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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라디오를 켜다(O) vs 라디오를 키다(X)

by 61녹산 202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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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가 아니라 켜다가 옳다

 

 

 

 

스위치를 돌려 전기를 흐르게 하는 걸 켜다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키다'라고 잘못 발음하고 있다. "잠 좀 자게 라디오 좀 켜지 마"라고 할 것을 "키지 마"라고 하는 것을 종종 듣곤 한다. 전기를 흐르게 하는 걸 뜻하는 말 '켜다'는 이 밖에도 굉장히 많은 뜻을 갖고 있다. 

 

켜다의 쓰임

 

촛불을 켜다 : 불을 일으키다

기지개를 켜다 : 기지개를 하다

바이올린을 켜다 : 활로 현악기의 현을 문질러서 소리를 내다

물을 켜다 : 단숨에 들이마시다

나무를 켜다 : 세로로 톱질하여 쪼개다

고치를 켜다 :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다

엿을 켜다 : 엿을 다루어 희게 만들다

수컷이 암컷을 켜다 : 동물의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소리를 내다

우레를 켜다 : (동물을 부르려고) 사람이 동물 소리를 내다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로 시작하는 유명 가요가 있다. 이해인 수녀는 시 '촛불 켜는 밤'에서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밤, 시를 쓰는 겨울밤은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인가"

 

라고 노래한다.

 

촛불과 어울리는 동사가 '키다'가 아니라 '켜다'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등잔이나 양초 등에 불을 붙이거나 전류를 통하게 하다' 라는 뜻에서 쓰는 말은 '키다'가 아니라 '켜다'이다. 예를 들면

 

"텔레비전을 켜서 뉴스 좀 보자"

"춥다고 온풍기를 너무 오래 켜면 공기가 건조해져 피부 건강에 해롭다"

 

등이 있다. 

 

이 밖에 '톱질해서 자르다' '팔다리를 쭉 뻗으며 몸을 펴다' '현악기 줄을 활로 문질러 소리를 내다' '갈증이 나서 물을 자꾸 마시다' 같은 뜻도 있다.

 

"흥부가 박을 켜자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왔다."

"내 동생은 일어나자마자 기지개부터 켠다."

"한 첼리스트가 연주회에서 첼로를 켰다."

"점심을 짜게 먹었더니 벌써 물을 세 컵이나 켰어."

 

등이다.  많은 사람이

 

"눈에 쌍심지를 키고 일한다"

"불을 키면 잠을 자기 어렵다"

 

처럼 '켜다'를 써야 할 곳에 '키다'를 쓰고 있다. 사실 '키다'는 일부 지역 사투리를 표준어처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한편, 오케스트라 안에는 상당히 많은 악기들이 있다. 소리도 다르고 음을 내는 방식도 다른 그 많은 악기들이 서로 균형을 맞추고 양보와 협동을 통해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악기 중에는 현악기, 관악기, 건반악기, 그리고 타악기와 같이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오케스트라에는 바이올린, 첼로와 같은 현악기 주자들이 가장 많다. 현악기의 줄을 활 같은 것으로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 것을 표현할 때 ‘키다’를 쓰는 경우가 많다. ‘바이올린을 키다’ 또는 ‘첼로를 키다’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켜다’를 쓰는 것이 올바른 표기법이다. 현악기를 연주할 때뿐만 아니라 ‘불’ 종류를 일으킬 때도 ‘키다’가 아니라 ‘켜다’를 쓰는 것이 맞다. 이와 비슷한 예로 ‘펴다’를 ‘피다’로 발음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책을 피다’나 ‘어깨를 피다’ 같은 것이 그런 옌데요, 이때도 역시 ‘책을 펴다, 어깨를 펴다’가 맞는 표현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켜다’나 ‘펴다’를 쓰는 대신 ‘키다’나 ‘피다’를 쉽게 쓰는 것은 아마도 그쪽이 발음하기가 더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표현들은 서로 다른 뜻을 가진 별개의 표현들이니까 정확하게 발음해야만 한다.

 

물이 그리워지는 여름이면 떠오르는 낱말이 있다. ‘들이켜다’와 ‘들이키다’다. 물을 벌컥벌컥 마실 때 위아래로 움직이는 목울대, 생각만 해도 더위와 갈증이 싹 가신다. 허나 이 두 낱말, 글꼴도 비슷하고 ‘과거형’이 ‘들이켰다’로 똑같지만 뜻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처럼 ‘들이켜다’만 인정한다. ‘들이키다’는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발을 들이키고 섰다’처럼 ‘안쪽으로 약간 옮기다’의 의미다. 사실 잘 쓰지 않으니 사어(死語)나 마찬가지다. 반면 북한은 물이나 술에 대해서는 ‘들이키다’를 ‘들이켜다’와 같은 의미로 쓴다. ‘들이마시다’ ‘들여마시다’도 마찬가지. 우리는 ‘들이마시다’만을 표준어로 삼고 있지만 북한은 둘 다 쓴다.

물의 세계에도 재미난 표현이 수두룩하다.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슬픈 눈칫밥이 있듯,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사라지지 않는 물이 있다. 헛물이다. 그래서 보람 없이 애만 쓰는 일을 ‘헛물켠다’고 한다. ‘자리끼’는 잠잘 때 머리맡에 두는 물이다. 자리끼도 사람과 함께 잠든다고 생각해서일까, 밤을 지낸 자리끼는 ‘밤잔물’ ‘밤잔숭늉’이라고 한다.

 

맛도 모르고 마구 들이켜는 물이나 논에 물을 댈 때 딴 데로 새는 물은 ‘벌물’이다. 소리가 같은 ‘벌(罰)물’은 고문을 할 때 강제로 먹이는 물이다. 간장을 뜨기 전에 장물이 줄어드는 만큼 새로 채우는 소금물은 ‘제깃물’이라 한다. 마중물은 펌프질을 할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붓는 한 바가지쯤의 물을 이르는데, 팍팍한 삶의 윤활유라고나 할까.

나비물처럼 예쁜 이름도 있다. 세숫대야 같은 데에 물을 담아 가로로 쫙 퍼지게 끼얹는 물이 나비물이다. 더운 여름날 마당에 시원하게 물 뿌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때 튀는 크고 작은 물방울을 물찌똥이라고 한다. 방울꽃은 물방울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이다.

더러워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물도 있다. 구정물은 무엇을 씻거나 빨아서 더러워진 물, 쇠지랑물은 외양간에 고인 쇠오줌이 썩은 물이다. 지지랑물은 비 온 뒤 썩은 초가집 처마에서 떨어지는 검붉은 낙숫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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