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전자우편이 편지를 대신하는 시대이다. 웬만한 소식은 전자우편으로 주고 받는다. 그렇다고 '편지'라는 전달 매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성을 담아 전하는 장문의 글로는 여전히 편지가 유용하다. 편지에는 보내는 사람의 정성과 애정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같은 내용이라도 편지가 주는 감동이 훨씬 진하다.
편지를 쓸 때에는 대화를 할 때와 또 다른 차원의 예의와 격식이 필요하다. 편지 서두의 호칭은 어떻게 할 것이며, 편지 끝 부분의 서명란은 어떻게 쓸 것인지, 그리고 겉봉투는 어떻게 쓸 것인지 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편지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곳은 발신자란일 것이다. 누가 보낸 것인지가 가장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다음 눈길이 가는 곳이 수신자란이다. 편지가 자기한테 온 것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간혹 발신자란가 수신자란을 보다가 기분이 언짢아지기도 한다. 발신자란에 보내는 사람 이름 석 자만 달랑 적혀 있는 경우도 있고, 수신자란에 받는 사람의 이름 석 자만 쓰여 있거나 이름 석 자 뒤에 직함만 쓰여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발신자란에 '홍길동'과 같이 이름 석 자만 쓰는 것은 예의가 없는 경우이다. 특히 어른에게 편지를 쓰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피차 맞먹자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노여움마저 살 수가 있다. 적어도 '홍길동 드림, 홍길동 올림'과 같이 써야 한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제자라면 '문하생(門下生)'이라는 단어르 앞에 넣어 '문학생 홍길동 올림(드림)'이라고 쓰면 더욱 예의 바른 표현이 된다. 예쁨 받는 것도 결국 자기 몫이다. 이런 사소한 것 같은 것에도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면 안 이뻐할래야 할 수가 없는 이치이다.
수신자란에 편지를 받는 사람의 이름 석 자만 쓰는 것은 더 큰 결례이다. 봉투에 자기 이름 석 자가 아무 수식 없이 떡 올라와 있는데 기분 좋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더구나 편지 받는 사람이 윗사람이라면 '나를 어떻게 보고 이렇게 쓰나?' 하는 생각에 더욱 참담한 느낌마저 들기도 할 것이다.
윗사람에게 편지를 보낼 때는 직함이 있는 경우 직함을 이용하여 '홍길동 과장님(께)'과 같이 쓰는 것이 원칙이다. 이때 '홍길동 과장님 귀하'처럼 '귀하'를 덧붙이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윗사람이 직함이 없는 경우에는 '귀하'와 '좌하'를 붙여 '홍길동 귀하', '홍길동 좌하'라고 쓴다. '홍길동 님 귀하'나 '홍길동 님 좌하', '홍길동 씨 귀하'나 '홍길동 씨 좌하'는 존대가 중복된 표현으로 본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와 같은 표현이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이름 뒤에 '귀하'나 '좌하'만 붙여 쓰는 것이 어른에 대한 공대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이러한 중복 표현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님'이나 '씨'를 덧붙이지 않고 '귀하'나 '좌하' 만으로 표현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
동료에게는 '홍길동 귀하, 홍길동 님(에게)'과 같은 형식으로 쓰고, 아랫사람에게는 '홍길동 앞'과 같은 형식으로 쓰는 것이 원칙이다.
개인 편지가 아니라 공식적인 업무로 보내는 우편물의 경우에도 수신자란을 작성하는 일정한 방식이 있다. 회사로 보내는 경우에는 '서울 주식회사 귀중'이라고 쓰고, 개인에게 보내는 경우에는 '세종 주식회사 홍길동 사장님, 세종 주식회사 홍길동 귀하'와 같이 쓴다. 직책으로 존대했으면 '세종 주식회사 홍길동 사장님 귀하'와 가치 '귀하'를 덧붙이지 않아야 한다.
한 통의 편지에도 보내는 사람의 인품과 교양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이는 편지의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편지의 격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편지를 쓸 때에는 합의된 격식에 따라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기면 상대를 언짢게 만들 수 있고, 또 스스로는 교양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요즘은 전화와 문자 메시지 같은 전자말에 밀려서 글말 편지가 나날이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하지만 알뜰한 사실이나 간절한 마음이나 깊은 사연을 주고받으려면 아직도 글말 편지를 쓰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글말 편지라 했으나, 종이에 쓰고 봉투에 넣어서 우체국 신세까지 져야 하는 진짜 글말 편지는 갈수록 밀려나고, 컴퓨터로 써서 누리그물(인터넷)에 올리면 곧장 받을 수 있는 전자말, 곧 전자글말 편지가 나날이 자리를 넓히고 있다.
글말 편지거나 전자말 편지거나 편지를 쓸 적에 흔히 쓰는 말이 ‘올림’ 또는 ‘드림’인 듯하다. 전자말 편지는 봉투를 따로 쓰지 않으므로 ‘올림’이든 ‘드림’이든 편지글 끝에 한 번 쓰면 되지만, 글말 편지는 편지글과 봉투에 거듭 쓰게 마련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편지글 끝에 ‘올림’이라 쓸까 ‘드림’이라 쓸까 망설이고, 편지글에 쓴 말을 봉투에다 그대로 써야 하나 달리 써야 하나 걱정하는 듯하다.
이런 망설임과 걱정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편지에서 쓰는 ‘올림’과 ‘드림’이 무슨 뜻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겠다. 알기 쉽게 뜻부터 말하면 ‘올림’은 ‘위로 올리다’ 하는 뜻이고, ‘드림’은 ‘주다’의 높임말인 ‘드리다’로 보이지만 본디 ‘안으로 들이다’ 하는 뜻이다. 받는 사람이 나보다 높은 자리에 있다는 뜻으로 ‘위로 올리다’ 하는 것이고, 내가 주는 것이 보잘것없다는 뜻으로 슬쩍 대문 ‘안으로 들이다’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올리다’는 받는 사람을 높이려는 뜻을 담고, ‘들이다’는 주는 스스로를 낮추려는 뜻을 담는다.
받는 사람을 높이려는 것과 스스로를 낮추려는 것은 뜻에서 다를 바가 없다. 그보다 깊이 헤아려야 할 것은 ‘올리다’나 ‘들이다’가 모두 물품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올림’이든 ‘드림’이든 편지글을 접어서 속에 넣은 봉투 겉에나 쓸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이다.
봉투 겉에 쓰는 것은 봉투 속에 든 글을 하나의 물품으로 보고 그것을 올리거나 드리거나 한다는 뜻으로 쓰는 것이라 좋지만, 봉투 속에 든 글은 바로 말씀을 올리거나 드리는 것이므로 사정이 다르다. 말씀을 올리거나 드릴 적에 쓰는 우리말이라면 ‘사뢰다’와 ‘아뢰다’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사뢰는 것은 속살과 속내를 풀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아뢰는 것은 모르고 있는 일을 알려 드리려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말을 제대로 가려 쓰려면 봉투 겉에는 ‘올림’과 ‘드림’ 가운데 하나를 골라 쓰고, 편지글 끝에는 ‘사룀’과 ‘아룀’ 가운데 하나를 골라 써야 한다. 편지글이 들어 있는 봉투를 보내면서 받는 사람을 나보다 높은 사람으로 여긴다면 ‘올림’을 쓰고, 높은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아도 나를 낮추어 겸손한 마음을 보이고자 한다면 ‘드림’을 쓰는 것이 좋겠다.
편지글로 적은 말들이 일어난 일들의 속살과 속내를 풀어 드리는 것이라면 ‘사룀’이라 쓰고, 적은 말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을 알려 드리려는 것이라면 ‘아룀’이라 쓰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봉투가 없는 전자말 편지에는 ‘올림’이니 ‘드림’ 같은 말이 어울리지 않고, ‘사룀’이나 ‘아룀’에서 가려 쓰는 쪽이 올바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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