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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관계 vs 관련_쓰임새

by 61녹산 2024.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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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와 여우

 

 

 

"안녕"

 

여우가 말했다.

 

"안녕"

 

어린 왕자가 공손히 대답하고 둘러보았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 여기 있어. 사과나무 아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넌 누구니? 참 예쁘구나."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여우야."

 

"이리 와서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쓸쓸하단다."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길이 안 들었으니까."

 

"그래? 미안해."

 

조금 생각하다가 어린 왕자가 덧붙였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이니?"

 

"넌 여기 사는 아이가 아니구나. 무얼 찾고 있니?"

 

"사람들을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이야?"

 

"사람들은 총으로 사냥을 해. 대단히 귀찮은 노릇이지. 하지만 사람들은 닭을 기르기도 해. 사람이란 그저 한 가지밖에 쓸모가 없다니까. 너도 닭이 필요하니?"

 

"아니, 난 친구를 찾고 있어. 도대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이야?"

 

"모두들 잊고 있는 건데,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란다."

 

"관계를 맺는다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관계(關係)'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설명했다. '서로 상대에게 길들여지는 것'이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그렇다. 관계는 서로 상대를 제약하고 상대에게 제약당하는 것이다.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둘 이상의 서로 걸리고 이어져 있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사물이나 사건이 다른 사물이나 사건에 걸리는 경우에 두 사건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관계의 의미가 추상적인 만큼 그 쓰임새도 다양하다. 남녀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것도 관계의 다양성과 관련이 있다. 

 

관계는 주로 있다. 없다, 깊다 등의 형용사를 서술어로 사용한다. 

 

"우리와 관계가 있는 사람만 초청한다."

"우리는 그들과 관계가 깊다"

 

라고 말한다.

 

"그 일과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관여하려 한다." 

 

에서 관계도 없는은 그 일을 직접 하거나 자기의 이해가 걸려 있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관계가 나쁘다 또는 관계가 좋다 같은 표현도 있다. 

 

"최근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무척 나빠졌다."

 

처럼 쓰인다. 두 당사자가 제시되는 표현으로 남녀 관계, 노사 관계, 언론과 정부의 관계,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같은 것이 있다.

 

관계가 목적어로 쓰일 대에는 이루다, 정립하다, 맺다, 가지다, 유지하다, 끊다, 깨다, 정상화하다, 청산하다 같은 서술어를 사용한다. 어느 경우나 다 당사자 사이에 서로 걸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한국과 미국은 기왕의 우호 관계를 정상화하기도 합의했다."

 

처럼 쓰인다.

 

 

관계와 관련은 의미상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용법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이것은 우리 생사와 관계된 일이다."

"이것은 우리 생사와 관련된 일이다."

 

위 예문의 의미 차이는 없다. 그러나 

 

"사건을 조사하기 위하여 관련자를 찾아보았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하여 관계자를 찾아보았다."

 

위 예문은 분명한 의미 차이가 존재한다. 전자는 사건을 일으킨 사람, 사건을 보았거나 들었던 사람,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찾아보았다는 말이고 후자는 사건을 수사했거나 사건을 보도했던 사람까지 포함한다. 이는 관련자가 객관적으로 보는 사람까지 포괄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관계 장관 회의는 있을 수 있지만, 관련 장관 회의는 있을 수 없다. 

 

관계는 단순히 어떤 문제와 연관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쓰인다. 인권 관계 세미나, 동맹 관계 협약, 재정 관계 회의, 교육 관계 토론, 무역 관계 법령, 사업 관계 여행 등이 그 예이다.

 

"그들은 성관계를 맺었다."

 

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표현이고

 

"그 일은 나와 관계없다."

 

에서 쓰인 관계도 어떤 문제와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사업 관계로 자주 출장을 간다."

 

에서 사업 관계로는 사업이 걸린 일 때문에의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우리는 관계로라는 표현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관계로는 앞에서 예시한 바와 같이 사업 관계로 처럼 사업이 관련되어 또는 사업이 걸려서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오늘 비행기는 기상 관계로 연착될 것 같다."

 

라고 하면 기상 관계라는 것이 모호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기상 관계를 쓰려면 기상 관계 회의나 기상 관계 발표처럼 기상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경우에 쓰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상이 불순하여 비행기가 연착하는 것을 기상 관계로 연착한다고 하는 것은 관계라는 단어를 너무 단순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시간 관계상 다른 내빈들의 인사말은 2부 행사에서 듣겠습니다." 라는 사회자의 말은 우리 귀에 매우 익은 표현이다. 그러나 시간 관계상이라는표현은 매우 모호하다. 시간이 무엇과 관계가 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부족하면 시간이 부족하므로라고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행사를 준비하던 사람들은 가끔 

 

"우천 관계로 행사가 취소되었습니다."

 

라는 안내를 한다. 여기서도 우천 관계로 라는 표현이 요령이 없는 표현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떤 이는 '비가 오는 관계로' 또는 '길이 많이 막힌 관계로'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운신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3, 4일 이곳에 두었다가 산청으로 데리고 갈 참이다."

"워낙 후퇴가 빨랐던 때문에 경찰 측의 사상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위 두 예문의 문장에서 느끼는 맛의 차이를 알았으면 싶다.

 

단순한 이유를 나타내고 싶으면 관계를 쓰지 말고 평범하게 "무엇 때문에" 또는 "무슨 일로, -므로, -니, -어서"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이 훨씬 품격있다. 비가 와서, 비가 오니, 비 때문에, 교통이 복잡하여, 기상 악화 때문에, 비바람이 치므로, 같은 다양한 형태를 사용하는 것이 우리말다운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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