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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가능성 vs 개연성 vs 확률 vs 공산_쓰임새

by 61녹산 202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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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

 

 

 

가능성이란 참으로 멋지면서도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말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곧 희망을 뜻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서면 없던 힘도 솟구쳐 우리는 계획을 과감하게 밀고 나갈 수 있게 된다. 가능한 성질 또는 가능한 특성이 사람이나 일이나 상황의 내부에 들어 있다면 그것은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젊은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면 안된다. 한국은 큰 가능성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많은 동남아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처럼 멋진 낱말이 타락하여 아무렇게나 쓰이는 현실은 무척이나 안타깝다. 

 

"체중이 갑자기 줄면 췌장암에 걸렸을 가능성을 검사해야 한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행기가 결항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말에서는 우리를 한껏 부풀게 했던 그 가능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걱정과 불안을 가져다주는 낯선 '가능성'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이 낯선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경기 회복에 결정적인 장애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

"실점의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규제가 완화 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2위는 요르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북 미 양자 협의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암이 아닌 다른 병일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다."

"상원 인준이 부결될 가능성은 없다."

"명의를 위장할 가능성이 있다."

테러 가능성은 희박하다."

'집중 호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세계 경제에 기여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외국인이 주식을 매입하는 것은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대법관 후임도 보수 성향일 가능성이 높다."

 

위에서 쓰인 모든 가능성은 무엇이 가능한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고 단순히 그렇게 될 개연성(蓋然性)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내일 비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비가 내릴 것 같다고 생각하면 

 

"내일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걸 가능성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그건 단순히 개연성(개를 길게 소리 냄)의 문제가 아닐까? 개연성이란 그럴 것으로 믿을 만한 성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개연성이 있다/없다, "운전자의 부주의로 사고가 났을 개연성이 크다"처럼 사용한다. 개연성은 주로 논리학에서 쓰는 말인데, 수학 용어로 '확률(確率)'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리고 일반인 들이 쓴느 공산(公算)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렇게 보면 낯선 가능성은 대체로 '개연성, 확률, 공산'으로 쓰는 편이 오히려 정확해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개연성, 확률, 공산을 대표하는 낱말로 워낙 폭넓게 쓰이고 있으므로 이를 꼬집는 것이 새삼스러운 부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리고 만다. 다만 최소한 사정을 알고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가능성을 쓰더라도 '가능성이 높다/낮다'는 삼가야 할 표현이다. 가능성 곧 가능한 특성은 높다/낮다 같은 형용사와 어울리기 곤란하고, 있다/없다, 크다/작다와 어울리는 것이 자연스럽고 논리적이다. 가능성, 개연성, 확률, 공산은 수량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개념이므로 있다/없다와 크다/작다와 가장 잘 어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많다/적다를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높다/낮다는 도수(度數)와 관련되는 것이므로 가능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남들이 많이 쓰는 말을 되도록 안 쓰려고 하는 심리일까? 판에 박은 것 같은 말, 빤한 소리, 소위 클리셰를 피하고자 하는 심리로 이해한다. 그러나 말과 글에는 적재적소(適材適所)의 판단이 꼭 필요하다. 사전의 도움 없이 새로운 단어를 시도하는 모험은 하지 않는 게 안전한 이유다.

 

 

 

개연성

 

 


최근 느닷없이 유행하고 있는 ‘개연성’이란 단어 때문에 나온 사족(蛇足)같은 얘기다. 사족은 ‘뱀 다리’다. 없어야 할 뱀의 다리를 그려 넣는 바람에 그림이 엉망이 됐다는 고사(故事)는 사실일 수도 있겠고, 개연성도 있다. ‘개연성’은 그럴 때, 그렇게 쓰는 말이다.

"석촌호수 수위 저하와 이로 인한 싱크홀 우려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관계) 전문가 자문회의 결과 보고서'가 7일 공개됐다"

 

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기사를 보았다. 제목은 ‘석촌호수 수위가 낮아지는 것과 제2롯데월드 공사 사이에는 개연성이 인정된다.’이다. ‘석촌호수 수위↓ 제2롯데월드와 개연성 인정’이란 문구도 함께 올랐다. ‘수위저하’와 ‘롯데공사’ 사이가 ‘인과(因果)관계일 가능성’을 말하는 것일까? 공사(원인)가 문제가 되어 수위(水位)가 낮아진 것(결과) 아니냐는, 두 요인이 서로 관계있다는 뜻을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했다. 말하자면 ‘개연성=관계’가 됐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다.

이 글을 쓴 이의 생각과는 달리 ‘개연성’이란 말은 ‘관계’ 또는 ‘관련’의 뜻이 아니다. 개연성은 원래 서양의 논리학이나 철학의 ‘필연성’의 짝이 되는 개념으로 근대 일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만든 번역어로 짐작되는 말이다. 그 후 문학의 이론에서도 쓰이게 되면서, 간혹 식자(識者)들의 일상 대화에서도 오르내리게 된 것 같다.

필연성(必然性 necessity)은 어떤 것이 ‘그 이외(以外)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짝인 개연성(蓋然性 probability)은 단정할 수는 없으나 대개 그러리라고 생각되는 성질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간단한 말로 ‘그럴듯함’ ‘그러리라 생각됨’ ‘있음직함’ 정도로 풀어도 될 듯하다. 다시 보자, ‘관계’가 ‘그럴듯함’과 같은 말인지.

‘개연성’을 그런 식(뜻)으로 잘 못 쓰는 경우가, 언론에서까지, 최근 부쩍 늘고 있다. ‘관계가 있다’는 뜻을 ‘개연성이 있다’라고 쓰고는 ‘내 이 기발한 어휘력 어때?’하며 읽는 이들의 감탄을 기대하는 것일까? 또 연예인들이 주로 출연해 입담과 재주를 겨루는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의외로 쉬운 말이다. ‘그 드라마는 개연성이 있어’하는 용례(用例)가 적절하다. ‘그럴싸하다’는 일상의 언어가 바로 그 말이다. ‘있어 보이는 말’ 유행 증후군일까? 왜 멀리 있던 한자어는 끄집어내서, 그나마 잘못된 용도로 퍼뜨리고 있는지. 누가?

또 하나, 개연성을 ‘가능성(可能性)’과 똑같은 단어로 쓰는 요즘의 경향에 관해서도 적절한 궁리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이 또한 개연성 단어의 유행과 함께 관찰되는 현상이다. 가능성은 ‘앞으로 실현될 수 있는 성질’이다. 개연성 가능성 필연성의 관계를 살피자는 얘기다.

이런 지적(指摘)에 불편함을 느낄 이들이 없지는 않겠다. 그러나 (영향력 가진) 일부의 잘못이 우리의 언어생활을 망가뜨리는 것은 막아야 한다. 자연스런 변화와 오류(誤謬)에 의한 오염은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 토/막/새/김 >
‘개연(蓋然)’의 한자를 톺아보자. 개(蓋)는 풀을 엮어 만든 덮개다. 해 가리개[양산(陽傘)]이기도 하다. 오픈카(카브리올레 또는 컨버터블)라고 부르는, 지붕 열고 다니는 무개차(無蓋車)의 ‘개’다. 덮고 가린다는 뜻이 ‘대개(大槪)’의 뜻으로 늘어났다. 뜻 늘여 쓰는 한자의 용법 ‘인신’이다. 당기고[인(引)] 편다[신(伸)]는 말이다. 그럴 연(然)과 함께 ‘대개 그러려니’하는 뜻이 됐다. 말의 뜻은 그렇게 늘어나고 변하는 것이다. 이유나 논리가 꼭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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