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가 말[馬]을 타고 바닷가 말[村]을 지나가다 말에 걸려 넘어져 화가 나자 말을 뽑아 바다 깊이 던지니 바다 속에서 말[海草]이 말에 말려 떠올랐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말을 건져내어 말에 붙은 말[海草]을 거둬 말[斗]에 담으려고 아귀다툼을 하다 말을 받친 바둑판을 밟는 바람에 말[馬]이 흐트러졌다. 영구가 점잖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내 말[言]을 들어 보시라니간요."
위 이야기에 여러 가지 말이 등장했는데 이 가운데에서 밑줄 친 것은 길게 소리 내는 말이고 그 밖의 말은 짧게 소리 내는 말이다. 길게 소리 내는 말도 뜻이 한결같지 않고 제각각이다. 각 말의 의미를 알고 싶으면 국어사전을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 이야기 가운데 맨 끝에 나온 말이 이제부터 설명하고자 하는 낱말이다.
말로 온 동네를 다 겪는다는 속담이 있다. 실제 돈을 들이거나 품을 들여 동네 사람들을 대접하지 않고 그렇게 할 것처럼 말만 한다는 뜻으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말만 듣기 좋게 위해 주는 척하는, 이른바 말잔치만 벌이는 사람을 비꼬는 상황에 사용하는 말이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은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한다.
말은 하거나 듣는 대상이다. 그래서 말을 하다/못하다, 말을 건넨다, 말을 듣다. 말을 내다/꺼내다, 말을 가리다, 말을 쓰다, 말을 앞세우다, 말을 맞추다, 말을 돌리다, 말을 삼키다, 말을 받다, 말을 삼가다처럼 목적어로 쓰인다. 이 경우에는 목적격 조사 '를' 대신에 보조사 '은/는, 만, 도' 등을 쓸 수 있다.
내 말을 들어라 대신에 내 말만 들어라 또는 내 말도 들어라처럼 쓸 수 있고, 말을 가려서 해라 대신에 말은 가려서 해야지를 쓸 수 있으며, 말을 앞세우는 사람 대신에 말만 앞세우는 사람으로 쓸 수 있다. 말을 꺼내자마자도 쓸 수 있고, 말도 꺼내기 전에처럼 쓸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경우, 조사에 따라서 화자의 의도가 사뭇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보조사의 기능과 관계가 있을 뿐 말의 의미와는 상관없다.
말이 주어가 되기도 한다. 말이 많다, 말이 나다, 말이 되다, 말이 떨어지다, 말이 뜨다, 말이 거칠다, 말이 아니다, 말이 아프다, 말이 무겁다, 말이 있다, 말이 퍼지다, 말이 헛나가다 처럼 쓰인다. 이 경우에도 주격 조사 이 대신에 보조사 은/는, 만, 도 등을 쓸 수 있다.
말이 많은 동네 대신에 말도 많은 동네 처럼 쓸 수 있고,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와 말도 안 떨어졌는데 둘다 쓸 수 있는 표현이다. 그가 왔다는 말이 있다 대신에 그가 왔다는 말만 있다 를 쓰면 화자의 의도가 사뭇 달라진다.
말이 수단, 이유, 처소 등으로, 곧 부사어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말로 하다, 말로 할 수 없다, 말로 갚다, 화가 나다, 말에 뼈가 있다 처럼 스이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 경우에는 부사격 조사를 보조사로 대체할 수 없다. 다만, 부사격 조사에 보조사를 덧붙여서 사용할 수는 있다.
말로 사과하다를 말로만 사과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라 처럼 쓰고, 말로 갚다 대신에 말만으로 갚으려 한다나 말로만 갚으려 한다 처럼 쓰며 말에 뼈가 있다를 말에도 뼈가 있다 처럼 써서 화자의 의도를 바꿀 수 있다. 이떤 보조사가 쓰이더라도 부사격 조사가 생략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부사격 조사 '로'와 보조사 '만'은 순서를 바꿔 써도 말이 된다는 점이다. 물론 화자의 의도는 조금 달라지지만 그 정도의 차이는 개의치 않아도 될 것 같다.
말에는 표현법상 아주 독특한 면이 있다. 윗사람을 높이기 위해서, 윗사람의 말을 말씀이라고 하는데 윗사라에게 하는자기의 말도 말씀이라고 한다. 이는 말하다의 겸양 표현으로 말씀 드리다가 쓰이기 때문이다. 그 외의 경우에는 아랫사람의 말은 말 일 뿐 말씀이라고 하지 않는다.
"제 말과 사장님의 말씀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
"아빠, 동생의 말이 맞아요."
에서 자기의말과 동생의 말을 말씀이라고 할 수 없다. 훈민정음에 국어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나랏말씀이라고 한 것은 나라를 높인 때문이다. 나라에 님을 붙여 나라님으로 쓰던 것과 같은 용법일 것이다.
말에 서술격 조사를 붙여 말이다의 형태로 쓰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라는/-란, -다는/-단' 같은 어미가 붙은 관형어를 앞세워 쓰는 경우와, '-니/-으니, -어야/-아야' 같은 연결 어미를 앞세우는 경우, 그리고 그런데, 하지만 같은 부사어를 앞세우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빨리 떠나란 말이야!"
"어째서 범인을 못 잡았단 말이냐."
"저는 모른단 말입니다."
"네가 가지 않겠다는 말이지."
처럼 관형어를 앞세우는 표현은 앞의 서술 부분을 강조하는 용법으로 쓰인다.
"여기서 만났으니 말이지 만일 못 만났다면 큰 낭패를 당했을 거야."
"그랬기에 말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구나."
이 표현은 망정이지 대신에 말이지를 쓴 것으로 다행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아이들이 도대체 말을 들어야 말이지."
"여행을 하고 싶은데 돈이 있어야 말이지."
처럼 쓰는 것이바람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내가 말이야, 너를 데리고 가려 하는데 따라오겠니?"
"그런데 말이야, 아까 그 친구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더라."
"하지만 말이죠, 그 방법은 곤란하겠어요."
"우리끼리 말인데, 그애는 좀 모자라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
이처럼 부사어를 앞세운 표현은 상대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어법이다.
말 같지 않은 말 또는 말 아닌 말이란 말이 있다. 말에도 쓸 만한 말과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만큼 해로운 말이 있음을 가르쳐 주는 표현이다. 사람 같지 않는 사람이 형편없는 인격자를 가리키는 것과 같은 용법이다. 말 뒤에 말이 있다. 또는 말 속에 말 들었다 라는 표현으로 말에는 드러난 뜻과 드러나지 않은 뜻(속뜻)이 있음을 알려 준다.
입과 혀,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말’을 상징하는 가로획이 더해 진 것이 言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지만 사실 言은 피리 모양 악기의 입(reed)과 댓가지(竹·죽),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소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言이 악기의 ‘소리’에서 사람의 ‘말’로, 다시 말과 관련된 여러 뜻을 가지게 되었지만 言으로 구성된 글자에는 일반적인 언어행위 외에도 말에 대한 고대 중국인들의 인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먼저 말은 믿을 수 없는 거짓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와(訛·거짓말 와)는 말(言)로 하는 것(爲·위)은 ‘거짓’이며, 거짓(訛)은 말(言)에 의해 변화된(化·화)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또 謬(그릇될 류)의 경우 말(言)이 높이 날면(료·료) 妄言(망언)이나 ‘오류’가 되고 마는 것을 뜻한다. 또 말은 속임의 수단이었다. 예컨대 빼어난(秀·수) 말(言)은 유혹(誘·유)이며 말(言)이 만들어 내는(乍·지을 사, 作의 원래 글자) 것은 바로 속임(詐·사)임을 보여 준다.
그래서 말(言)에 빠지는()·함) 것이 아첨(諂·첨)인 것처럼 말을 잘하는 것은 능력이 아닌 간사함이자 교활함과 다름없었다. 그 때문에 말의 귀착점은 언제나 다툼이었다. 獄(옥 옥)은 개(犬·견) 두 마리가 서로 싸우듯(F·은) 언쟁을 벌이는 모습을, 언쟁의 결과는 訟事(송사)로, 송사는 옥살이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극단의 경우에는 誅(벨 주)처럼 ‘목 베임’으로까지 갈 수 있다.
나아가 變(변할 변)에서처럼 말은 항상성을 지닌 것이 아닌 언제나 변하는 믿을 수 없는 것임을 보여 주며, 그래서 말(言)은 사람을 제물로 바쳐 지내는 제사(8·근)처럼 항상 정성스럽고 신중하고 삼가야(謹·근) 하며, 언제나 공경(敬·경)하게 해야 하는 경계(警·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말(言)을 묶어 두는(兼·겸) 것이 바로 겸손(謙·겸)이었으며, 말(言)을 실현하려면(成·성) 지극 정성(誠·성)을 다해야 하며, 언제나 사람(人·인)의 말(言)은 진실(信·신)되어야만 했다.
현대는 언론 매체와 인터넷이 문화를 이끌어 가는 이른바 정보화 사회이다. 말 한마디로 일반인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유명 인사가 되기도 하고 말 한마디로 일생을 쌓아왔던 명예가 땅에 떨어지기도 한다. 비단 오늘날에만 말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말은 할수록 늘고 되질은 할수록 준다’, ‘말이 씨가 된다’ 등 말과 관련한 속담이 많다. 더불어 말과 관련된 관용 표현도 많은데 주로 말하는 것과 관련된 신체 부위인 입, 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 | ㄱ. 말없이 커피를 마시던 영희가 비로소 입을 뗐다. |
ㄴ. 매사에 조심성이 있어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고 신중했다. | |
ㄷ. 말을 알기 쉽게 전하려고 열심히 혀를 놀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 |
ㄹ. 규성이 혀를 굴리기 시작했을 때 두일은 술상을 밀고 일어섰다. |
(1ㄱ~ㄹ)의 ‘입을 놀리다, 입을 떼다, 혀를 놀리다, 혀를 굴리다’는 일반적인 ‘말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관용 표현들이다. 말할 때 신체 기관들이 움직이는 모양을 나타낸 표현들이다. (1ㄱ)은 다물고 있던 입술을 떼어 말을 시작한다는 의미이고 (1ㄴ)의 ‘입을 놀리다’는 주로 ‘함부로, 마구’ 등의 부사와 함께 쓰여서 경솔하게 말을 할 때 쓴다. (1ㄴ~ㄹ)의 표현들은 ‘말하다’라는 단어보다 속된 표현으로 느껴진다. (1ㄹ)의 ‘혀를 굴리다’는 ‘ᄅ’ 발음을 넣어서 외국어식으로 발음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2) | ㄱ. 학부형과 선생님들이 모두 급식에 찬성한다고 입을 모았다. |
ㄴ. 이미 입을 맞추어 놓았는지 모인 사람들이 모두 같은 얘기만 반복했다. | |
(3) | ㄱ. 철수는 묻는 말 이외는 말을 안 해서 갑갑할 정도로 입이 무겁다. |
ㄴ. 넌 다 좋은데 입이 가벼운 게 흠이야. | |
ㄷ. 앞집 새댁은 아는 것도 없으면서 입만 살아 가지고 떠들고 다닌다. | |
ㄹ. 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은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
(2)의 ‘입을 모으다’와 ‘입을 맞추다’는 모두 여러 사람이 같은 의견을 말하는 경우에 쓴다. 여러 사람이 같은 의견을 말하게 된 것이 우연일 경우에는 ‘입을 모으다’를, 의도적으로 말을 맞춘 경우에는 ‘입을 맞추다’를 사용한다. (3)은 말하는 것에 비추어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표현들이다. (3ㄱ)의 ‘입이 무겁다’는 말이 적거나 아는 일을 함부로 옮기지 않는다는 뜻이고 (3ㄴ)의 ‘입이 가볍다’는 말이 많거나 아는 일을 함부로 옮긴다는 부정적인 뜻이다. (3ㄷ)도 말에 따르는 행동은 없으면서 말만 그럴듯하게 잘한다는 의미이므로 부정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3ㄴ)의 ‘입이 가볍다’는 ‘입이 싸다’로도 쓸 수 있다. (3ㄹ)의 ‘입에 달다’는 어떤 말이나 이야기 따위를 습관처럼 되풀이하거나 자주 사용할 때 쓰는 표현이다. ‘입에 달다’는 ‘과자를 입에 달다’와 같이 ‘먹을 것을 쉴 새 없이 입에서 떼지 아니하고 지내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4) | ㄱ. 이 돈을 누구한테서 빼앗은 거냐는 소리가 입 안에서 돌았다. |
ㄴ. 거짓말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라는 소리가 입 끝에서 뱅뱅 돌았다. | |
ㄷ. 이런 상황에 잘 어울리는 말이 있는데 입 안에서 뱅뱅 도네. | |
(5) | 미숙이는 경찰에게 말을 하려다가 강도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혀가 굳었다. |
(4~5)의 관용 표현은 말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을 나타낸다. (4ㄱ)의 ‘입 안에서 돌다’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아니하거나 또는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4ㄴ)처럼 ‘입 안에서 돌다’에서 ‘안’은 ‘끝’으로 바꾸어 쓸 수 있고 ‘돌다’를 ‘뱅뱅’이 수식할 수도 있다. (4ㄷ)의 밑줄 친 부분은 상황에 맞는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한다는 뜻이다. (5)의 ‘혀가 굳다’는 놀라거나 당황하여 말을 못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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