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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냄비의 어원 : 조선시대에 일본에서 들어온 말

by 61녹산 2023.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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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냄비

 

부엌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조리가구의 하나가 냄비이다. 냄비, 어디서 온 말일까? 국어사전은 냄비에 대해 음식을 익히거나 데우는데 쓰는 얄팍한 금속그릇이록 설명하고 있다. 익히 알다시피 냄비는 순우리말이 아닌 일본에 ‘나베’(なべ)가 국내 유입돼 변한 말이다. 1989년까지는 ‘남비’가 표준어였으나 ‘냄비’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면서, 지금은 이를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어 ‘나베’가 무슨 뜻을 지니고 있는지는 잘 모르고 있다. 정답을 미리 말하면 ‘나베’는 순수 일본어가 아닌, 한자 ‘노구솥 鍋’(과) 자를 일본말로 발음한 것이다. 그렇다면 노구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금은 이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 장돌뱅이들은 작은 금속솥을 갖고 다니며 밥을 해먹는 경우도 많았다. 이것이 ‘노구솥’이다. 따라서 노구솥이나 나베는 이동성을 지닌 작은 솥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고 있어서 그렇지 냄비를 의미하는 순우리말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바로 옛사람들는 놋쇠로 만든 국그릇을 ‘갱지미’라고 불렀다. 국어사전은 이에대해 ‘반병두리보다 작은, 놋쇠로 만든 국그릇’이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반병두리’는 밑이 평평한 국그릇을 의미한다.


이밖에 옛사람들은 둥근받침이 달린 그릇은 ‘굽달이’, 주전자처럼 부리가 달린 그릇은 ‘귀때동이’, 나무를 네모꼴로 판 함지박은 ‘귀박’이라고 불렀다. 방향은 약간 다르지만 우리는 김치볶음밥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틀린 표현이다. ‘김치덖음밥’이 맞다. 왜냐하면 물기가 없는 것은 ‘볶다’ 그리고 물기가 약간 있는 것을 가열하는 것은 ‘덖다’라고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녹차잎은 ‘볶는다’가 아닌 ‘덖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외래어 냄비
냄비 구두 고구마 : 일본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찌개'나 '라면'을 끓일 때 쓰는 용기에는 무엇이 제격일까? 그것은 바로 '냄비'일 것이다. 냄비는 찌개 등을 끓이거나 나물 등을 삶을 때 이용하는 아주 편한 조리 도구 중에 하나이다. 그럼 우리는 이런 냄비를 언제부터 사용하여 왔을까? 삼국 시대 이후 '초두(鐎斗)'라 하여 청동제나 철제, 놋쇠로 만든 현재의 냄비와 같은 기능의 조리 용기를 써왔다. 무려 삼국시대 이후부터 사용해 온 용기가 있다고 하니 그 역사가 매우 깊다고 하겠다. 아무튼 도자기의 민족답다. 

 

우리가 '냄비'라는 말은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옛 문헌에 '냄비'와 관련된 예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이 단어의 역사가 냄비라는 도구의 역사와 맞먹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현재의 냄비는 우리 고유의 도구가 아니라 일본에서 들어온 도구라는 점을 들어, '냄비'라는 말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여기서 일제강점기라 하면 1910~1945년 36년 간이다. 

 

그런데 이 말이 일본어 차용어라 하더라도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것으로 확정 지을 수는 없지 않나 싶다. "슈텰남비 오합이부 젼텰 오합일부"(정미가례시일기 1847), "셕유 두통 담뇨 다셧 벌 남비 다셧 개빼셔 팔아"(독립신문 1897년 1월 16일) 등에서 보듯 '냄비'가 '남비'라는 형태로 19세기 문헌에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남비'는 20세기 초 문헌에도 정확하게 등장한다. <조선말큰사전 1949>에도 '남비'가 표준어로 올라 있을 정도다. 물론 20세기 초 문헌에는 '남비'의 '이' 모음 역행동화 형태인 '냄비'도 보인다. <국어대사전>(1961) 이후 사전에는 냄비가 표준어로 올라 있다.

 

'남비'는 일본어 '나베'에서 온 말이다. '나베'의 탁음 [b]가 우리말에 [mb]로 받아들여져 '남비'가 되고, 이것이 '냄비'로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담배'를 뜻하는 일본어 '타바코'가 우리말에 '담바고'로 들어온 것과 동일한 차용 방식이어서 일본어 '나베'설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듯 하다. 다만 일본어 '나베'가 국어 들어온 시기는 정확히는 알 수 없어 다소 아쉽기는 하다. 

 

<조선말큰사전>(1949)에는 '남비'와 같은 의미의 단어로 '남와(南蝸)'도 올라 있다. '남와'에 한저어 '남과'가 대응되어 있는 것을 보면, 여기서는 남와를 남과에서 변한 것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남과'가 '남과(南鍋)'라면 '남와'는 한자 뜻 그대로 '남쪽(일본)에서 들어온 냄비(노구)'로 분석될 수 있다. 물론 '남와'를 '남비'의 남과 냄비를 뜻하는 한자 과가 결합된 남과에서 변한 어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남에 대응된 한자 남은 단순한 취음자가 된다. 남와의 어원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남와는 사전에 올라 있기는 하나 쓰임이 잘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냄비'의 세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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