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1. 우리 언니는 아직(남자가 vs 사내가 vs 사나이가) 없다.
2.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님자 vs 사내 vs 사나이) 구실을 못한다.
3. 실직한 뒤로(남자 vs 사내 vs 사나이) 구실도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4. (남자 vs 사내 vs 사나이) 가는 길에 두려울 것이 무어랴.
'사내'는 낮춤말이다
‘남자'는 여자가 아니다. ‘사내'도 여자가 아니다. ‘남자'와 ‘사내' 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아닌 사람을 가리킨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아직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은 어린아이를 두고 ‘남자'라고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아이들을 ‘사내'라고 하는 법도 없다. 여자가 아닌 어린아이를 가리킬 때에는 따로 ‘아이'를 붙여서 ‘남자아이', ‘사내아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남자'와 ‘사내'는 다른 점이 없다. 언뜻 생각하면 두 낱말은 거의 똑같아 보인다. "낯선 남자 / 사내"나 "웬 남자 / 사내"에서 보듯이, ‘남자'를 ‘사내'로, ‘사내'를 ‘남자'로 바꾸어도 의미가 거의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가 잘 아는 남자"는 자연스럽지만 "내가 잘 아는 사내"는 왠지 어색하다. 다시 말해, 3인칭으로 쓰일 경우 ‘남자'는 아는 사람과 낯선 사람에 다 어울리지만, ‘사내'는 말하는 이가 알고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또 "아버지도 남자시니까"는 가능하지만 "아버지도 사내시니까"는 불가해 보인다. 즉, ‘남자'가 가치중립적 표현인데 견주어 ‘사내'에는 해당 인물을 범속하게, 다소 낮추어 일컫는다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해당 인물이 아들이나 조카같이 말하는 이와 아주 가까운 아랫사람일 경우에는 ‘사내자식', ‘사내놈' 같은 표현을 통해 역설적으로 친밀감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사내'를 밀어내는 '남자'
두 낱말의 차이는 또 있다. ‘남자학교', ‘남자화장실', ‘남자직원'은 상식적이지만 ‘사내학교', ‘사내화장실', ‘사내직원'은 비상식적이다. ‘학교', ‘화장실', ‘직원'은 모두 근대 이후에 생겨났다. 이것들과 ‘남자' 사이에 강한 친화성이 있다는 것은 이 낱말의 근대적 성격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남자'라는 단어가 (일본의 영향을 받아) 근대 이후에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가 추상적 단어와 만난 ‘남자관계'나 ‘남자문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을 보면, 상대적으로 ‘사내'가 전통적인 세계를 살아온 토박이말임이 또렷이 드러난다.
‘남자'는 ‘사내'에 비해 의미의 폭이 넓어서 쓰임새가 훨씬 더 다양하다. "언니한테 사내가 생겼다"는 표현이 매우 어색하게 들리는 이유는, ‘남자'가 여자의 다양한 교제상대를 두루 일컫는 데 비해 ‘사내'는 특히 성적인 맥락에 초점을 둔 낱말이기 때문이다. 혀를 끌끌 차면서 "저것도 남자라고..."하면 흔히 사회나 가정에서 남자가감당해야 한다고 여기는 역할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고, "저것도 자네라고..."하면 대개 성적인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남자 구실을 못한다"에는 생물학적인(즉, 성적인) 함의뿐 아니라 경제력이나 생활력을 포함한 사회적 의미까지 들어 있는 데 반해, "사내 구실을 못한다"에서는 사회적 의미보다 성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한 마디로 두 낱말은 사용범위에 차이가 있다. ‘남자'는 근대성을 무기로 삼아 ‘사내'를 밀어내면서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되었고, 이런 추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나이'는 '사내'의 한 종류
‘사나이'는 ‘사내'의 본디말이지만 지금은 의미상 부분집합이 되었다(사내⊃사나이). 다시 말해 ‘사내'의 지시 범위가 ‘사나이' 보다 넓다. ‘사나이'는 ‘사내'의 한 종류로, ‘사내' 중에서도 ‘사내다운 사내'만을 가리킨다. "사나이 울리는 농심 신라면"이라는 광고문구도 이런 어감을 전제로 한 것이다.
‘사나이' 앞에는 ‘야성의', ‘집념의', ‘강심장의' 같이 (남성중심적 관점에서) 긍정적 느낌을 담은 꾸밈말이 오는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사나이'는 남성성의 상징이다. 이런 점에서 "험악한 인상의 사나이", "모자를 눌러 쓴 사나이", "수수께끼의 사나이" 같은 표현에서는 ‘사나이'를 ‘사내'로 바꾸는 편이 좀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즉,해당 인물에 대한 경험적 정보가 없을 때에는 ‘사나이'보다 ‘사내'가 낫다.
‘사내'의 상대어가 ‘계집'이나 ‘여자'라면, ‘사나이'의 상대어 로는 "옹졸한 사내"가 더 어울린다. 따라서 "옹졸한사나이"는 사뭇 어색하다. 또 ‘남자', ‘사내'가 생물학적, 성적 맥락에서 쓰일 때가 많은 데 견주어, ‘사나이'는 사회적 의미가 강하다. 위에서 보았듯이 ‘남자아이'나 ‘사내아이'는 있지만 ‘사나이아이'는 없다는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사내'와 달리 ‘사나이'는 ‘남자'의 득세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비교적 굳건히 지키고 있다. ‘남자'가 ‘사나이'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남자답다", "남자 중의 남자" 같은 몇 가지 관용적 표현밖에 없다. ‘사나이'와 비교를 하게 되면 ‘남자'와 ‘사내'의 친화성이 두드러진다. 위에서 보았듯이 (물론 의미의 맥락은 사뭇 다르지만) "남자 구실"이나 "사내 구실"은 가능하지만 "사나이 구실"은 영 이상해 보인다는 사실은 그 한 가지 예다.
‘남성'은 집단을 가리킨다
한편 ‘남자'와 엇비슷해 보이는 말로 ‘남성'이 있다. ‘남성'이 불특정한 여러 사람을 묶어서 가리키는 추상적 용어라면, 나머지 세 낱말은 자연인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집어서 가리키는 말이다.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위에서 설명한 네 낱말의 포함관계를 거칠게 도식화하면 ‘남성⊃남자⊃사내⊃사나이'가 된다 (표 참조)
마무리
남자
여자가 아닌 사람을 가리키는 가치중립적 표현
생물학적 사회적 맥락에서 두루 쓰임
사내
남자를 다소 낮추어가리키는 말
주로 성적인 맥락에서 쓰임
사나이
주로 일부 남자들 사이에서만 쓰는, 남성성을 강조한 표현
정답
1. 우리 언니는 아직 (남자가 vs 사내가 vs 사나이가) 없다.
2.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남자 vs 사내 vs 사나이) 구실을 못한다.
3. 실직한 뒤로 (남자 vs 사내 vs 사나이) 구실도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4. (남자 vs 사내 vs 사나이) 가는 길에 두려울 것이 무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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