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언문, 중클, 암클, 가갸글, 그리고 한글. 한글이 우리나라의 고유 문자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글'이라는 명칭을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들고 쓰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마도 별로 없어 보인다. 정말 아쉽게도 우리 국어학계는 이런 질문에 정확하고 단호하게 내세울 수 있는 공식적인 답을 아직 준비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사과를 드리고 싶다.
한글이라는 명칭은 주시경 선생의 <소리갈 1912년>에 처음 보이며, 아동 잡지 <아이들보이 1913>에 이어서 나온다. 이로 보면 '한글'은 1910년대 이후부터 등장한 명칭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훈민정음을 비롯하여 언문, 반절, 동문, 국문, 조선문 등의 다양한 명칭이 존재했다. 이 가운데 국문은 갑오경장 후에 자주 의식의 발현 속에서 만들어진 명칭이다. 주체적 시각에서 우리말을 국어, 우리 문자를 국문이라 추앙해 불렀던 명칭이다. 조선문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억지로 강요한 명칭으로 여기에는 우리글을 일본의 한 지방 글자 정도로 격하시키려는 밴뎅이 속알딱지 심사가 숨어 있다. '한글'은 국문을 부정하고 조선문을 강요하는 일제에 맞서 새로 만든 이름임에는 분명하다. 이것이 1910년대 문헌부터 나타나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닌 듯하다. 한글이라는 명칭을 누가 만들었느냐에 대해서는 '최남선, 박승빈, 주시경' 설이 있는데 대체로 주시경 설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물론 특정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주장 또한 기세등등하다.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양하다. 주시경 선생이 쓴 '한나라 글'을 줄인 것이라는 설, 한문의 문을 글로 풀어 쓴 것이라는 설, 한자 '한(韓)'과 '글'을 결합한 것이라는 설, 글에 접두사 한(大)을 결합한 것이라는 설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조어 과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보니 한글의 의미 해석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한을 대한제국 또는 조선을 가리키는 한(韓)으로 보아 '대한제국의 글' 또는 '조선의 글'로 해석하기도 한다. '한-'을 '대(大)'의 뜻으로 보아 '큰 글'로 해석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한'을 일(一)의 뜻으로 보아 '하나의(유일한) 글'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들 가운데 '대한제국의 글, 또는 조선의 글'이라는 설이 우세하다. '한옥, 한복, 한지' 등과 같은 '한(韓)' 계열어를 고려하면 '한문, 한어'가 있을 수 있고, '문(文)'을 글로, 어(語)를 '말'로 바꾸어 '한글'과 '한말'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한문의 문'을 굳이 글로 바꾸어 한글을 만든 것은 한문(한문)이 한문(한문)과 혼동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한문'이라는 말이 대한제국 성립 이전부터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한(韓)은 조선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나 한다. 그렇다면 한문이나 그것에 나온 한글은 조선의 글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한글을 주시경 선생이 만든 것으로 보면, 그의 호를 한(大)을 이용하여 한힌샘(크고 흰 샘)이라 했듯, 우리글을 한(大)을 이용하여 한글이라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한글 명칭에 대한 위의 설명은 모두 추정에 불과하다. 한글과 관련된 여러 의문점이 언제쯤 속 시원히 풀릴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다.
한글을 일컫는 이름은 여러 가지이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 당시에는 ‘훈민정음’이라 불렀는데, 이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이 때의 소리는 글자와 통한다. ‘바른’이라는 꾸밈말을 붙인 이유는, 한자를 빌려 쓰는 것과 같은 구차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제대로 적을 수 있는 글자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훈민정음』은 바로 이 이름을 쓴 책이고, 그 밖의 여러 문헌에도 이 이름은 많이 나타나고 있다. ‘훈민정음’을 줄여 ‘정음’이라고도 하였는데, 이 이름은 훈민정음 해례의 끝에 있는 정인지의 글에 이미 나타나 있다.
‘언문(諺文)’이라는 이름은 최근까지 쓰였는데, 이것은 그 유래가 오래된 말이다. 원래 ‘언’이란 ‘우리말’ 또는 ‘정음’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 해례에 보면, “문(文)과 언(諺)을 섞어 쓸 때는……” 또는 “첫소리(초성)의 ㆆ과 ㅇ은 서로 비슷하여 언에서는 가히 통용될 수 있다. ”라고 하였고, “반혓소리 ㄹ은 마땅히 언에 쓸 것이지 문에는 쓸 수 없다. ”고 하였는데, 여기서‘언’은 우리글 · 우리말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그리하여 <세종실록>에는 언문청(諺文廳)이라는 말이 나오고(28년 11월조), 또 바로 ‘언문’이라는 말도 나타난다(25년 12월조). 또, 그 뒤로는 ‘언서(諺書)’라고도 하였으니, 이것은 한문을 ‘진서(眞書)’라 한 데 대립시킨 말이다.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는 ‘반절(反切)’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는데, 중국 음운학의 반절법에서 초 · 중 · 종성을 따로 분리하는 방법을 쓰기 때문에, 정음이 초 · 중 · 종성을 분리하여 표기하는 점에서 이와 비슷하다고 보아 붙인 이름인 듯하다.
‘암클’이라는 이름도 쓰였으니, 이는 부녀자들이나 쓰는 글이라는 뜻이다. 선비가 쓸 만한 글은 되지 못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1908년 주시경을 중심으로 국어연구학회가 만들어졌으나, 일제의 탄압에 못 이겨 바로 ‘배달말글몯음’으로 이름을 고친 후, 1913년 4월에는 다시 그 이름을 ‘한글모’로 고쳤다. 이 때부터 ‘한글’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한 듯하며,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27년 한글사에서 펴낸 『한글』(7인의 동인지)이라는 잡지에서부터이다.
‘한글’의 ‘한’은 ‘하나’ 또는 ‘큰’의 뜻이니, 우리글을 ‘언문’이라 낮추어 부른 데 대하여, 훌륭한 우리말을 적는 글자라는 뜻으로 권위를 세워 준 이름이다. 이는 세종이 ‘정음’이라 부른 정신과 통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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