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들이 드디어 군대 제대를 했다. 세월의 흐름이 이렇게 빠를 줄이야. 내가 논산 훈련소로 끌려 가던 서글픔의 날이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아들이 군대 가는 것도 아니고 제대를 하다니. 암튼 논산 훈련소가 떠올랐다. 몇 해 전 신문칼럼에서 논산과 관련된 어원을 읽었던 일이 떠올랐다.
논산은 '논뫼, 놀뫼, 놀미'와 같은 어형이 유사한 고유어계 이름을 갖고 있다. 논산의 유래는 이들 고유어계 이름을 통해 밝혀야 한다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어원이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아 '논산'의 어원을 탐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논뫼에 논산이 대응되어 있으니 뫼가 산(山)의 뜻이고, 이것이 '메'를 거쳐 '미'로 변한 것이다. 문제는 '논'이나 '놀'이 무엇이냐다.
어떤 노교수의 글에는 '놀뫼'의 '놀'을 '놀다(늘어지다)'의 어간으로 '논뫼'의 '논'을 그것의 관형사형으로 보고 있다. '놀뫼'와 '논뫼'를 '길게 늘어진 모양의 산'으로 해석하고 있다. 나름 논리적이고 감탄에 가까운 분석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논뫼'의 '논'은 다름 아닌 답(沓 : 유창할 답)의 뜻이다. 이는 <동국여지지>(1656)에 나오는 '畓山(답산)'이라는 차자(借字) 지명을 근거로 한다. 대부분의 조선 시대 지리지에는 '논산(論山)'으로 나오는데, 유독 이 문헌에만 '沓山(답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아마 '沓山(답산)'을 일찍 발견했더라면 '논뫼'와 '論山(논산)' 관계를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장경일 교수)
'畓山(답산)'이 '논뫼'의 '논'과 '뫼'를 모두 훈차한 지명이라면 '論山(논산)'은 '논뫼'의 '논'을 음차, '뫼'를 훈차한 지명이다. 고유어 지명 '논뫼'를 '畓山(답산)'으로 적기도 하고, '論山(논산)'으로 적기도 한 것인데, 지금은 '論山(논산)'으로만 적되, 그것도 두 글자 모두 음으로 읽고 있는 셈이다.
논이 沓(답 : 유칭하다)의 뜻이므로 '논뫼'는 '논이 있는 산' 또는 '논이 주변에 많은 산'으로 해석된다. 이 산은 '반야산[般若山 : 반약산]' 북쪽 신기슭에서 뻗어온 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논뫼에서 제1음절의 종성 'ㄴ'이 'ㄹ'로 변한 어형이 바로 놀뫼가 되는데, 산 이름 '동산미'가 '동살미'로 '진산미'가 '질살미'로 변한 예에서 보듯, 'ㅁ'앞의 'ㄴ'이 'ㄹ'로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보면 '놀뫼' 또한 '논뫼'와 똑같은 의미를 띤다. 논뫼에 대한 한자 지명 '논산'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논산에 대하여
충청남도의 시. 동쪽으로 계룡시, 동북방향으로 대전광역시, 동남방향으로 금산군, 서쪽으로 부여군, 서남쪽으로 전라북도 익산시, 남쪽으로 전라북도 완주군, 북쪽으로 공주시에 접해 있다.
전라북도 3대 도시인 전주시, 익산시, 군산시와 지리상 인접해 있기도 하고 호남선이나 옛 호남고속도로 구간 탓인지 전라북도인 줄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지금은 호남고속도로지선으로 바뀌긴 했지만 과거 호남고속도로 본선 시절 대전광역시를 제외하면, 호남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시군 중 유일하게 전라도에 속하지 않는 시였다. 다른 충청도 도시들에 비해 전라북도가 가깝긴 하나 같은 충청도인 대전광역시와 더 밀접한 교류를 하며 생활권은 대전권에 속한다. 전라북도의 최대도시인 전주시 까지의 거리는 약 40km 정도 된다.
보이는 게 논과 산밖에 없어서 논산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실제로 그런 이유로 붙은 지명이 맞다. '논산'이라는 이름은 우리말 '논뫼' 또는 '놀뫼'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논산의 '논(論)'은 음차에 불과하다. '논'까지 완전히 '논 답'으로 적어 '답산(畓山)'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군부대 빼면 진짜 논과 산이 많긴 하다. 금강 주변에 펼쳐진 논산평야와 계룡산 등을 보면 그럴 듯하다. 원래 은진군 한 마을의 이름으로 은진군 화지산면 논산리였으나 1914년 일제가 부군면 통폐합을 하면서 일개 마을 이름을 통합된 군 이름으로 채택한 것이다. 회덕군 산내면의 마을 이름이었다가 도시 이름이 된 대전과 비슷한 경우다.
역사적으로는 강경읍의 수운과 상업 번영이 유명한 곳. 강경 상인은 송도(개성시)의 송상과 맞짱을 뜰 정도였다고 한다. 현대에 가장 유명한 특산물인 딸기는 1967년부터로 역사가 짧은 편이다. 무엇보다 현대 한국 남성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뜬금없이 인지도가 매우 높은 도시인데, 군사기관인 육군훈련소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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