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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안성맞춤의 어원 : 안성 장인에게 맞춘 놋그릇만 쓴다

by 61녹산 2023.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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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유기
안성 유기

 

올해(2023년) 경기도 안성에 다시 입성했다. 경기도 안성하면 유기(유기)가 으뜸이다. 안성에 가서 유기를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지역의 특산물이 유행할 때면 늘 1순위로 꼽는 것이 바로 안성이 유명한 유기 생산지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전주하면 한지와 비빔밥, 천안하면 천안삼거리와 호두과자, 광주하면 떡갈비, 대전하면 칼국수. 지금도 안성에서는 몇몇 유명 장인(장人)들이 명품 유기를 만들며 전통을 잇고 있다고 한다. 

 

유기는 '놋쇠로 만든 그릇'이어서 보통 '놋그릇'이라 한다. 놋그릇이니 누런색을 띠고 또 무겁고 단단하다. 유기를 '유기그릇'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유기에 '기(器)'와 의미가 같은 고유어 '그릇'을 덧붙인 동의 중복 형태다. '유기'에 대한 '유기그릇'은 '산채'에 대한 '산채나물', '역전'에 대한 '역전앞'의 관계와 동일하여 관심을 끈다. 

 

예전에 유기를 안성에서만 만든 것은 아니나, 안성의 유기는 다른 지역의 유기보다 훨씬 질이 좋고 튼튼하였다고 한다. 이 안성 유기에는 장에 내다 팔기 위해 대량으로 만든 '장내기 유기'와 명장에게 특별히 주문하여 만든 '맞춤 유기'의 두 종류가 있었다. '안성맞춤'이라는 말은 바로 '맞춤 유기'와 관련해서 생겨난 것이다. 

 

장내기 유기는 좀 여유 있는 일반 가정에서 구입하여 썼다면, 맞춤 유기는 세도깨나 부리는 양반가나 부호가에서 구입하여 썼다고 한다. 부의 정도나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유기가 달랐다고 하니 전국적인 유명세가 괜히 생긴 것은 아닌 듯 하다. 

 

안성의 유명 장인에게 주문하여 만든 맞춤 유기는 정확히 표현하면 '안성 맞춤 유기'가 된다. '안성 맞춤 유기'는 주문자의 마음에 꼭들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고 모양새도 좋았다. 그래서 '안성 맞춤 유기'하면 '아주 품질이 뛰어난 유기'라는 인식이 자리잡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 '안성'하면 바로 '유기'가 연상되므로 굳이 '유기'를 생략한 채 '안성 맞춤'이라고만 해도 '안성 맞춤 유기'와 같은 의미를 나타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기'가 생략되자 '안성 맞춤'이라는 표현은 점차 유기와의 관계가 점차 희박해졌을 것이며, 이쯤에서 '안성 맞춤'은 안성에 주문하여 만든 유기처럼 잘 만든 '고품질의 물건'이라는 좀 더 일반적인 의미를 띠었을 것이다. 일반적 의미를 얻은 '안성 맞춤'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다 보니 어느 때부터인지는 몰라도 이것이 한 단어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안성맞춤
안성맞춤

 

 

안성맞춤은 단어화한 뒤에 고품질의 물건이라는 구체적 의미에서 '물건이 좋아 마음에 딱 맞음' 또는 '경우나 계제에 잘 어울림'이라는 추상적인 의미로까지 발전했다. "계룡산은 은신처로 안성맞춤이다."에서처럼 안성맞춤은 추상적인 의미로 쓰인 예이다. 반면 안성맞춤은 더 이상 안성에 주문하여 만든 유기라는 그 본래의 뜻으로는 더이상 쓰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의미의 확대와 소실을 동시에 겪고 있는 독특한 어휘다. 

 

최근 한 TV광고에서 경기도 이천의 특산물이 뭐냐?는 문제에 답을 반도체라고 썼다가 틀렸다고 채점하여 아이가 항의를 했다는 광고가 떠오른다. 물론 경기도 이천은 쌀로 유명했다. 지금도 이천쌀은 최고품종으로 평가해 준다. 그러나 이제는 그곳 경기도 이천에 반도체 회사가 떡 하니 자리잡고 있어 반도체를 특산물로 인정해줘야 할 듯도 하다. 이렇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흘러간다. 인생무상이다. 

 

‘안성맞춤’이라는 표현은 ‘안성’과 ‘맞춤’이라는 단어가 결합된 어형이다. 선행하는 ‘안성’은 경기도 지명인 ‘安城’이며, 후행하는 ‘맞춤’은 ‘맞추다’의 명사형이다. 단어의 구성 요소인 ‘안성’과 ‘맞춤’의 의미만 고려하면 ‘안성맞춤’의 전체 의미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안성’ 지역의 역사·경제적 배경을 이해해야만 이 단어의 실제 의미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


 전의 ‘안성’은 대구·전주 지역과 더불어 큰 장(場)이 서던 상업의 요충지였다. 안성 장은 삼남(三南)에서 몰려드는 물산(物産)으로 서울 장보다 물건이 풍부하였고, 또 여기서는 질이 좋은 물건들이 거래되었다고 한다. 안성 장에서 팔리는 질이 좋은 물건에는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것도 있었을뿐더러 ‘유기’(鍮器, 놋그릇)와 같이 이 지역에서 직접 제작한 것도 있었다. ‘유기’를 만들던 곳이 안성만은 아니었겠지만 안성의 ‘유기’는 튼튼하고 질이 좋기로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안성’의 ‘유기’에는 장에 내다 팔기 위해 대량으로 만든 ‘장내기 유기’와 주문에 의해 만든 ‘맞춤 유기’의 두 종류가 있었다. ‘안성맞춤’이라는 말은 바로 ‘맞춤 유기’와 관련해서 생긴 표현이다. 일반 가정에서는 장날에 나는 ‘장내기 유기’를 사서 이용하였지만, 행세깨나 하는 집안에서는 직접 안성에 주문해서 특별히 만든 ‘맞춤 유기’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안성에 직접 주문해서 만든 유기가 바로 ‘안성 맞춤 유기’인 것이다. 따라서 ‘안성맞춤’이라는 말은 ‘안성 맞춤 유기’에서 ‘유기’가 생략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장내기 유기도 품질이 우수한데 직접 주문하여 만든 맞춤 유기야말로 그 품질이 얼마나 뛰어났겠는가? 맞춤 유기가 주문자의 마음에 꼭 들 정도로 아주 훌륭했기에 ‘안성 맞춤 유기’라 하면 “품질이 좋은 유기”라는 의미를 띠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안성’하면 ‘유기’가 연상되므로 굳이 ‘안성 맞춤 유기’라 하지 않고, ‘유기’를 생략한 채 ‘안성 맞춤’이라고만 해도 ‘안성 맞춤 유기’와 같은 의미를 나타낼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안성’이라는 표현과 ‘유기’와의 관계가 희박해지면서 ‘안성 맞춤’은 안성에 주문하여 만든 유기처럼 “아주 잘 만든 고품질의 물건”이라는 보다 일반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을 것이다.


“고품질의 물건”

“물건이 좋아 마음에 꼭 맞음”

“경우나 계제에 잘 어울림”

“계룡산은 은신처로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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