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한창 진행 중이다보니 영하의 날씨를 샘내며 날짜를 꼽아보곤 한다.
이제 곧 겨울이 시작된다.
겨울 하면 생각나는 것들 중 뺄 수 없는 건 '눈'이다.
눈을 이용한 스포츠인 스키와 눈썰매도 하나둘 열리고 있는 스키장에서 즐길 수 있다.
그런데 국어사전을 뒤지다 보면 생각 못했던 부분이 하나 나온다. 썰매의 원래 말이 따로 등장하는 게 그것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설마'를 찾으면 2개가 나옵니다. 두 번째 것에는 '썰매의 원말'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어 '설마→썰매'가 됐다는 겁니다. 한자로는 雪馬. '눈에서 달리는 말' 정도의 뜻이 되겠죠.
사실 위 설명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존재한다. 썰매가 원래 있던 말이고 이것을 한자로 적다 보니 '설마'라고 붙였을 것이다. 의견의 차이를 떠나 썰매를 눈 위의 말로 표현한 것이 어딘지 운치가 있지 아니한가? '눈'이 친숙한 단어인 만큼 눈을 뜻하는 설(雪)이 들어간 낱말도 일상에서 많이 쓰인다. 눈이 내려 쌓인 양 '적설량', 높은 산 위에 쌓인 녹지 않는 눈 '만년설' 등이 그런 예이다. 강원도의 유명한 산인 '설악산'에도 같은 글자가 들어가고 일곱 난쟁이와 살았던 피부가 하얀 '백설공주'에도 같은 말이 들어가 있다. 눈은 아니지만 요리에 빠질 수 없는 재료 '설탕'도 雪을 씁니다. 눈가루 같은 모양과 이름이 어울립니다. 앙갚음의 뜻으로 쓰이는 '설욕'은 글자 그대로 풀자면 치욕을 씻는다는 말입니다. 눈의 의미가 확대돼 씻는다는 뜻이 됐습니다.
한편, '썰매'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어린 시절 동네 친구의 완석이가 떠오른다. 아버지를 닮아 손재주도 많고, 반듯한 차림새와 행동으로 아이들을 이끌었던 대장격의 아이가 생각난다. 완석이 아버지께서는 전기 관련 기계나, 제품이나, 뭐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조그마한 공장의 사장님이셨다. 전파상 보다는 크고 공장보다는 조금 작은, 그런데도 실력이 뛰어나선지 많은 회사에서 주문 생산해야 하는 전기 관련 물품들을 구하러 달려오는 곳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특히 겨울철 첫눈이 내리면 이 완석이네 집에 모든 동네 아이들이 모여, 물론 여자애들까지도 모여가지고 특급 썰매의 제작 과정을 지켜보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꼭 그랬다. 자식에게 줄 썰매는 딱 1개고 나머지 4~5개는 구경온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만든다.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노래나 연설 같은 것을 시키고 잘하는 아이보다는 못하는 아이에게 더 챙겨주셨던 것 같다. 첫눈이 내리고 마을 개천에 얼음이 꽁꽁 언 날 동네 아이들 모두 신나게 얼음을 지치고 정말 "씽씽 달리는 썰매" 그 시절이 가장 그립다. 논이나 방죽의 얼음판에서 타는 각목에 철사를 박아 만든 썰매는 허접한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우리 동네 아이들의 썰매는 달랐다. 튼튼하고 안정감이 첫째 조건이었다. 특히 썰매에 의자까지 달려 있어 정말 최고였다.
썰매는 눈, 사냥과 밀접히 관련된 생활 도구이다. 눈 쌓인 산야에서 사냥하기 위해서는 눈 위를 빨리 달릴 수 있는 기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무로 만든 스키 모양의 '썰매'다. "눈 우해 셜마 산행하다(눈 위에서 썰매로 사냥하다 <한청문감 1779>)와 같은, 눈 위에서 썰매를 이용하여 사냥했다는 기록을 참고하면 썰매가 눈, 사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유기적 관계에 있는 도구임을 알 수 있다.
현대 국어 썰매는 18세기 문헌에 '셜마'로 나온다. '셜마'는 대체로 한자어 '설마(설馬)'로 나온다. 한자어 '설마'가 이른 시기의 옛 문헌에서 두루 발견된다. 설마는 눈 위에서 타는 말 또는 눈 위를 달리는 말이라는 뜻인데, 눈 위에서 타는 썰매가 있다는 점, 설매가 말과 같이 빠르다는 점 등이 이러한 설을 뒷받침해준다. 물론 셜마를 순수한 우리말로 보고 설마를 그에 대한 단순한 취음자로 간주하기도 하나, 셜마를 고유어로 볼 근거는 부족해 보인다. 18세기 당시에 설과 마의 한자음이 셜과 마여서 셜마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또한 셜마를 동사 혀다(끌다)의 관형사형 혈과 한자 마가 결합된 혈마(끄는 말)에서 온 단어로 보기도 하는데, 혈마가 변하여 설마가 될 수 있지만, 이와 같은 어원설은 중세국어에 혈마가 존재했고, 또 썰매를 말이 끌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순순이 기다리고 있다.
18세기의 셜마는 음절 말에 '이'가 첨가 되어 '셜매'로 변했다가 제1음절의 모음이 단모음화하여 '설매'로 변했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단모음화를 먼저 겪어 '설마'로 변했다가 그것에 '이'가 첨가되어 '설매'로 변했을 것이다. '셕하'가 '셕해(셕해 > 셔캐 > 서캐, 이의 알)'로 , '대파'가 대패(나무의 표면을 반반하고 매끄럽게 깎는 데 쓰는 연장)'로 변하는 예에서 보듯, 음절 말에 '이'가 첨가되는 현상은 일반적인 듯 싶다.
'설매'는 제1음절의 어두음이 된소리화하여 '썰매'로 변한다. '썰매'가 19세기 말 <한불자전 1880>에 처음 보인다. 20세기 이후에 나온 대부분의 사전에서는 '썰매'의 어원을 한자어 '설마'로 보고 있다. '설마' 설이 설득력이 더 높다.
'우리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깃장의 어원 : 문짝에 어긋나게 붙인 막대기 (0) | 2023.08.11 |
---|---|
안성맞춤의 어원 : 안성 장인에게 맞춘 놋그릇만 쓴다 (0) | 2023.08.11 |
쌈짓돈의 어원 (0) | 2023.08.10 |
제주도 삼승할망 본풀이 (0) | 2023.08.10 |
근력(筋力 근육의 힘)의 의미분석 : 바이오 에너지로 가는 길 (0) | 2023.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