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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개울, 시내, 내, 강_쓰임새

by 61녹산 2024.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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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

 

 

 

 

"다리 밑으로 시내가 굽이쳐 흐른다."

"개울에서 멱을 감는다."

"내는 건너보아야 안다."

 

소설이나 동화 속에서 위와 같은 표현이 제법 자주 등장한다. 우리는 시내, 개울, 내에 대한 확실한 형상화보다는 막연히 물이 흐르는 느낌만으로 이 낱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다. 시내, 개울, 내 가운데 어떤 것을 어떤 자연 환경에서 사용해야 하는지, 아니면 아무 때나 서로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는지 하는 쓰임에 궁금하다. 

 

비가 내리면 자연스럽게 물의 흐름이 만들어지는데 이에 따라서 개울물이 생기고, 개울과 개울이 합해져서 시내가 형성된다. 대체로 이들은 산에서 만들어지겠지만 때로는 평지에서도 만들어지기도 한다. 산에 내린 빗물이 흘러서 사람들이 발을 적실 수도 있고, 여기저기에 생긴 소(沼)에서 멱을 감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개울이라고 이름 붙인다. 개울은 여기저기 놓인 돌을 징검돌 삼아서 건널 수 있다. 물론 징검다리를 놓거나 외나무다리를 놓아 건너기도 한다. 산골짜기에는 출렁다리를 놓기도 하지만.

 

개울이 여기저기서 흘러내려 합류하면 시내가 된다. 시내는 물의 양이 많아서 흐름이 빠르고 폭도 넓기 때문에 징검다리를 제대로 놓지 않으면 안 된다. 물이 깊은 곳에는 다리를 놓아야 건널 수 있다. 시내 주위에는 소규모 마을이 자연스럽게 발달되어 있다. 물의 양이 여러 사람들이 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내에 배가 뜨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배가 뜰 정도로 물이 깊거나 넓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시내고 어디까지가 개울인지 정확하게 양분해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웬만큼 가물더라도 시내에 물이 마르는 경우는 없다고 본다면 시내와 개울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폭이 좁고 깊게 흐르는 시내를 돌이라고 하고, 넓고 얕게 흐르는 시내를 여울이라고 한다. 소설이나 시에 등장하는 여울은 바로 시내에 형성되는 것이 가장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내에는 물고기도 살기 때문에 여울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도 자주 볼 수 있다. 

 

 

 

 

 

 

내는 많은 시내가 합해진 것으로서 대체로 물의 흐름이 급박하지 않고 잔잔히 흐른다. 그래서 소형 배를 띄워 하류로 내려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내를 건너는 데는 배를 이용하기가 어렵다. 폭이 그리 넓지 않기 때문이다. 징검다리를 놓을 수도 있겠지만 항구적인 다리를 놓으려면 돌다리를 놓아야 한다. 내는 언저리의 높이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여름에 시위가 지는 경우가 많다. 내는 대체로 농경지를 휘감고 흐르므로 농사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내를 중심으로 마을도 생긴다. 수리 시설은 냇물을 농경지에 끌어들이는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지명에 천(川)이란 이름이 붙은 물은 모두 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시내 수준의 규모에 지나지 않지만 천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제법 많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시내를 가리키는 말로는 계(溪)를 써야 할 것인데, 계는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경우에만 붙이고, 일단 평지에서 흐르면 대체로 천(川)을 붙인다. 

 

 

 

한강

 

 

 

내의 규모가 커지면 강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우리말에 가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가람이 바로 큰 내를 가리키는 말이다. 강은 쉽게 건널 수 없기 때문에 강을 사이에 두고 두 지역의 문화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강 건너 불구경"

 

이라는 속담도 쉽게 건널 수 없는 강의 속성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강은 배를 이용한 교통로로 이용되어 산업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기도 한다. 강 가운데에도 규모가 큰 것이 있고 내와 별 차이가 없는 것도 있다. 강 가운데 규모가 큰 것을 한강(한가람)이라고 한다. 서울의 한강은 큰 강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바뀐 경우의 대표격이다. 

 

 

도랑 > 개울 > 시내 > 가람 > 바다

 

 

 

물은 햇빛, 공기와 함께 모든 목숨에게 가장 뺄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나 물을 찾아 삶의 터전을 잡았다. 그러면서 그런 물에다 갖가지 이름을 붙였는데, 여기서는 먹거나 쓰려고 모아 두는 물이 아니라 흘러서 제 나름으로 돌고 돌아 갈 길을 가는 물에 붙인 이름을 살펴보자. 

 

물은 바다에 모여서 땅덩이를 지키며 온갖 목숨을 키워 뭍으로 보내 준다. 이런 물은 김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가 비가 되어 땅 위로 내려와서는 다시 돌고 돌아서 바다로 모인다. 그렇게 쉬지 않고 모습을 바꾸고 자리를 옮기며 갖가지 목숨을 살리느라 돌고 돌아 움직이는 사이, 날씨가 추워지면 움직이지도 못하는 얼음이 되기도 한다. 그처럼 김에서 물로, 물에서 얼음으로 탈바꿈하며 돌고 도는 길에다 우리는 여러 이름을 붙여 나누어 놓았다.  

 

김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던 물이 방울이 되어 땅 위로 내려오는 것을 라 한다. 그리고 가파른 뫼에 내린 비가 골짜기로 모여 내려오면 그것을 도랑이라 한다. 도랑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사람의 집 곁으로 흐르기 십상이기에, 사람들은 힘을 기울여 도랑을 손질하고 가다듬는다. 그래서 그것이 물 스스로 만든 길임을 잊거나 모를 지경이 되기도 한다 

 

도랑이 흘러서 저들끼리 여럿이 모여 부쩍 자라면 그것을 개울이라 부른다. 개울은 제법 물줄기 모습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거기에서 걸레 같은 자잘한 빨래를 하기도 한다. 개울이 부지런히 흘러 여럿이 함께 모이면 개천에서 용 났다!” 하는 개천이 된다. 그러나 개울은 한 걸음에 바로 개천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개천 곧 실처럼 가는 개천이 되었다가 거기서 몸을 키워서야 되는 것이다.  

 

개천은 빨래터뿐만 아니라 여름철에는 아이들이 멱 감는 놀이터도 되어 주면서 늠름하게 흘러 가 된다. <용비어천가>에서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그치지 않으므로 가 되어 바다에 이르느니…….” 하는 바로 그 . 그러나 내 또한 개천이 한 걸음으로 바로 건너갈 수는 없기 때문에, ‘시내 곧 실같이 가는 내가 되었다가 거기서 몸을 더 키워야 되는 것이다.  

 

시내와 내에 이르면 이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들판으로 나와, 비가 내리지 않는 겨울철이라도 물이 마르지 않을 만큼 커진다. 그리고 다시 더 흘러서 다른 고을과 고장을 거쳐서 모여든 여러 벗들과 오랜만에 다시 만나면 가람을 이룬다. 가람은 크고 작은 배들도 떠다니며 사람과 문물을 실어 나르기도 하면서 마침내 바다로 들어간다. 

 

이렇게 비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물이 흘러가는 길에 붙이는 이름을 살펴보았다. 도랑에서 개울, 개울에서 실개천, 실개천에서 개천, 개천에서 시내, 시내에서 내, 내에서 가람, 가람에서 바다에 이르는 이들 이름이 요즘에는 거의 사라져 가는 듯하여 안타깝다.  

 

그것들이 아마도 한자말 ()’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람은 잡아먹힌 지가 이미 오래되었고, 내와 시내, 개천과 실개천까지도 거의 강이 잡아먹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도랑과 개울만이 간신히 살아 있는 것이라면 참으로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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