 생산해내고 있다. 나도 얼마 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여성 연예인들과 일반인 남성들과의 만남을 통해 연애 상대를 선택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여성 연예인들은 시청자들이 알 만한 얼굴들이고, 남성 출연자들도 연예인 못지않게 준수하고 해사한 선남들이었다. 당연히 연예인과 걸맞은 대상을 섭외했을 것이다. 얼굴이나 외모만 호감이 가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밝혀진 그들의 직업 또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호감과 매력을 일순간 상쇄하는 실망스러운 장면이 있었다. 바로 남성 출연자들의 글본새였다.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주어진 질문에 출연자들이 직접 손글씨로 답변한 글씨체가 화면에 소개되었는데 엉성하고, 정돈되지 않아 심하게 말하면 괴발개발 쓴 것 같은 글씨를 보는 순간 그들에 대해 해낙낙했던 마음이 날큰해졌다. 

준수한 외모와 점잖은 말본새 그리고 내놓을 만한 직업 등으로 출연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호감이 갔지만, 글본새를 본 순간 미시감이 들었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출연자 네 명의 글본새가 모두 어금지금하다는 것이다. 한 명은 외국에서 자라서 한국말에 서툴러서 그렇다고 쳐도 나머지 세 사람은 사회적 위치에 비해 글본새가 너무 형편없었다. 비단 여기에 언급한 출연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성인의 글본새 문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해되는 면이 없진 않다. 워드 프로세스의 보급으로 모든 문서, 편지, 보고서 등을 컴퓨터를 통해 처리하다 보니 직접 손으로 글씨를 쓸 기회가 많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대부분 글본새가 형편없고, 컴퓨터를 많이 다뤄보지 않은 나이 든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글본새가 나은 편이다. 글본새 문제는 다만 글씨체뿐만 아니라 맞춤법도 포함되어 있다.

모 일간지 칼럼에서 한 결혼 정보 회사가 미혼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연인에게 정떨어지는 순간’을 조사한 결과를 밝혔다. 제일 많은 응답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로 43.4%였고 그다음으로 많은 응답이 ‘반복적으로 맞춤법을 틀릴 때’로 32.3%였다. 이는 우리가 연인 사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념일을 잊었을 때’나 ‘시사 상식이 부족할 때’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라고 한다. 예로 늘어놓은 ‘일해라 절해라(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에어컨 시래기(실외기)’, 미모가 일치얼짱(일취월장)’, ‘삶과(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괴자(계좌) 번호’ 또는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를 ‘심각한 일에 심심하다고 쓰다니’라고 한다면 나 같아도 정이 떨어질 것만 같다.

아주 오래된 일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같은 교회에 아주 예쁜 여학생이 있었다. 남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던 것은 물론이고 내남없이 사귀고 싶어 했었다. 하루는 공과 시간에 교사가 철학자 얘기를 하면서 칠판에 ‘니-체’라고 썼더니 이 여학생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 나체’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에 대한 환상이 깨졌던 기억이 있다.

맞춤법에 맞게 쓰면서 정리되고 일관된 글씨체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글본새를 갖추는 일은 비단 남세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투자이다.

 

글씨체를 연구하는 ‘필적학’(Graphology)이란 학문에서 글씨체는 뇌의 흔적이기 때문에 글씨의 크기, 필압 또는 모양 등을 분석해 보면 글 쓴 사람의 성격, 성향, 행동 패턴 및 심리 상태 등을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자신이 닮고 싶은 롤모델의 필체를 따라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성격과 습관을 교정하게 되어 결국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노력하면 말본새를 바꿀 수 있듯이 우리의 글본새도 바꿀 수 있고 그로 인해 우리 인생도 바꿀 수 있다고 하니 더 이상 컴퓨터 글꼴에 의지하지 말고 직접 글을 쓰면서 글본새를 바로 잡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 사회적 크기나 질, 문화나 철학, 정신적 가치의 척도 중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 그 사회가 사용 중인 언어다. 그 언어의 속도나 크기 구성력, 단어 등은 가치와 품격을 결정짓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말이 아닌 진심을 다하는 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1. 어떤 물건의 본디의 생김새. 

2. 어떠한 동작이나 버릇의 됨됨이.

 

본새의 사전적 해석이며 의미다. "말뽄새" 라는 사투리적 표현도 사용을 한다.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더구나 같은 문자를 사용하니 대화하기 가장 좋은 상대가 있다. 이해의 깊이와 폭도 당연히 크다고 생각하고 편할 것이라는 기대도 항상 가지고 있는 상대가 있다. 우리가 베풀어야 할 위치이기도 하고 그만한 여유도 있으며 그럴 마음도 가지고 있고, 연민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으며 그만큼 용서도 많이 하고 있는 상대가 있다. 과연 그들과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들의 언어를 들으면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번민이 항상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언어는 감정에 따라 욕을 할 수도, 극적인 감정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우리도 그러려니 하고 인정 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들 스스로 하나의 국가로 내세우며 그렇게 인정받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들의 대외적 공식 담화문이나 통신문의 언어를 보면 과연 그들은 최소한의 예의나 매너, 품격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는 집단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 산속에 근거지를 둔 화적패거리나 산적패거리들이나 사용했을 법한 단어나 문장을 서슴없이 사용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절로 혀를 차게 한다.

 

"왜 그들은 최소한의 언어적 순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가?"

 

언어가 가지는 그 위험하고 아름다운 힘을 그들은 진정 모르는 것인가. 우리는 이미 보편적이며 다양한 인종전시장 같은 국가가 된지 오래다. 우리말을 잘하는 외국인은 주변에 흔하며 한류를 이유로 한국어를 배우고 한글공부를 위해 유학을 와있는 젊은 대학생들도 많다. 그들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삶은 소대가리’가 무슨 뜻인가요? 과연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그냥 사전적인 해석으로 설명하며 우리 대통령이 그렇게 생겼다고 이해시킬 것인가. 내게 한 말도 아닌데 왜 내가 그리 창피하고 부끄럽고 분노해야 하는가. 그것도 이해라는 범주에 넣어 묻고 넘어가야 하는가? 

하긴, 우리들끼리도 못지않은 험한 말들로 서로 아귀다툼을 하고 있으니 요즘에는 더 무감각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언어는 우리가 쓰고 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다. 가꾸고 다듬어 사용하고 깨끗하고 품위있게 유지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세계적인 문자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라 자랑스러워하면 무엇 하는가. 그 문자로 표현하는 언어들이 쓰레기면 자연스럽게 그 문자도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불과 몇 십 년 전 우리의 말과 문자를 빼앗겼던 것을 잊었는가. 당당하고 품격 있는 언어를 우리 모두가 사용한다면 그에 기인한 행동과 사상, 철학까지 그렇게 바뀔 것이다. 어렵고 무게 있는 언어를 사용하자는 것이 아니다. 쉽고 알아듣기 좋은 말이 가장 좋은 언어가 될 것이다. 그래서 공통분모를 가진 의성어, 의태어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본새의 품격을 추구하고 품격이 없는 상대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사회적 크기나 질, 문화나 철학, 정신적 가치의 척도 중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 그 사회가 사용 중인 언어다. 그 언어의 속도나 크기 구성력, 단어 등은 가치와 품격을 결정짓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말이 아닌 진심을 다하는 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1 어떤 물건의 본디의 생김새.

2 어떠한 동작이나 버릇의 됨됨이. 

 

본새의 사전적 해석이며 의미다. 말뽄새 라는 사투리적 표현도 사용을 한다.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더구나 같은 문자를 사용하니 대화하기 가장 좋은 상대가 있다. 이해의 깊이와 폭도 당연히 크다고 생각하고 편할 것이라는 기대도 항상 가지고 있는 상대가 있다. 우리가 베풀어야 할 위치이기도 하고 그만한 여유도 있으며 그럴 마음도 가지고 있고, 연민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으며 그만큼 용서도 많이 하고 있는 상대가 있다. 과연 그들과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들의 언어를 들으면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번민이 항상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언어는 감정에 따라 욕을 할 수도, 극적인 감정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우리도 그러려니 하고 인정 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들 스스로 하나의 국가로 내세우며 그렇게 인정받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들의 대외적 공식 담화문이나 통신문의 언어를 보면 과연 그들은 최소한의 예의나 매너, 품격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는 집단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 산속에 근거지를 둔 화적패거리나 산적패거리들이나 사용했을 법한 단어나 문장을 서슴없이 사용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절로 혀를 차게 한다. 왜 그들은 최소한의 언어적 순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가. 언어가 가지는 그 위험하고 아름다운 힘을 그들은 진정 모르는 것인가. 우리는 이미 보편적이며 다양한 인종전시장 같은 국가가 된지 오래다. 우리말을 잘하는 외국인은 주변에 흔하며 한류를 이유로 한국어를 배우고 한글공부를 위해 유학을 와있는 젊은 대학생들도 많다. 그들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삶은 소대가리’가 무슨 뜻인가요? 과연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그냥 사전적인 해석으로 설명하며 우리 대통령이 그렇게 생겼다고 이해시킬 것인가. 내게 한 말도 아닌데 왜 내가 그리 창피하고 부끄럽고 분노해야 하는가. 그것도 이해라는 범주에 넣어 묻고 넘어가야 하는가? 

하긴, 우리들끼리도 못지않은 험한 말들로 서로 아귀다툼을 하고 있으니 요즘에는 더 무감각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언어는 우리가 쓰고 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다. 가꾸고 다듬어 사용하고 깨끗하고 품위있게 유지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세계적인 문자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라 자랑스러워하면 무엇 하는가. 그 문자로 표현하는 언어들이 쓰레기면 자연스럽게 그 문자도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불과 몇 십 년 전 우리의 말과 문자를 빼앗겼던 것을 잊었는가. 당당하고 품격 있는 언어를 우리 모두가 사용한다면 그에 기인한 행동과 사상, 철학까지 그렇게 바뀔 것이다. 어렵고 무게 있는 언어를 사용하자는 것이 아니다. 쉽고 알아듣기 좋은 말이 가장 좋은 언어가 될 것이다. 그래서 공통분모를 가진 의성어, 의태어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본새의 품격을 추구하고 품격이 없는 상대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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