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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행주치마의 어원 : 부엌 살림의 필수품

by 61녹산 2023.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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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치마로 정말 돌을 날랐을까?
행주치마로 정말 돌을 날랐을까?

본래 ‘행주’란 그릇을 훔치거나 씻을 때 쓰는 헝겊을 말하는데, 행주치마는 이러한 용도도 겸하였으므로 붙여진 이름 같다. 최세진(崔世珍)이 1517년(중종 12)에 편찬한 『사성통해(四聲通解)』, 1527년(중종 22)에 편찬한 『훈몽자회(訓蒙字會)』에 ‘ᄒᆡᇰᄌᆞ쵸마’가 보인다.

 

일설에는 1593년(선조 26) 2월 행주산성에서 권율(權慄)이 왜병을 맞아 싸울 때, 성 안의 부녀자들까지 합세하여 치마에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공급해줌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당시의 부녀자들의 공적을 기리는 뜻에서 치마의 명칭에 ‘행주’라는 지명을 따서 ‘행주치마’라고 일컫게 되었다고도 한다. 

 

흰색 무명류를 사용하여 치마의 반폭 정도로 만들어 뒤가 휩싸이지 않게 하였고, 길이는 치마보다 짧게 만들었다. 걸을 때나 일할 때에는 치마가 늘어지는 불편을 덜기 위하여 위를 걷어올리고 허리띠로 매어 ‘거들치마’를 하였는데, 그 위에 행주치마를 둘렀다. 행주치마를 입고 일을 하다가도 웃어른 앞에 나설 때에는 반드시 이를 벗는 것이 법도였다. 

 

기껏 민간어원설로 우리말의 정서를 조율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한데 이제는 많은 학자들이 우리말 어원을 학문적으로 연구 규명함으로써 좋은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갈채를 받을만 하다. 그런 한편 우리말의 기왕의 의미 정서가 바뀌거나 엷어져가고 있어 서운하게 생각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가령 [행주치마]란 말이 그렇다. 행주치마하면 임진왜란과 행주산성과 나라를 지킨 우리 어머니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임진년 다음 해인 계사(1593)년 2월 권율도 원수가 고양 행주산성에 배수진을 치고 왜적을 맞아 싸울 때 근동의 부녀자들도 합세하여 싸움을 도왔다고 한다. 이때 부녀자들은 앞치마에 돌멩이를 담아 날라와 왜적에게 퍼부움으로써 적을 물리치는데 크게 공헌했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에피소드다. 이 일로해서 앞치마를 [행주치마]로 부르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행주치마란 말은 국난을 극복한 어머니들의 민족적 자부심이 깃들어 있는 말이다.

 

요즘은 衣습관의 변화로 행주치마도 행주치마라는 말도 보고 듣기가 어려운 현실이지만 절에서의 행자치마가 변한 말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행자치마라는 말이 있었고, 그 기록이 훈몽자회(訓蒙字會)에 올라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행주치마의 어원이 행자(行者)치마라는데는 적이 불편함을 느낀다. 우리나라 절 풍속에 행자(行者)가 치마를 두르고 공양을 지었다는 말인가.그리고 그 치마를 행자치마라고 불렀느냐는데 대해 스님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그럼 옛날에는 있었는 데 지금은 사라졌다는 말인가? 종교나 특수한 집단 안의 용어는 그 집단이 살아있는 한 쉽게 없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고 보면 행주치마의 어원이 행자치마에서 왔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비록 비과학적인 민간어원이라 하더라도 차라리 幸州산성 싸움과 연결된 행주치마로 놔두는 것이 훨씬 우리의 민족정서에 지렛대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제법 있는 듯하다. 물론 정서와 과학의 분야가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 이 아닌 한 서로 상보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신선한 방법이 될 듯 하다. 

'행주치마'는 부엌일을 할 때 옷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덧입는 작은 치마를 말한다. 그런데 요즘 '행주치마'라는 말은 좀처럼 들을 수 없는 형편이다. 행주치마가 쓰여야 할 빈 공간을 주로 '앞치마'가 차지했다. 간혹 '에이프런'이라는 외국어도 쓰이고 있다. 행주치마가 잘 쓰이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행주가 지저분한 느낌을 주어 그것을 포함하는 행주치마 또한 그러한 느낌이 들어 기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지 않을가 추정하고 있다. 

 

행주치마의 유래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행주대첩과 관련된 설이 전해온다. 임진왜란 당시 행주산성 싸움에서 부녀자들까지 나서서 투석전을 벌였는데, 이때 부녀자들이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든 옷에 돌을 날라 싸웠다고 하여 행주치마라는 말이 나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이는 전형적인 민간어원이다. '행주치마'의 어원 설명이 궁색해지자 '행주'를 음이 같은 지명 '행주(幸州)'와 연결한 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행주대첩이라는 역사적 사건까지 동원하여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으로 보인다.

 

 

행주대첩
행주대첩

 

 

행주대첩에서 대승을 거둔 것이 1593년인데, 행주치마와 관련된 '행자쵸마'라는 단어는 이보다 한참 앞서 1527년 문헌에 떡 하니 등장하므로 '행주치마'가 '행주대첩'에 근거하여 처음 만들어진 말이라는 주장은 시기상 맞지 않는다. 행주치마는 행주대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이다. '행자쵸마'의 '행자'는 '닦는 천'을 뜻한다. 이를 한자어 '행자(行者 속인으로 절에 들어가 불도를 닦는 사람)'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당시 '자(者)'의 한자음이 '자'라는 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행자'의 어원을 밝히기는 어렵다. '행자'는 일정한 음운 변화를 거쳐 현대국어 행주(그릇, 밥상 따위를 닦거나 씻는 데 쓰는 헝겊조각)'로 이어졌다. 그릇이나 밥상을 닦는 '행주'는 주방의 필수품이다. 

 

'쵸마'는 치마와 같은 뜻이다. 중세국어에는 '쵸마'와 더불어 그와 같은 의미의 '츄마, 치마'도 있었는데, 이들은 제1음절의 모음에서만 차이를 보여 기원적으로 같은 말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쵸마' 또한 그 어원을 밝히기 어렵다. '쵸마'는 '초마'로 변하여, 그리고 행자쵸마는 행주초매(강원), 행자초마(전남) 등으로 변하여 일부 방언에 흔적이 약간씩 남아 있을 뿐이다. 

 

쵸마, 츄마, 치마 가운데 중세국어 이래 가장 활발하게 쓰인 것은 '치마'다. 그리하여 '행자쵸마'에 대한 '행자치마'도 이른 시기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마침 17세기 문헌에 '행자치마'가 나오므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 행자치마는 행자의 변화에 따라 행주치마로 변하여 현재에 이른 것이다. 

 

행주치마를 대신할 앞치마는 본래 몸 앞부분에 두르는 치마를 두루 일컫던 것이, 부엌용에 한정되면서 행주치마와 같은 의미를 띠게 된 것이다. 요즘의 앞치마는 이전의 행주치마만큼이나 용도가 다양하지는 않아 보인다. 예전의 행주치마가 물이 묻거나 오물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물 묻은 손을 훔치고, 그릇의 물기를 닦으며, 뜨거운 솥뚜겅을 들어올리기 위해서 사용되었다면, 요즘의 앞치마는 단순히 옷 보호용으로 옷이 더럽혀지는 것을 방지하게 위해 덧대 입는 옷 보호용 부착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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