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햇볕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우리말 속담 가운데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
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궁하거나 다급해도 체면 깎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는 속담과 한뜻이다. 그까짓 체면이 뭐길래, 양반은 체면에 목숨까지 거는 것일까? 요즘은 무언가를 거는 것이 유행인가 보다. 껀껀이 장관직을 걸겠다고 국민들에게 윽박지르는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겻불’은 곁에서 얻어 쬐는 불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겨를 태우는 불’이다. ‘겨’는 벼, 보리, 조 따위의 곡식을 찧어 벗겨 낸 껍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겨를 태운 불은 뭉근하게 타오르기 때문에 불기운이 약하다. 해서 ‘겻불’에 ‘불기운이 미미하다’란 의미도 있다.
속담 중의 ‘겻불’을 ‘짚불’로 쓰기도 한다. ‘짚불’은 짚을 태운 불을 말한다. ‘겨’나 ‘짚’은 태우면 연기만 많이 날 뿐 불기운은 신통치 않다. ‘겻불’과 ‘짚불’은 불기운이 시원찮기로는 도긴개긴,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한데 ‘겻불’을 ‘곁불’로 잘못 쓰는 경우가 흔하다. ‘곁불’은 얻어 쬐는 불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까이하여 보는 덕을 말한다. 운 나쁘게 목표물 근처에 있다가 맞는 총알을 일컫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어떤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가 받는 재앙을 가리킨다. 따라서 신통치 않거나 시원치 않음을 뜻하는 ‘겻불’과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진정한 무사는 추운 겨울날 얼어 죽을지언정 곁불은 쬐지 않는다."
국민의 정부 김대중 정권 말기인 2002년 1월 취임한 이명재 검찰총장이 한 말이다. 당시는 각종 권력형 비리사건 속에서 검찰 수사가 권력 실세들에게 휘둘린다는 비판이 일었던 시절이었다. 이를 의식한 검찰 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검찰에 자기반성과 개혁을 속담에 빗대 주문한 것이다.
신문들은 다음 날 아침 그의 의지 표명을 일제히 대문짝만 하게 보도했다. 특히
"얼어 죽어도 곁불은 쪼지 않겠다."
란 말을 제목으로 그대로 실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이 말을 별 생각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일각에선느 이 말이 안고 있는 작은, 그러나 중요한 결함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이봐 자네. 검찰총장이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곁불'이 틀리게 스인 것 아닌가?"
"누군가가 불을 쬐고 있는데 그 옆에 빌붙어서 얻어 쬐는 궁상맞은 짓은 안 하겠다는 뜻이니 신문에 나온 대로 '곁불'이 맞잖아."
"내가 알기로는 보통의 경우 양반 체면에 쬐지 않겠다는 불은 왕겨 같은 것을 태우는 '겻불'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말도 있지만 이 경우는 비굴하게 남의 곁에서 얻어 쬐는 불이란 뜻이니까 '곁불'이 맞는 표기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2005년 별세한 원로 언론인 박용규 선생의 숨겨진 일화의 한 장면이다. 그는 돌아가시기 이태 전 한 어문연구지를 통해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고 나서야 친구가 지적한 '겻불'이 바른 표기이고 자신이 해석한 '곁불'은 엉터리 창작이었음을 알았다."
"이런 게 바로 식자우환일 것"
이라고 고백했다.
'겻불'은 말 그대로 '겨를 태우는 미미한 불'이다. 이 말이 우리 속담에서는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짚불)은 안 쬔다' 말로 쓰여 '아무리 궁한 처지에 있을지라도 자기의 체면은 지니려고 애쓴다'는 뜻을 나타낸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는 속담도 같은 뜻이다. 모두 사전에 올라 있는 말이다. 그러니 검찰총장이 한 말도 바로 이 '겻불'이었던 셈이다. 이에 비해 '곁불'은 본래 '목표로 되지 않았던 짐승이 목표로 겨누어진 짐승의 가까이에 있다가 맞는 총알'이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총탄을 발사할 때 화약에 불을 댕겨서 했기 때문에 총 쏘는 것을 '불질'이라 했다. 곁불은 여기서 생겨난 말이다. <우리말큰사전 1992>이나 <국어대사전 1991> 등은 모두 겻불과 곁불의 차이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 1999>이 문제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겻불'의 풀이는 같지만 그 쓰임새는 순수하게 '겨를 태우는 불' 그 자체로 국한시켰다. 대신 '곁불'의 풀이는 완전히 달라져 전통적인 쓰임새는 사라지고 '얻어 쬐는 불'이란 의미로 대체됐다. 용례 역시 '선비는 죽어도 곁불은 안 쬔다'는 소설 속 표현을 그대로 인용했다.
전통적으로 써 오던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쬐지 않는다'란 속담이 <표준국어대사전 1999>에 와서 뚜렷한 근거 없이 '곁불'로 바뀐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셈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다지 신뢰할 수 없는 자의적 올림말보다는 전통적 속담 말인 '겻불'을 익히고 쓰는 것이 옳은 방향일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겻불'은 엄연히 살아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쬐지 않는다'란 말은 우리말 '딸깍발이'를 연상시킨다. 딸깍발이는 신이 없어서 마른날에도 나막신(비올 때 신는 신발) 신는다는 뜻에서, '가난한 선비'를 일컫던 말이다. 작고한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은 수필 <딸깍발이>에서 옛날 남산골샌님을
"사실은 졌지마는 마음으로 안 졌다는 앙큼한 자존심, 꼬장꼬장한 고지식,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쬐지 않는다는 지조, 이 몇 가지들이 그들의 생활 신조였다."
라고 묘사했다. 겻불의 속담과 딸깍발이의 가치는 눈앞의 이익만을 좇기에 급급한 지식인의 약삭빠른 삶을 돌아보게 한다. 조금은 고지식하면서도 기개만은 충천했던 딸깍발이 같은 사람도 있어야 세상은 그래도 사람하지 않겠는가?
우리 속담에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옛날에 양반들은 궁하거나 다급한 경우라도 체면이 깎일 짓은 하지 않았다는 뜻인데요, 여기에 나오는 ‘겻불’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요?
[겯뿔]이라고 하면 ‘겨’ 밑에 ‘ㅅ’ 받침을 쓰는 것과 ‘ㅌ’ 받침을 쓰는 것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ㅅ’ 받침을 쓰는 ‘겻불’입니다. 이것은 쌀겨나 보릿겨와 같은 곡식의 겨를 태우는 불을 말하는데, 이런 불은 느긋하면서도 끊이지 않고 꾸준하게 타오르기 때문에 불기운이 약하고 신통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 속담은 옛날 양반들은 아무리 추워도 이렇게 시원치 않은 겻불은 쬐지 않을 만큼 체면을 중시했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겠지요.
이와 비슷한 속담으로 ‘양반은 얼어 죽어도 짚불은 안 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짚불’이라는 말은 ‘짚을 태운 불’을 가리키기 때문에 ‘지’ 밑에 ‘ㅍ’ 받침을 씁니다.
그리고 ‘오뉴월 겻불도 쬐다 나면 서운하다.’는 속담도 있는데요, 오뉴월에 불을 쬘 일은 없지만 겨를 태우는 미미한 불이라도 일단 쬐다가 그만두면 서운하다는 말로, 당장에 쓸데없거나 대단치 않게 생각되던 것도 막상 없어진 뒤에는 아쉽게 생각된다는 뜻입니다.
또 ‘겨’ 밑에 ‘ㅌ’ 받침을 쓰는 ‘곁불’은 ‘불 쬐는 사람 곁에서 얻어 쬐는 불’이라는 뜻이라는 것도 참고로 함께 알아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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