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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고뿔_어원자료 : 감기에 걸려 코에 불이 난다

by 61녹산 202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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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뿔

 

 

 

독감을 비롯해 감기를 통칭하는 인플루엔자는 최근의 유행병처럼 들린다. 그러나 인류가 정착해 농업 공동체를 이룬 후부터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전염되어 왔다. 최초의 기록은 1580년 소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보고된 것으로 오늘날의 인플루엔자와 거의 비슷하다. 감기로 인해 인류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1918년에 유럽에서 발생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스페인 독감이다. 무려 3000만 명 이상이 독감으로 죽었다. 1차 대전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끝난 것은 바로 이 스페인 독감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전쟁사학자들도 있다. 이 독감이 미국을 강타했던 그 해에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12년이나 감소했다. 최근 과학자들은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사망한 시체에서 독감 바이러스를 추출해 살려내는데 성공했다. 이 독감으로 죽은 한 인디언의 시체가 얼음 속에 냉동 상태로 있던 것을 발견해 그 바이러스를 복원했다.

 

감기를 의미하는 인플루엔자(influenza)라는 단어 철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영어의 ‘영향(influence)’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사실 아주 가까운 친척이다. 인플루엔자는 중세 라틴어인 ‘influentia’가 그 어원이다. 이 말은 원래 ‘흘러가다(flow into)’를 뜻하는 단어로 주로 점성술 용어로 많이 쓰였다.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별들에 의한 에테르 유체(ethereal fluid)”의 의미였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 철학시대부터 나온 우주를 이루고 있는 정령(精靈)인 에테르 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단어였다. 오늘날과 같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이라는 의미로 탈바꿈한 것은 16세기가 되어서다. 따라서 감기의 인플루엔자는 별들의 영향으로 인해 생기는 질병으로 변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별의 흐름인 에테르의 기(氣)가 빠져서 생기는 질병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토속 설화에 나오는 감기의 기원은 좀 다르다. 성기를 두 개 가진 남자가 배우자를 찾지 못하고 죽어 귀신이 되어 콧구멍에 대고 욕망을 푸는 데서 감기의 증상이 생겼다는 재미있는 내용이 전해 온다.

 

어떤 왕자가 있었는데 성기가 두 개였다. 왕자가 장가갈 나이가 되자 왕은 신하들에게 성기가 둘인 처녀를 찾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그런 처녀는 없었고 왕자는 결국 죽고 말았다. 죽어서 귀신이 된 왕자는 생전에 채우지 못했던 욕망을 사람의 콧구멍에 대신 풀곤 하였다. 감기에 걸리면 콧물이 흐르는 것은 바로 감기 귀신이 콧구멍에 사정을 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그러면 감기의 순우리말인 고뿔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통설은 코와 불이 합쳐져서 된말로, 감기가 들면 코에서 불이 나는 것처럼 더운 김이 나온다고 하여 감기를 고뿔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출처도 있다. 우리나라의 시조인 단군 후손 가운데 고불 단군이라는 임금이 있었다. 하루는 관리들에게 호구조사를 시켰는데 워낙 일이 힘들어 다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마음씨 좋은 고불 임금은 이들에게 다 나을 때까지 특별 휴가를 주었다. 이 때부터 누구든지 감기에 걸리면 임금이 무조건 쉬라고 해서 고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성기가 두 개인 감기 귀신에서 나온 이야기다. 고뿔은 남자의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인 ‘좆’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말도 안된다는 의미의 개뿔, 쥐뿔 등과 같이 ‘좆’에 뿔을 붙인 ‘좆뿔’에서 고뿔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기에 걸리면 “에이, 이놈의 개좆뿌리야!”고 외치면 감기가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예로부터 민속에서 큰 성기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겼다. 이러한 설화는 토속적인 문화의 원형적 상징을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 큰 가치를 지닌다. 신라의 지증왕과 왕비,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과 그 왕비 역시 엄청나게 큰 성기를 지닌 인물들로 전해진다. 코감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고불 단군처럼 쉬는 것이 최상의 치료법이다.

 

감기는 한자어 감기(感氣)로, 찬 기운에 감염되다라는 뜻이다. 감기(感氣)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한자어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서는 감모(感冒)라는 단어를 썼다. 감모(感冒)가 일찍이 우리말에 들어와 활발히 쓰였으나 지금은 감기(感氣)에 밀려나 거의 스이지 않는다. 

 

감기를 순우리말로는 고뿔이라고 한다. 고뿔은 현대의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고, 문학 작품에도 나오지만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이 또한 감기라는 한자어에 세력을 빼앗긴 결과다. 지금은

 

"감기 고뿔도 남은 안 준다." (감기까지도 남에게 주지 않을 만큼 지독하게 인색하다는 말)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 (남의 괴로움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자기의 작은 괴로움보다 마음이 쓰이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루는 말)

"정승 될 아이는 고뿔도 안 한다." (장차 훌륭한 인재가 될 아이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데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의 속담이나 '고뿔앓이, 돌림고뿔(전염성 있는 감기), 고뿔들다(임신하다의 속어)'등과 같은 합성어 속에서나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고유어 고뿔은 역사가 아주 깊다. 16세기 문헌에 곳블로 처음 보이는데, 오래전부터 그렇게 쓰여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곳블은 명사 고ㅎ[鼻, 코]와 블[火, 불] 사이에 사이시옷이 첨가된 어형이다. 고ㅎ와 블의 성조가 거성(去聲)이고 곳블의 성조가 거성 + 거성으로서 성조가 같다는 점 또한 이러한 설명을 뒷받침해준다. 이에 따르면 곳블은 코에서 나는 불로 해석된다. 감기에 걸리면 콧물이 줄줄 흐르고 심해지면 코까지 막혀 급기야 코에서 뜨거운 열기가 나는데, 이와 같은 코감기의 증상에 주목하여 곳블이라 명명한 것이다.

 

16세기의 곳블은 제2음절의 모음이 원순모음으로 바뀌어 '곳불'이 된다. 곳블에서 제2음절의 어두음이 된소리로 발음 나는 것을 반영한 표기 형태가 지금의 고뿔이다. 현재 고뿔은 한자어 감기에 밀려나 세력을 거의 잃었으나 힘을 몰아주어 소생시켰으면 한다. 

 

감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에 개좆부리다가 있다. 전남 방언에서는 개좆머리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머리에 대응하는 부리는 주둥이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콧물이 나고 기침을 하는 감기가 지저분한 병이어서 그와 같은 성격의 개좆(개의 생식기)을 이용하여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또는 정말 지긋지긋한 아픔과 고통이기에 쌍욕으로 불러 호되게 호통 치고 있는 것이다. 개좆부리를 줄여서 개좆불이라고도 한다. 

 

전국에 많은 눈이 내리고 기온이 낮아지면서 ‘겨울 풍경’ 하면 얼른 생각나는 ‘고드름’이 곳곳에서 보이게 된다. 많은 사람에게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고드름의 옛 표기는 ‘곳어름’이다. 여기서 ‘곳’은 “곧다”를 뜻하고, ‘어름’은 요즘의 ‘얼음’이다. 즉 ‘곳어름’은 “곧게 언 얼음”을 의미한다. 고드름이 맺힐 때면 감기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한자말 ‘감기(感氣)’의 순우리말인 ‘고뿔’의 옛 표기도 ‘곳’이 들어간 ‘곳블’이다. 하지만 이때의 ‘곳’은 “코”를 뜻하는 옛말 ‘고’에 사이시옷이 붙은 꼴이고, ‘블’은 현대어로 하면 ‘불[火]’이다. 따라서 ‘곳블(고뿔)’은 “코에서 나는 불”을 뜻한다. 감기의 여러 증상인 콧물, 코막힘, 발열 등을 ‘코에 불이 난 것’에 비유한 말이 고뿔이다.

 

고뿔은 증상이 가벼운 것이 일반적이지만, 더러는 심한 고통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런 고뿔을 가리켜 “지독한 감기”란 뜻에서 ‘독감’이란 말을 쓴다. 하지만 이는 맞는 말이면서 맞지 않는 말이다. 독감(毒感)은 언어학적으로 “지독한 감기”를 의미하지만, 의학적으로 감기와 독감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감기는 200여 종의 바이러스가 단독 혹은 복합적으로 일으키는 질환이다.질환의 원인이 다양한 만큼 예방이 쉽지 않다. 반면 독감은 특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이 돼 일으킨다. A·B·C형 등 3가지가 대표적으로, 독감은 백신 접종으로 상당 부분 예방이 가능하다.

 

항간에 ‘감기에는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는 게 최고’라는 속설이 떠도는데, 이는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다. 특히 감기약을 함께 복용할 경우 항히스타민과 알코올 성분이 만나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되기 쉽다. 감기나 독감에 걸렸을 때 최고의 선택은 의사의 처방전뿐이다. 한편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마치 목감기를 앓는 것처럼 늘 기침을 심하게 하는 증세를 가리켜 ‘해소병’이라고 부르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해소병은 ‘해수병’이 바른 표기다. ‘기침’을 한방에서 이르는 말이 ‘해수(咳嗽)’이기 때문이다.

 

 

 

고뿔

 

 

 

똑똑 들어가도 되나요? 문 앞에 감기 마녀가 또 있다.
이번에는 노크까지 한다. 얼마나 나를 좋아하는지 몇 년째 쫓아다닌다.
그녀의 대화 방식은 늘 비슷하지만 가끔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화를 많이 낸다… 내가 심심해하면 콧속에 강아지풀을 넣어 간지럽히며 장난을 건다.
콧물보다 자기가 더 신나 미끄럼틀을 타며 논다…
지금 나는 감기마녀랑
바람을 타고
구름을 타고
얼음나라로 가고 있다.

김이삭 작가의 ‘감기마녀’란 동시입니다. 동시로 들으니 감기마녀는 귀염둥이 아이 같지요. 하지만 감기마녀란 놈은 정말 심술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랍니다. 우리나라 말에 감기는 온다고도 하고, 들린다고도 합니다. 김이삭 시인은 감기가 온다는 말에서 ‘감기 마녀가 문 앞에 서있다.’란 말을 상상했나 봅니다.

화려한 단풍이 다 지고 첫눈 소식이 벌써 들립니다. 날이 갑자기 추워지니 감기로 많은 사람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 조회시간에 학생들에게 계절에 걸맞게 옷을 챙겨입어 감기를 미연에 예방하라고 당부했는데, 정작 나는 감기 마녀가 서 있는 걸 잊고는 덜컹 문을 열었네요.
생각지도 못한 감기 마녀의 방문으로 정신을 못 차립니다.

말이란 참 그렇습니다. 남들에게는 쉽게 하는 말이지만 정작 나는 지키지 못합니다. 말이 그래서 참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말을 잘도 합니다. 감기 이야기 해 드릴게요.
감기는 다양한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나타나는 호흡기 질환으로, 사람이 걸리는 가장 흔한 급성 질환 중 하나입니다.

한국에서는 감기(感氣)라는 한자어로 주로 불리며, 순우리말로는 ‘고뿔’이라고 한대요. 코에 불이 난다는 뜻에서 온 듯합니다. 감기는는 한국에서만 쓰이는 한자어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감기에 걸렸다’ 또는 ‘감기가 왔다’ 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합니다.
중국어로는 ‘感冒’(감모·ganmao)라고 하고, 일본어로는 나쁜 기운이라는 뜻의 ‘風邪(풍사·かぜ)’라고 합니다. 영어권 나라에서는 ‘Cold’라 합니다.

나라마다 불리는 이름이 다른 감기 마녀는 겨울철에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갑니다. 한번 들어온 감기 마녀는 약을 먹어도 쉽게 가지 않아요. 그러니까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꼭 닫아야겠습니다. 감기 마녀는 따스한 몸을 싫어한대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차가운 바람을 피해야겠지요. 외출 후 집에 와서는 감기 마녀가 붙어있는 외투는 잘 털어서 보관하고, 양치와 따스한 물로 몸을 씻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여러분! 감기 마녀로부터 나를 잘 보호해서 건강한 겨울나기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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