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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긴가민가 : 이건지 저건지 분간이 가지 않을 때

by 61녹산 2023.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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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가민가
긴가민가

 

‘나는 지금 배고픈 것까지도 긴가민가 잊어버리고 어름어름하던 차다’. (이상의 ‘날개’ 중에서)

‘호젓이 노힌 집이 술집이다. 산모롱이 옆에 서서 눈에 싸히어 그 흔적이 긴가민가나 달빛에 빗기어 갸름한 꼬리를 달고 있다’. (김유정의 ‘솟’ 중에서)

우리는 어떤 대상이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불분명할 때 ‘긴가민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대화체 주로 사용되는 말로, 네 글자가 묘한 운율을 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단번에 와닿지 않는다. ‘긴가민가’는 부사로 주로 쓰인다. 이 경우 우리말 부사는 순우리말로 이뤄진 것이 많다. 그러나 오늘 문제 ‘긴가민가’는 그렇지 않다. 의외지만 한자식 표현이다. 사전에서 이를 찾으면 ‘기연가미연가’로 가라는 화살표가 나온다.

그리고 사전은 이에 대해 ‘其然-未然-’을 써놓고 있다. 직역하면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불분명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연구할 것이 더 남아 있다. 사전은 분명히 ‘기연가미연가’의 준말이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중간에 들어간 ‘가’는 어디서 왔고 그 용도는 무엇일까?

이는 허사로, 뜻은 없고 음을 맞추기 위해 온 말이다. 때문에 사전 설명구도 ‘가’를 명기하지 못하고 ‘-’만 그어놓고 있다. 이쯤되면 ‘긴가민가’의 탄생 경위가 명확하게 밝혀진다. 본래의 표현은 ‘其然未然’이었다. 이후 음을 맞추기 위해 우리말 ‘가’가 첨가가 돼 ‘기연가미연가’가 됐다. 그리고 언어유통 과정에서 ‘기연’, ‘미연’ 사이에 음운축약 현상이 일어나면서 ‘긴가민가’가 됐다. 때문에 본래는 한자에서 출발한 말이 지금은 순우리말처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탑현 긴가민가
탑현 긴가민가

 

이건지 저건지 불분명할 때 우리는 '헷갈린다'고 한다. 그럼 이 말을 일본어로 하면? '아리까리',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아리송', 독일어로는 '애매모흐(애매모호)', 아프리카어로는 '깅가밍가(긴가민가)'라고 하는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다. 이 가운데 '아리까리'는 실제로 일본에서 온 말인 줄 착각하기 쉬운데 모두 우리말이지만 그 의미 영역이 서로 미세하게 다를 뿐 쓰임새는 거의 비슷한 말들이다.

 

'긴가민가'는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분명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기연가미연가하다'의 준말이다 여기서 '기연가미연가'는 한자로 '其緣가 未然가'이다. 그대로 풀이하면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이다. 줄여서 '기연미연'이라고도 한다. '-가'는 의문을 나타내는 ㅇ어미'-ㄴ가'에서 'ㄴ'이 탈락한 어형이다. 본래 말 '기연가미연가'는 '긴가민가'로도 줄여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 쓰임새의 빈도와 단어로서의 자격 부여에 차이가 있어 보인다. '기연가미연가'나 '그 준말 '기연미연'은 그 자체로 부사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가장 흔하게 쓰이는 '긴가민가'는 단어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했다. 사전에서는 이 말을 '긴가민가하다의 어근'으로 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단독으로 부사로서의 구실을 못하고 반드시 접미사 '-하다'와 결합해야 비로소 단어가 되는 셈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긴가민가'를 단독으로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가령

 

"그가 하는 말은 도대체 긴가민가 믿을 수가 없다."

 

라고 하면 안타깝게도 올바른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아직까지는 단어의 지위를 얻지 못했으므로 '긴가민가해서' 식으로 '-하다'를 꼭 붙여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이미 현실 언어생활에서는 '긴가민가 헷갈린다, 긴가민가 답을 모를 경우, 긴가민가 의심은 했지만' 형식으로 흔하게 쓰인다는 점에서 단어로서의 구실은 충분하게 갖췄다고 생각한다. 

 

"긴지 아닌지 분명히 말해"

"사람이 말이야 도대체 기다 아니다 무슨 말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라고 할 때 쓰인 '기다' 역시 '아니다'와 대비적으로 쓰여 어떤 사실에 대한 긍정이나 수긍을 나타낼 때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사전적으로는 전라 충청 방언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이다' 또는 '그렇다', '그것이다'가 줄어든 말이다. 

 

'아리까리하다'도 매우 흔하고 광범위하게 쓰이는 말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사전적으로는 '알쏭달쏭하다'의 잘못, '아리송하다'의 잘못 등으로 올라 있을 뿐이다. '알쏭달쏭'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여 얼른 분간이 안 되는 모양'이란 뜻이다. 

 

"태도가 알쏭달쏭하다."

"그의 진의가 무엇인지 알쏭달송하기만 했다."

 

같은 표현에 '긴가민가하다'를 넣으면 무리 없이 뜻이 통한다는 데서도 '알쏭달쏭하다'와 '긴가민가하다'는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또 알쏭달쏭 고운 무지개처럼 여러 가지 빛깔로 된 점이나 줄이 고르지 않게 뒤섞여 무늬를 이룬 모양을 나타내기도 한다.(아리송하다나 알쏭달쏭하다도 모두 비슷한 말로 쓰인다. 다만 이들은 긴가민가하다의 뜻 이외에도 '기억이나 생각 따위가 떠오를 듯하면서도 떠오르지 않다'란 의미로도 많이 쓰이다 보니 사람에 따라 그 쓰임새가 조금 다른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특이한 것은 북한에서는 '이것인지 저것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몹시 희미하고 아리송하다'란 의미로 '아리까리하다'란 말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까리까리하다'도 같은 말로 함께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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