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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기러기의 어원 : 그럭 그럭 우는 새

by 61녹산 2023.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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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기러기
큰기러기

 

기러기는 한자로는 보통 안(雁)이 쓰였고, 홍(鴻)·양조(陽鳥)·옹계(翁鷄)·사순(沙鶉)·육루(鵱鷜)·주조(朱鳥)·상신(霜信)·매매(䳸䳸)·홍안(鴻雁)이라고도 불렸다. 우리말로는 기러기·기럭이·기럭기라고 불렸다. 전세계에 14종이 알려져 있으며, 우리 나라에는 흑기러기·회색기러기·쇠기러기·흰이마기러기·큰기러기·흰기러기·개리 등 7종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은 개체는 쇠기러기(작은 기러기)라고 한다.북반구의 북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 남하, 이동해 오는 겨울 철새이다.  흰이마기러기·회색기러기·흰기러기 등 3종의 길 잃은 새[迷鳥]를 제외한 나머지 4종은 모두 겨울새들이다. 개리는 매우 희귀해졌고 흑기러기는 전라남도 여수에서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 이르는 해상에서 월동하는데, 그 무리는 모두 약 1천 마리 정도이다. 아직까지 한반도의 전역에서 흔히 월동하는 기러기는 쇠기러기와 큰기러기의 2종뿐인데, 그들 월동군도 개발로 인하여 월동지가 협소해짐에 따라 한정된 곳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쇠기러기는 몸길이 72㎝로 회갈색의 깃털로 덮여 있고, 큰기러기는 몸길이 85㎝에 흑갈색의 깃털로 덮여 있다. 쇠기러기는 특히 복부에 불규칙적인 가로줄무늬가 있으나 어릴 때는 없으며, 부리 기부(基部) 주위의 흰색 테도 어린 새는 없다. 이들 두 종의 새는 10월하순경에 우리 나라에 날아오기 시작하여 논·밭·저수지·해안과 습초지 또는 해안 갯벌 등지에 내려앉으며, 하천가와 하천의 섬에서도 눈에 띈다. 주로 초식을 하는 새로서 벼·보리와 밀, 기타 연한 풀과 풀씨를 먹는다. 기러기는 한방에서 약으로 쓰인다. ≪동의보감≫에는 기러기 기름은 풍비(風痺:몸과 팔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에 연급(攣急)하거나 편고(偏枯:신체의 일부에 마비가 일어나는 증상)하여 기(氣)가 통하지 않는 것을 다스리고 머리털·수염·눈썹을 기르고 근육이나 뼈를 장하게 하며, 살코기는 모든 풍(風)을 다스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기러기는 가을에 오고 봄에 돌아가는 철새로서 가을을 알리는 새인 동시에 소식을 전해주는 새로서 인식되었다.

 

고전소설 <적성의전>에서 성의(成義)는 기러기 편에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다시 소식을 전했다는 내용이 있으며, <춘향전>의 이별요(離別謠) 중에 “새벽서리 찬바람에 울고가는 저 기러기 한양성내 가거들랑 도령님께 이내소식 전해주오.”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달거리>라는 단가(短歌)에서도 “청천에 울고가는 저 홍안 행여 소식 바랐더니 창망한 구름 밖에 처량한 빈 댓소리뿐이로다.”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기러기는 그 울음소리가 구슬퍼서 가을이라는 계절의 풍광과 어울려 처량한 정서를 나타내 주는 새이며, 사람이 왕래하기 어려운 곳에 소식을 전하여 주는 동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기러기를 ‘신조(信鳥)’라고도 한다.

 

 

폐백에 놓이는 기러기
폐백에 놓이는 기러기


 

한편, 기러기는 암컷과 수컷이 의가 좋은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홀아비나 홀어미의 외로운 신세를 “짝 잃은 기러기 같다.”고 하며, 짝사랑하는 사람을 놀리는 말로 ‘외기러기 짝사랑’이라는 속담도 있다. 혼례식에서 목안(木雁)을 전하는 습속은 이러한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신랑은 신부집에 이르러 혼례의 첫 의식으로 나무로 깎은 기러기를 신부집에 전한다. 그래서 혼인예식을 일명 ‘전안례(奠雁禮)’라고도 한다. 또한 남의 형제를 ‘안행(雁行)’이라고 하는데, 기러기가 의좋게 나란히 날아다니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규합총서≫에서도 기러기를 평하여

 

“추우면 북으로부터 남형양에 그치고 더우면 남으로부터 북안문(北雁門)에 돌아가니 신(信)이요, 날면 차례가 있어 앞에서 울면 뒤에서 화답하니 예(禮)요, 짝을 잃으면 다시 짝을 얻지 않으니 절(節)이요, 밤이 되면 무리를 지어 자되 하나가 순경하고 낮이 되면 갈대를 머금어 주살(실을 매어서 쏘는 화살)을 피하니 지혜가 있기 때문에 예폐(禮幣:고마움의 뜻으로 보내는 물건)하는 데 쓴다.”고 하였다.

 

이처럼 기러기는 가을을 알리는 새로서, 소식을 전해주는 새로서, 또한 정의가 두텁고 사랑이 지극한 새로서 우리에게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10월(시월) 중순이면 계절은 가을로 접어든 지 이미 오래다. 겨울새인 '기러기, 두루미, 오리' 등이 벌써 한반도에 들어와 활동을 시작했다고 하는 반가운 소식마져 들리는 시기이다. 이들 겨울새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아마도 기러기일 것이다. 줄지어 질서정연하게 어디론가 날아가는 기러기 떼는 너무나 인상적이다. 안항(雁行 기러기의 행렬이란 뜻으로 남의 형제를 높여 이르는 말)이라는 말이 공연이 생긴 것은 아닌 듯 싶다. 이왕지사 말이 나왔으니 몇 가지만 더 살펴보면 남의 아들을 높여 이르는 말을 '영식'이라하고, 남의 딸을 높여 이르는 말을 '영애'라고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대통령의 딸을 '영애'라고 하니 전직 박탈 대통령 영애 박근혜가 떠오른다. 

 

한반도에 도래하는 기러기에는 여러 종이 있지만 대부분 쇠기러기와 큰기러기가 주종을 이룬다고 한다. 물론 이 가운데 쇠기러기가 더 흔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기러기라고 하면 쇠기러기와 큰기러기를 아울러 지시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기러기라는 말은 역사가 아주 깊다. 이는 15세기 문헌에 나오는 '그려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 시기 문헌에는 '그려기'와 더불어 2음절어인 '그력'도 보인다. '그력'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형이 '그려기'일 터이고 '그력'이 보다 원초적인 형태임을 어렵지 않게 추정해 본다. '그력'은 다름 아닌 기러기의 울음소리를 상징한 음성상징어이다. 기러기가 내는 '그력 그력' 하는 울음소리를 본떠 그력이라는 명칭을 만들고, 이것에 접미사 '-이'를 붙여 그려기라는 또 다른 명칭을 이어서 만든 것이다. 

 

한 조류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쇠기러기는 하늘을 날 때나 주변을 경계할 때 '끼럭 끼럭'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력 그력'은 쇠기러기의 울음소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만약 그려기가 쇠기러기의 울음소리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는 본래 쇠기러기만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가 점차 큰기러기까지 아울러 지시를 확장했을 것이다. 15세기의 그려기는 16세기 이후 '긔려기, 기려기'를 거쳐 '기러기로 변하여 현재에 이르렀다고 분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려기> 긔려기 > 기려기 > 기러기)

 

한반도에 들어와 월동하는 두 부류의 기러기를 구분하기 위해 만든 명칭이 '쇠기러기'와 '큰기러기'라고 한다. 몸집의 크기에 따라 한 부류는 쇠기러기로, 다른 부류는 큰기러기로 나눈 것이다. 쇠기러기의 쇠는 쇠딱따구리, 쇠뜸부기, 쇠부엉이, 쇠박새 등의 그것과 같이 '작음'의 의미자질을 가지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쇠기러기는 작은 기러기가 된다. 쇠는 한자 '소(小)'에서 온 말로 추정된다. <큰사전 1950>을 비롯한 일부 사전에서는 '쇠-'를 동물이나 식물의 작은 종류를 지시하는 접두사로 분류하고 있다. 물론 큰기러기는 몸집이 상대적으로 커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하여 쇠기러기와  큰기러기가 크기에 기초한 상대 개념의 명칭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김형경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김형경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젊은 시절 애틋하고 다소 어리숙한 일화가  생각난다. 나에게 관심을 보였던 후배 여학생이 있었다. 그 때 나는 군복무 중이었고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 후배와 전화 통화를 하며 나름 썸을 즐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뚝 끊기게 된 사건이다. 지금와 생각하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말이다. 암튼 그 후배가 통화에서 말하기를 

 

"선배님, "새들은 자기 이름을 부르며 운다" 라는 책 읽어 보셨어요. 제가 지금 읽고 있는데 너무 좋아서요."

"사람들은 아주 못됐어. 자기 멋대로, 자기 식대로 새 이름을 불러, 기러기가 기럭기럭 운다고 기러기라지 참나. 누구맘대로 그리 불리는지, 정작 그리 불림을 받는 당사자인 새들은 그걸 알까?"

대뜸 무안부터 주고 잘난 척 하는 풋풋했던 젊은 시절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 뒤로 그 책을 읽어 보았는데 후ㅠㅠ. 연락을 끊을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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