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무더위의 연속이다. 한마디로 올여름, 꺾일 줄 모르는 더위의 기세가 무섭다. 흔히 더위를 나타내는 말로 ‘불볕더위'와 ‘가마솥더위'가 있다.
“앞으로는 현재와 같이 높은 기온에 습기까지 더해져 당분간은 불볕더위보다는 가마솥더위가 몹시 괴롭힐 것으로 전망됩니다.”
위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두 표현은 말 그대로 큰 차이가 있다. ‘불볕더위’의 경우 글자 그대로 볕이 무척 뜨거운 느낌을 주는 더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더위는 습도가 낮기 때문에 그늘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더위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가마솥더위’의 경우에는 습도가 높기 때문에 하늘이 잔뜩 흐려 햇볕이 뜨겁지 않아도 그야말로 땀이 줄줄 흐르는 후텁지근한 느낌을 준다. 일반적으로 한 여름 무더위라고 하면 이런 가마솥더위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햇볕도 뜨겁고 습기도 높은 경우도 있다. 흔히들 ‘찜통더위’, ‘한증막더위’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한다. 이 외에도 가뭄으로 더 덥게 느껴지는 가뭄더위,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고 볕만 내리쬐는 강더위, 한창 심한 한더위 등 여러 표현들이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더운 느낌을 표현 할 때 ‘후덥지근하다’와 ‘후텁지근하다’를 쓰곤 한다. ‘후덥지근하다’고 하면 ‘열기가 차서 조금 답답할 정도로 더운 느낌이 있다’는 뜻이다. ‘후텁지근하다’는 ‘후덥지근하다’의 거센소리로 아주 높은 습도와 온도일 때, 다시 말해 후덥지근함보다 더 강한 불쾌감을 나타낼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후텁지근하다’만 사전에 올라 있었지만 그 뒤로는 ‘후덥지근하다’도 비슷한 뜻으로 사전에 올라 지금은 모두 쓰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34∼35도에 멈춘 것 같은 한낮 온도, 30도에 육박하는 한밤 실내온도가 날마다 계속되다보니 누구라도 심신이 지치기 마련이다. 괜히 짜증이 나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식욕도 떨어지기 쉽다. 이럴 때 우리는 ‘더위 먹었다’라고 한다. 일사병, 열사병은 더 무섭다. 무엇보다 자기관리와 건강관리가 우선이다. 더위를 이겨내려면 평상시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충분한 휴식과 더 많은 수분 및 영양섭취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요즘이다.
우리말에는 '가마솥더위, 강더위, 땡볕더위, 무더위, 불더위, 불볕더위, 살인더위, 찜통더위, 한더위' 등 아주 심한 더위를 뜻하는 단어가 대단히 많다. 이들 가운데 가장 강렬한 느낌을 주는 더위 이름은 어떤 것일까?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가마솥더위가 바로 그것이 아닐가 싶다. 실제로 가마솥에 쇠죽을 끊어본 경험이 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은근하면서도 꾸준히 열기가 올라가고 거친 풀마자도 기운을 털썩 내어버리고 퍼지는 그 더위를 말이다.
가마솥더위가 등장하는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매일경제 1977년 8월 3일 자> 기사에서 처음 검색되니 그즈음 등장한 단어가 아닌가 싶다. 이날의 경북 대구 지역으 수은주가 섭씨 38도 8분을 기록했는데, 이를
"살인적인 가마솥더위"
라고 표현했다. 얼마나 더웠으면 가마솥까지 동원하여 새로운 더위 이름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을가 싶다.
가마솥더위는 가마솥을 달굴 때의 아주 뜨거운 기운처럼 몹시 더운 날씨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찜통더위는 뜨거운 김을 쐬는 것같이 무척 무더운 여름철의 기운이다. 따라서 무더위가 더욱 심해지면 가마솥더위와 찜통더위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습기 가득한 ‘무더위’란 의미하고는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불볕더위’는 그 의미가 좀 다르다. 불볕더위는 햇볕이 몹시 뜨겁게 내리 쬐는 날 느껴지는 더위다. 일명 ‘불더위’라고도 불린다. 불볕더위는 기온은 높지만 습도는 낮은 편이다. 그늘에서 쉬면 어느 정도 더위를 견딜 수 있다. 불더위는 무더위보다는 덜 괴롭다는 이야기다. ‘물기가 적다’는 의미의 ‘되다’란 말과 결합된 ‘된더위’나 ‘땡볕더위’도 마찬가지 의미로 쓰인다.
다시 말하면 한여름에 햇볕도 뜨겁고 습도도 높은 ‘무더위’, ‘가마솥더위’, ‘찜통더위’ 등은 정말 견디기 힘든 최악의 더위다. ‘한증만 더위’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습도는 높지 않지만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불볕더위’, ‘불더위’ 등은 그늘 속을 찾아가면 다소 선선하게 여름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강더위’ 또한 같은 의미의 더위라 할 수 있다. 여름철 몹시 심한 더위는 된더위라 한다. 한더위는 한창 심한 더위를 말한다.
가마솥은 17세기 문헌에 처음 보이며, 이는 가마에 솥을 덧붙인 어형이다. 가마는 중국어 감(坩 도가니)에서 차용된 말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중세국어 이래 큰 솥을 뜻하여 뒤어어 나타난 가마솥과 의미가 같았다. 가마라는 단어가 존재함에도 여기에 솥을 덧붙여 새로운 단어를 만든 것은 가마가 다름 아닌 솥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는 마치 '갑(甲)'에 '옷'을 덧붙여 갑옷을 '죠롱'에 '박'을 덧붙여 '죠롱박(조롱박)'을 홍시(紅枾)에 감을 덧붙여 홍시감을 만든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도 가마가 쓰이고 있으니 가마솥보다는 세력이 약하다.
가마솥은 무쇠로 만들어 웬만한 화력으로는 잘 달구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달구어지면 열기가 대단하고 도 오래간다. 그리하여 한낮의 이글거리는 더위를 '가마솥'을 이용하여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다. 사전에서는 '가마솥더위'를 '가마솥을 달굴 때의 아주 뜨거운 기운처럼 몹시 더운 날씨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고 풀이하고 있다. 이 경우 가마솥더위는 불볕더위보다 당연히 더욱 뜨거운 느낌이 든다.
후끈 달아오른 가마솥 안은 물이 펄펄 끓으면서 마침내 몹시 뜨가운 열기로 한 솥 가득 차오르게 된다. 그리하여 가마솥 안처럼 푹푹 찌는 무더위 또한 가마솥을 이용하여 표현할 수 있다. 한증막과 사우나도 뺨치는 가마솥더위<동아일보 1983년 8월 4일>의 가마솥더위가 바로 그러한 것의 대표적 예일 것이다. 이 경우의 가마솥더위는 무더위나 찜통더위보다 고온다습하다. 가마솥더위는 주로 이러한 의미로 쓰이는데, 어찌 된 일인지 사전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다. 현실 언어 사용에 비추어 가마솥더위는
"몹시 뜨거운 불더위나 몹시 찌는 듯한 무더위"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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