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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감질나다_어원자료

by 61녹산 202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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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질?

 

 

 

신세대 트로트 가수로 유명한 장윤정과 박현빈. 이들을 두고 노래를 ‘감질맛 나게’ 잘 부른다고 하면 어법에 맞을까? 그들의 목소리엔 가락에 취하도록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는 의미로 사용하려면 ‘감칠맛 나게’라고 해야 한다.

 

‘감칠맛’은 음식의 맛이 맛깔스러워 당기다는 뜻의 동사 ‘감치다’의 관형형에 ‘맛’이 결합된 합성어다. ‘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맛’뿐 아니라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란 의미로도 쓰인다. “감칠맛 나는 봄나물로 입맛을 돋운다” “감칠맛 나는 그의 이야기 솜씨에 감탄했다”처럼 사용한다.

 

이 ‘감칠맛’에 이끌려 잘못 쓰는 말이 ‘감질맛’이다. 일상생활에서 ‘감질맛 나다’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지만 ‘감질맛’이란 단어는 없다. 바라는 정도에 아주 못 미쳐 애타다는 뜻의 ‘감질나다’는 말의 어감을 강조하기 위해 ‘감질맛 나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이나 이렇게 쓰는 건 어색하다.

 

“감질맛 나게 보여 주는 다음 회 예고편은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증만 증폭시킨다” “감질맛 나게 흥얼거리지 말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 보렴”과 같이 사용해선 안 된다. ‘감질맛 나게’를 모두 ‘감질나게’로 고쳐야 맞다.

 

우리말에는 관용구가 변용되어 한 단어로 굳어진 예가 의외로 많다. 관용구에 쓰인 주격조사 이/가나 목적격 조사 을/를이 생략되면서 생겨난 현상으로 보인다. 감질나다도 이에 해당하는데, 이는 감질이 나다라는 관용구에서 주격조사 이가 생략된 뒤 단어화한 것이다. 

 

지금은 감질이 나다라는 표현이 좀 낯설고 어색하기까지 하지만 

 

"옥희는 그 말을 듯더니 감질이 나서 밧삭 대드러 안즈며" (옥희는 그말을 듣더니 감질이 나서 바싹 대들어 앉으며, 김교제 현미경 1912)

 

에서 보듯 한때 일상적으로 쓰던 표현이었다. 감질이 나다의 감질은 한자어 감질(疳疾)이다. 감질(疳疾))은 젖이나 음식 조절을 하지 못하여 어린아이에게 생기는 병으로 감병(疳病)과 같은 뜻이다. 이 병에 걸리면 얼굴이 누렇게 뜨고 몸이 여위며, 목이 마르고 배가 아프면서 만성 소화불량이나 영양장애 등의 증상을 보인다. 

 

 

 

감질나다

 

 

 

나다생(生)의 뜻이다. 병이 나다, 탈이 나다 등에 쓰인 나다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감질이 나다는 본래 감질이라는 병이 생기다는 뜻이다. 감잘이 나면 배가 불러 끓고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나지만 속이 헛헛하여 무엇이든지 먹고 싶어진다. 그러나 먹고는 싶은데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내 마음대로 먹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욕구는 있으나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감질이 나다에 무엇이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거나 한데 그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여 애를 태우다와 같은 비유적 의미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곧 그 본래의 의미가 아닌 제3의 의미를 새로 얻은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든 신소설 <현미경>에서 나오는 감질이 나다가 그러한 의미로 사용된 예이다. 

 

그러나 사전에서는 감질이 나다를 관용구로 처리하지 않는다. 이것을 대신하는 것이 이로부터 단어화한 감질나다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감질나다는 더 이상 감질이라는 병이 생기다는 그 본래의 의미로 쓰이지 않고 비유적 의미로만 쓰인다는 점이다. 감질나다가 비유적 의미를 띠면서 그 어원을 밝히기 어렵게 된 것이다. 

 

감질나다는 한꺼번에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고 조금씩 맛만 보게 되어 더더욱 먹고 싶을 때, 또는 그 무엇을 몹시 알고 싶거나 어떤 일을 간절히 하고 싶어 애태울 때 등에 잘 어울리는 표현으로 굳어졌다. 

 

"감질나게 조금씩 내오지 말고 한꺼번에 다 내왔으면 한다."

"감질나게 굴지말고 태도를 분명하게 밝혀라."

 

와 같이 쓸 수 있다.

 

그런데 요즘 감질나다를 간질나다 또는 감질맛나다로 잘못 사용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간질나다는 감질을 간질병의 간질과 혼동하여 나타난 것이고, 감질맛나다는 감질을 감칠맛나다에 이끌려 감질맛으로 대체한 결과 나타는 것으로 추정된다. 어형이 유사한 단어가 있으면 자꾸 그 단어에 이끌려 본래 모습을 잃어가는 일이 자꾸 발생하여 속상할 지경이다. 

 

“그녀가 내 잔에 감칠맛(X) 나는 농주를 가득 부어 주며 감질맛 나는 눈웃음을 짓네”

 

라고 하듯 ‘감질맛’은 널리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감질맛나다’는 좀 이상한 말이다. 우리말에는 “무언가 몹시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거나, 하고 싶어서 애타는 마음이 생기다”란 뜻의 ‘감질나다’가 있다. 이 말에서 유추해 “한꺼번에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찔끔찔끔 맛만 보아 안달이 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감질맛나다’를 만들어 쓰는 듯하다. 그러나 ‘감질’의 뜻을 알면 ‘감질맛’이 얼마나 황당한 말인지 알게 된다.

 

 

 

감질은 병이다

 

 

 

‘감질(疳疾)’은 국어사전에서는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어서 몹시 애타는 마음”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본래는 한의학에의 ‘감병(疳病)’을 일컫는 말이었다. ‘감병’이란 어린 아이들이 젖이나 음식을 잘 조절하지 못해 생기는 질병을 뜻한다. 그래서 감질이 나면 속이 비어 뭔가 먹고 싶은데 몸에 탈이 나 마음껏 먹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안달이 남다. 이렇게 유래한 ‘감질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몹시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거나 하고 싶어서 애타는 마음이 생기다”란 뜻으로 쓰이게 됐다.

 

따라서 병 이름에 뿌리를 둔 ‘감질’과 ‘맛’이 어울려 하나의 단어를 이루는 것은 좀 이상하다. 그래서 ‘감질맛나다’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립국어원도 ‘감질맛나다’로 써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감질맛’은 혀로 느끼는 맛이 아니라 가슴 한구석에만 있는 맛이다. 따라서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 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맛의 뜻으로 쓰이는 ‘감칠맛’과 혼동해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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