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라 함은 주로 사람 모습을 한 것이 많으므로 제구실을 잘 하지 못한 채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빗대어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허숭아비 · 허시아비라고도 하며, 줄인 말로 ‘허제비’ · ‘허사비’ · ‘허아비’라고도 일컫는데, 허제비는 지역에 따라 허깨비와 같은 환상의 형상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새를 천상과 지상을 이어 주는 신령한 존재나, 씨앗을 가져다 주는 곡모신(穀母神)으로 믿던 고대에는 허수아비가 종교적 주술물의 구실을 했으나, 후대에 내려올수록 새나 짐승을 위협해서 쫓을 수 있는 실제적 형상물 구실을 하게 되었다. 주술적 형상물에 의해 새를 쫓는 일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자, 새의 눈을 속이는 거짓 형상물을 만들어 새가 위협을 느끼고 농작물에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허수아비의 형상 가운데 원형에 가까운 것은 장대를 가진 사람의 모양이다. 새에게 농작물에 가까이 가면 장대에 맞아 죽게 될 것이라는 공포심을 주기 위해서 새를 쫓는 장대를 들고 있게 하였다. 여기서 조금 나아간 형상이 사냥꾼의 모습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활을 든 사냥꾼의 모습에서 총을 든 사냥꾼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농부의 모습으로 많이 꾸민다. 새들이 가장 익숙해 있는 사람은 농부들이기 때문에 농부가 제일 무서운 존재인 것이다.
허수아비는 나무막대기나 짚 또는 새끼 등을 이용하여 十자형으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헌 옷을 입히며, 짚이나 새끼를 이용하여 머리 형상을 만들어 붙이고 옷가지로 덮어 씌운 뒤에 숯이나 먹물로 눈 · 코 · 입 등을 그려 넣는다. 그리고 큰 밀짚모자를 씌워 둔다. 자연히 팔을 좌우로 벌린 채 외발로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을 하게 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밀짚모자가 중절모자 또는 운동모자 등으로 바뀌고, 허수아비에게 입히는 옷은 농부들이 입던 한복에서 양복으로 바뀌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늘 헌 옷으로 허수아비를 꾸미기 때문에 항상 옷차림이 남루한 거지 모습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만든 허수아비는 논둑이나 밭둑에 세우기도 하고, 논밭 가운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세우기도 하는데, 세울 때에는 외다리 노릇을 하는 막대기를 땅에다 꽂아서 세워 두므로, 바람이 불면 앞뒤로 잘 흔들린다. 두 다리를 만들어 세우지 않고 외다리를 만들어 꽂아 두는 까닭은 허수아비가 잘 흔들려서 살아 있는 듯 보이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새떼들이 허수아비임을 눈치채고 조심조심 벼논에 몰려들었다가도 허수아비가 앞뒤로 우쭐우쭐 흔들리게 되면 놀라 날아가게 마련이다.
이러한 효과를 더 잘 내기 위해 허수아비 손 끝에다 새끼줄을 연결해 두고 새끼줄에 깡통과 헝겊을 매달아서 허수아비가 움직이면 새끼줄이 흔들리면서 깡통소리와 함께 헝겊도 너풀거려 새들이 깜짝 놀라서 달아나게 한다. 주로 사람 모양으로 만들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뱀의 모양을 한 허수아비나 죽은 새의 날개를 같은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뱀은 새들이 겁을 내는 동물이므로 뱀의 모형을 짚으로 만들어 장대에다 휘휘 감아 두고 겉을 불에 그을려서 세워 두면, 뱀이 장대를 기어오르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그리고 죽은 새의 날개를 구해서 장대에 매달아 두기도 한다. 새들이 천적관계에 있는 뱀의 모습을 보고 두려워 쉽게 접근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새들의 시체를 보고서도 자신의 목숨에 위협을 느껴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다. 매우 기능적인 것으로는 솔개나 매 모양의 허수아비를 들 수 있다. 천이나 종이로 매 또는 솔개 모양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실에 연결해 두면 바람을 받아 갑자기 날아오르기도 하고 내려앉기도 하므로 새들이 기겁을 하고 달아나게 된다. 새의 생태와 심리상태를 깊이 이해한 뒤에 비로소 형성된 허수아비라고 하겠다.
충청남도 공주군 반포면 학봉리에서는 돌을 허수아비 모양으로 쌓아서 새를 쫓도록 하는데, 짚허수아비와 구별하여 돌허수아비라고 한다. 허름한 차림으로 논가에 서 있는 허수아비의 모습을 근거로 그 유래를 이야기하는 전설도 있다. 계모의 학대로 집을 쫓겨나 남의 집에서 머슴노릇하는 불쌍한 아들 ‘허수’를 찾아다니다가 거지가 된 허수아버지가 아들이 새 보는 논둑에 쓰러져 죽었는데, 새들이 허수의 아버지를 보고 날아들지 않아서 그 뒤부터 사람들이 새를 쫓기 위해 허수 아버지의 모습, 곧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우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한편, 곡식이 여물기 시작하면 들판 곳곳에 허수아비가 세워진다. '허수아비'는 극성스런 새 떼로부터 공들여 가꾼 농작물을 지켜주는 최전방의 파수꾼이다. 그런데 요즘 새들은 약아빠져서 허수아비 쯤은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깡통을 달아 흔들고, 공포를 쏘아대야 겨우 들은 척 하는 것이 요즘의 진화된 새들인 모양이다.
허수아비의 모습은 어떤가? 해어진 옷가지를 걸치고 삿갓을 비스듬히 쓴 모습이 무척 우스꽝스럽다. 껄렁하게 보이기도 하고 깡똥맞게 보이기도 하고 암튼 우스꽝스런 모습이 '허수아비'라는 단어에서도 느껴지니 제법 흥미를 자극한다.
허수아비라는 단어는 19세기 문헌에서야 발견된다. 이 시기 문헌에는 '허수아비'와 더불어 그와 어형이 유사한 '허아비, 헤아비'도 등장한다. 18세기 문헌에는 '허수아비'와 같은 의미의 단어로 추정되는 '정의아비'가 보이는데, 이것이 허수아비보다 오래된 단어 형태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정의아비는 허수아비에 밀려나 함북 방언에 겨우 남아 있다고 한다.
사전에 따라서는 허아비를 허수아비의 준말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두 단어는 서로 다른 경로를 거쳐 만들어진 것이어서 그렇게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허아비'의 '허는 한자 허(虛)이고, 아비는 본래 부(父)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기럭아비, 돌진아비, 술아비, 윷진아비, 장물아비, 중신아비' 등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비천하거나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남자 정도를 가리키는 말로 보인다. 허수아비가 허술한 남성 복장의 농부 형상을 한 가설물이기에 단어 만들기에 '허(虛)'와 '아비'를 이용한 것 같다. '헤아비'는 '허아비'의 제1음절에 '이'가 첨가된 어형이다.
허수아비는 헛아비에서 온 말이다. 헛아비는 문헌에서 발견되지 않지만 방언형 '허사비(경북, 헛 + 아비), '허새비(경북, 전남, 전북)', '허세비(경북, 전남)' 등을 통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헛아비'의 헛은 '허(虛)'와 'ㅅ'의 결합형으로 거짓의, 속이 빈, 실속이 없는, 소용없는 등의 의미를 더한다. 그렇다면 헛아비는 결국 '거짓 남성 형상의 가설물' 또는 '속이 빈 남자 형상의 가설물' 정도로 뜻풀이를 해 볼 수 있다. 허수아비의 허술한 목골과 일치하는 의미이다.
허수아비는 헛아비에 조음소 '으'가 개재된 '허스아비'를 거쳐 나타난 어형으로 중간 단계의 허스아비가 경북 방언에서 보인다. 헛아비가 허스아비로 된 것은 웃머리(우두머리)가 웃으머리로 된 것과 같다. 허수아비가 헛아비에서 온 것이므로 그 의미는 헛아비와 동일하다. 그런데 헛아비는 표준어가 아니다. 헛아비에서 변형된 허수아비가 세력을 얻으면서 헛아비는 세력을 잃고 일부 지역 방언으로 추락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허수아비, 허아비만 표준어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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