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말

개구쟁이의 어원: 짓궃은 아이는 개긏다

by 61녹산 2023. 8. 11.
반응형

개구쟁이
개구쟁이

장난이 심한 아이를 가리켜 ‘개구쟁이’라고 한다. ‘개구쟁이’가 하는 행동을 두고 ‘개구지다’란 표현을 쓴다. ‘개구지다’는 참 널리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개구지다’는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왜 이 재미난 낱말이 사전에 없는 걸까? ‘개구지다’는 ‘짓궂다’의 사투리 취급을 받는다. ‘개구지다’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개궂다’도 ‘짓궂다’의 방언이다. 우리말에서 ‘지다’는 명사 뒤에 붙어 ‘그런 성질이 있음. 또는 그런 모양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따라서 ‘개구지다’가 단어로 인정을 받으려면 명사 ‘개구’가 있어야 한다. 한데 ‘개구지다’의 어근 ‘개구’가 문장에서 단독으로 쓰이는 사례가 없다. 해서 방언이다.

 

그렇다면 ‘개구쟁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쟁이’는 명사 뒤에 붙어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을 가진 사람’의 의미를 더하는 말이다. ‘개구쟁이’는 ‘개구+쟁이’ 구조를 지닌 단어다. 그런데 ‘개구쟁이’는 표준어다. 기준이 아리송하다. ‘개구지다’와 ‘짓궂다’는 서로의 쓰임새가 조금 다르다. 또한 ‘개구지다’를 인정하지 않고는 ‘개구쟁이’의 어원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해서 ‘개구지다’를 방언으로 묶어두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일까.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는 ‘개구지다’가 ‘짓궂다’의 유의어란 설명과 함께 표제어로 올라 있다. 누리꾼들이 즐겨 쓰는 현실 언어를 적극 반영한 결과인 듯하다.

 

'개구쟁이'는 '짓궃게 장난질하는 아이'를 가리킨다. '까불이, 망나니, 심술꾸러기, 악동(惡童), 장난꾸러기' 들과 의미가 통한다. 이 말은 너무나 익숙하여 일찍부터 서울에서 쓰였을 것으로 생각되나 용례가 20세기 이후 문헌에나 나타나고 있어 실제 그러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개구쟁이는 <조선일보 1949년 1월 8일자> 기사에서 처음 확인된다. 1950년대 신문 기사에는 '개구장이'도 보여 한동안 '개구쟁이'와 '개구장이'가 함께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선말큰사전 1947>이나 <국어대사전 1961>과 같은 규모가 있는 사전에조차 '개구쟁이'나 '개구장이'는 올라 있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가 대단히 궁금해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성과가 없어 미숙한 실력만을 탓하고 있다. 

 

개구쟁이의 어원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공식적인 논의가 없다. 물론 인터넷 공간에는 '개그(gag)'에 접미사 '-쟁이'가 결합된 어형, '개구라장이'가 변한 말, '개(犬)와 구(狗)'가 결합된 '개구'에 접미사 '-쟁이'가 결합한 어형이라는 근거 없는 어원설이 있기도 하다.

 

개구쟁이에 대한 공식적인 어원론은 <고려대한국어대사전 2009>에 처음 보인다. 여기서는 개구쟁이를 개구와 쟁이로 구분하고 개구를 불완전 어근으로 '-쟁이'를 접미사로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개구쟁이를 그렇게 분석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개구쟁이는 형용사 '개긏다'의 어간 '개긏-'에 접미사 '-앙이'가 결합된 개구장이에서 변한 말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전에서는 개긏다를 짓긏다(장난스럽게 남을 괴롭고 귀찮게 하여 달갑지 아니하다)에 대한 경북 방언으로 소개하고 있다. 짓긏다가 명사 짓에 접미사 -긋다가 결합되 어형이기에 '개긏다'는 명사(또는 어근) 개에 접미사 -긏다가 결합된 어형으로 볼 수도 있으나 개의 정체는 분명하지 않다. 사전에 따라서는 개긏다를 게긏다(경상방언), 게긏다(북한어)로 제시하고 있어 더욱 '개'의 정체가 모호해진다. 접미사 '-긏다'는 '심술긏다, 앙살긏다, 왁살긏다, 험긏다' 등에 보이는 것과 같이 일부 명사 나 어근 뒤에 붙어 '그러한 상태가 심함'의 뜻을 덯다. 이는 형용사 '긏다(험하고 거칠다)'에서 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접미사 '-앙이'는 '고양이(괴+ 앙이), 꼬맹이(꼬마+앙이)' 등에 보이는 '-앙이'와 같이 작은 대상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개구장이'는 짓궃은 장난을 하는 작은 아이라는 뜻이다. '개구장이'의 ㅣ모음 역행동화 형태가 개구쟁이다. 개구장이가 경북 방언 개긏다에서 파생된 명사라면 개구장이 또한 경북 방언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긏다에서 파생된 개구지다가 제법 비교적 널리 쓰이고 있어 개긏다 역시 한때 그러했다고 본다면, 개구장이각 본래부터 경북방언이었다고 못 박을 수는 없다. 다만 앞에서 설명했듯이 <조선말큰사전 1947>, <국어대사전 1961>과 같이 당시를 대표하는 사전에 '개구장이'나 '개구쟁이'가 실려 있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진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