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꽁수는 나한테 안 통해.”
꽁수는 ‘원래는 안되는 수지만 상대를 속이거나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기 위해 만드는 수’라는 뜻으로 바둑 둘 때 많이 쓰는 말이다. 주로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을 일컫는 의미로 쓴다. 하지만 ‘꽁수’에는 그런 의미가 없다. 사실 요즘은 일상생활에서 ‘꽁수’란 말을 쓸 일이 거의 없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꽁수’를 찾아보면 ‘연의 방구멍 밑의 부분’으로 나온다. 지금은 잘 볼 수 없지만 하늘로 높이 날리는 연(鳶)의 방구멍(연의 한복판에 둥글게 뚫은 구멍) 밑의 부분이 바로 ‘꽁수’다.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키는 말은 ‘꽁수’가 아니라 ‘꼼수’다.
“나이도 어린 사람이 벌써부터 꽁수나 부리고”
“이제는 알 만큼 알아서 그런 꽁수와 공갈에 안 넘어간대”는
“나이도 어린 사람이 벌써부터 꼼수나 부리고”
“이제는 알 만큼 알아서 그런 꼼수와 공갈에 안 넘어간대”
로 말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공수처 출범 위한 꼼수"
"역풍 의식한 정치적 꼼수"
"위증적 회피 꼼수"
요즘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들 표현만 보면 '꼼수'가 마치 정치 용어처럼 느껴진다. 요즘 의 정치가 속임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요즘 이렇게 많이 쓰이는 '꼼수'는 정작 1960년대 문헌에서야 발견된다. 그것도
"내 줄바둑과 김 군의 꼼수 바둑이 동수인지라" (김소운, 일본의 두 얼굴 1967)
에서 보듯, 바둑 용어의 하나로 등장한다. 그래서 그런지 꼼수가 원래는 안 되는 수지만 상대를 속이기 위해 만드는 수라는 뜻의 바둑 용어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런 시각에서는 '묘수, 악수, 승부수, 무리수' 등과 같이 '수'가 들어간 대부분의 단어들까지 바둑 용어로 간주한다.
'꼼수'가 사전으로는 <국어대사전 1982>에 처음 실려 있다. 여기에는 '꼼수'와 어형이 유사하고 의미가 가까운 '꾐수(거짓으로 달래어 제게만 이롭도록 하는 수단)'도 올라 있다. 특이하게도 <우리말큰사전 1991>에서는 '꼼수'를 '꾐수'에서 온 것으로 본 것이다. '꾐수'가 "京鄕漫評: 對局 - 꾐수에는 名人이군" (경향신문 1964년 2월 24일)에서 보듯, '꼼수'와 마찬가지로 바둑과 관련하여 쓰이고 있어 둘 사이에 모종의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만약 '꼼수'가 '꾐수'에서 온 것이라면 '꾐수'가 '꼬임수'의 준말이므로 '꼼수'는 결국 '꼬임수'에서 온 말이 된다.
한편 '꼼'은 '꼼꼼쟁이(빈틈이 없이 매우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꼼바르다(도량이 좁고 너무 인색하여 야멸차다), 꼼바리(마음이 좁고 지나치게 인색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꼼쥐(꼼바리의 방언), 꼼치(작은 것, 적은 것)' 등에 보이는 '꼼'과 같은 성격의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꼼수'는 '꾐수'와 거리가 있다. 이들 예엣 보듯 '꼼'은 '작음, 적음, 좁음' 등을 지시한다. 특히 '꼼치'가 이러한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꼼수'나 '꾐수'의 '수'는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나 수완'을 뜻한다. '수가 나다, 수가 없다, 속임수, 아리수(속임수)' 등에 쓰인 수가 바로 그것이다. 바둑에서는 '바둑을 두는 기술 또는 그 기술 수준'을 '수(手)'라 하는데, 만약 꼼수가 바둑 용어에서 온 것이라면 여기서의 '수'는 '手'가 된다.
'수' 가운데 작고, 적고, 좁은 수를 '꼼수'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꼼수가 비유적으로 확대되면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이라는 의미로 변할 수 있다. 그러나 '꼼수'가 정말 '작고 좁은 것'을 뜻하는 '꼼'과 '방법이나 수단'을 뜻하는 '수'가 결합된 것인지는 더 두고 살펴야 할 듯하다. '꾐수'에서 왔다는 설을 전적으로 부인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이 본래 바둑 용어였다는 주장도 아주 무시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이래저래 '꼼수'의 어원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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