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말

학을 떼다_어원 자료 : 학질이라는 무시무시한 병에서 벗어나다

by 61녹산 2024. 2. 12.
반응형

 

말라리아

 

 

지난여름 폭우로 장구벌레가 다 휩쓸려 갔는지 모기가 많이 사라졌다. 모기 하면 생각나는 재미있는 말이 있다. 바로 '학(瘧)을 떼다'라는 말이다. 


"영희는 전에 사귀던 철수에게 얼마나 학을 뗐는지 이젠 선조차 보지 않으려 한다."

"시그마 원주율 등 어려운 공식 때문에 난 수학에 학을 뗀 사람이다."

 

이처럼 '학을 떼다'는 괴롭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느라 진땀을 빼거나 그것에 거의 질려버림을 말한다.여기서 '학'은 학질, 즉 말라리아다. 말라리아는 말라리아 병원충을 가진 학질모기에게 물려서 감염되는 법정 전염병으로 갑자기 고열이 나며 설사와 구토, 발작을 일으키고 비장이 부으면서 빈혈 증상을 보인다. 특히 고열로 땀이 많이 난다.

'학을 떼다'는 말과 비슷한 표현으로는

 

"그가 하도 넌더리를 대어서 할 수 없이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처럼 '넌더리가 나다' '넌더리를 대다'가 있다. '넌더리'는 지긋지긋하고 신물이 나다라는 뜻이다. 또 몹시 싫거나 무서워서 몸이 떨리는 '몸서리를 치다'와 역시 싫증이 나거나 귀찮아 떨쳐지는 몸짓을 말하는 '진절머리가 나다'는 표현도 이와 비슷하다. 진절머리는 진저리의 속된 말로 '진저리를 치다'로도 많이 쓴다.

 

학질처럼 병에 얽힌 말이 많다. '지랄하고 자빠졌네'의 지랄은 지랄병, 즉 간질을 가리키며,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염병할 놈 같으니라고'의 염병 역시 장티푸스를 말하며 염병을 앓아서 죽을 놈이라는 욕이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들은 부정적이고 어감이 좋지 않으므로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다.

 

 

학질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말라리아 환자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합니다. 열대 지방이나 아열대 지방으로 여행하려는 사람들은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서 약을 복용해야 하는데요, 여행 전뿐만 아니라 여행 후에도 일정 기간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원래 ‘말라리아’라는 병은 열대 지방이나 아열대 지방에 많은 말라리아 모기가 옮기는 병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여름이 되면 말라리아 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말라리아 모기가 자주 발견되는 모양입니다.

일반적으로 뭔가 괴로운 일이나 진땀나는 일을 간신히 피할 때 또는 이런 일에서 벗어날 때 ‘학을 뗐다’ 또는 ‘학을 뗀다’와 같은 말을 하곤 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학’이란 말은 원래 ‘말라리아’ 다시 말해서 ‘학질’을 뜻하는 것이고, ‘뗀다’는 것은 어떤 병이나 버릇을 고친다는 뜻으로 쓰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학질을 뗀다’고 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이것을 줄여서 ‘학을 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무서운 학질을 고쳐서 그 병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무서운 열병인 학질에 걸리면 높은 열에 시달려서 자연히 땀을 많이 흘리게 되는데요,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진땀을 빼는 것을 바로 이것에 비유한 것입니다.

 

 

학질

 

 

'학(瘧)'은 다름 아닌 질병 이름이다. 한자 '瘧'을 자전에서 찾아보면 '학질 학'으로 나온다. '학'이 '학질(瘧疾)'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말라리아 원충을 가진 학질모기에게 물려서 감염되는 병이어서 '말라리아(malaria)' 또는 '말라리아열'이라고도 한다. 하루씩 걸러 앓는 학질을 특별히 '하루거리' 또는 초학(初瘧)'이라고 한다. 물론 '초학'에는 '처음으로 앓는 학질'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학'은 조선 시대만 해도 흔하고 무서운 돌림병이었다. 의료 선교사 알렌이 1885년부터 1년 동안 제중원(濟衆院 조선시대 세워진 최초의 근대식 국립 병원)에서 진료한 후 작성한 보고서에는 그가 치료한 환자 중에 말라리아 환자가 가장 많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제중원에서 구할 수 있었던 학질 치료제인 금계랍(키니네)이 아주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학'에 걸리면 고열이 나고 설사와 구토, 발작을 동반한다. 그리고 비장(脾臟)이 부으면서 빈혈 증상까지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오한과 열증이 반복되는 증상을 보인다. 고열이 나기 때문에 자연히 땀을 많이 흘리는데, 그래야만 낫는다고 믿었다. 

 

진땀을 빼든, 약을 쓰든, 굿을 하든 하여 '학'이라는 병을 몸에서 떼어내 이 병에서 벗어나는 것을 '학(을) 떼다'나 '학질(을) 떼다'라고 하였다. 물론 말라리아(를) 떼다'나 '하루거리를 떼다'와 같은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 떼다'나 '학질 떼다'가 '말라리아'라는 외래어가 들어오기 훨씬 전에 생겨난 관용구임을 알 수 있다. 

 

'학'이라는 고통스러운 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동안 이불을 뒤집어쓴 채 진땀을 빼야 했다. 그리하여 '학(을) 떼다'나 '학질(을) 떼다'에 '괴롭거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느라고 진땀을 빼다'라는 비유적 의미가 생겨날 수 있다. 

 

"귀찮게 자꾸 꼬치꼬치 캐묻는 바람에 아주 학질을 뗐어."

 

의 학질을 떼다가 바로 그러한 의미로 사용된 표현이다. 

 

요즘에는 학을 떼다나 학질을 떼다는 질리다, 진저리나다 등과 같은 극단의 혐오적 의미로 쓰인다. 

 

"그 학생의 불경한 태도를 보고 아주 학을 뗐어."

 

에 쓰인 학을 떼다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학질이 사람을 질리게 하는 고통스럽고 모진 질병이라는 점이 매개 요인으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작용한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