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림처럼 그려서 무엇인지 알게 하는 방법이 있고, 아예 이름이나 설명을 적어서 드러내느 방법이 있으며, 그냥 말이나 표정으로 드러내는 방법도 있다.
공원을 거닐다 보면 전화를 걸 수 있는 곳이나 화장실이 있는 곳을 그림으로 표시하여 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우리는 표지라고 한다. 여기에 들어갈 수 없음을 나타내는 표지, 자동차 전용도로임을 나타내는 표지, 최고 속도가 90킬로미터임을 나타내는 표지,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은 왼쪽으로 나가야 한다는 표지 등 일정한 정보를 그림이나 글씨로 나타내어 보이는 것을 표지라고 하고, 표지를 그려 놓거나 적어 놓은 판을 표지판이라고 한다. 밤에 항공기가 다닐 때에는 빨간 불을 깜박인다. 항공기가 날아가고 있음을 알리기 위한 등이다. 이런 등을 표지등이라고 한다.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서 설치하는 표시는 모두 표지에 해당한다. 어떤 사람들은 표지를 '표식'이라고 잘못 읽는데 이는 '識'의 한자음을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이다.
표시는 알아볼 수 있는 표를 해서 보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누구의 집임을 나타내 보이거나(이름 표시), 실내에 있음을 나타내 보이거나(안에 있음 표시), 가격을 써 붙이거나(가격 표시), 경계임을 나타내 보이거나(경계 표시), 원산지를 나타내 보이거나(원산지 표시), 품질이 좋음을 나타내 보이는(품질 표시) 등 여러 표시가 있다. 표시의 특징은 그것이 무엇이고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도록 표(標)를 달아 놓는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표시는 표현하여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 싫다고 말하는 것(의사 표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애정 표시), 미안하다는 뜻(유감 표시), 슬픔을 안타깝게 여긴다는 뜻(조의 표시), 화를 내는 것(불만 표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양해 표시) 등이 모두 자기의 의사를 표시하는 방법이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표시(標示)와 표시(表示)는 음이 같고 글자도 같으나 다만 한자로 적을 때에만 다르기 때문에 일반이 구별해서 쓰기 어려운 점이 분명히 있다. 따라서 표시하다엔느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아예 처음부터 생각해 놓으면 좋을 것 같다. 표(標)를 해서 나타내는 방법과 표는 하지 않지만 말이나 얼굴 또는 몸짓 등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표(標)'란 증거가 될 만한 또는 두드러진 특징이 될 만한 그림이나 글씨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상징적인 그림이나 글씨로 나타내지 않은 것은 표(標)가 아니다. 단순히 말이나 표정으로 나타내는 것은 '표(表)'의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프는 막대나 금으로 그리는데 이런 것을 그림표(表)라고 한다. 그림표는 전체의 내용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그린 것이므로 상징적인 그림이나 글씨로 된 표(標)와는 사뭇 다르다. 아래 세 문장을 읽으면서 표시(表示)와 표시(標示), 표지[標識]의 의미를 잘 구별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친근감을 표시(表示) 했다.
우리는 한국인 표시(標示)를 하고 다녔다.
등댓불은 안전 항해를 돕는 귀중한 표지등(標識燈)이다.
한편, 여기서 한 걸음만 더 깊이 내디뎌보고자 한다. 한자 가운데는 뜻에 따라 음이 달라지는 것들이 제법 있다. ‘일체’와 ‘일절’ 같은 경우다. ‘일체’와 ‘일절’은 같은 한자(一切)를 쓴다. 그렇지만 문장에서 ‘모두’라는 뜻이면 ‘일체’가, ‘전혀, 절대로’란 뜻이면 ‘일절’이 된다. 쉽게 구별하기 위해서는 일체는 긍정의 의미에서 일절은 부정의 의미 상황에서 사용된다.
한자 ‘식(識)’도 이에 해당한다. 이것이 ‘알다, 깨닫다’의 뜻이면 ‘식’으로 발음하고 ‘표시하다’나 ‘적다’란 뜻이면 ‘지’로 발음한다. ‘지식’(知識)이나 ‘식별’(識別), ‘식자우환’(識字憂患) 같은 단어들에서는 아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모두 ‘식’으로 읽는다.
그렇다면 ‘標識’는 ‘표식’과 ‘표지’ 중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정답은 ‘표지’이다. ‘표지’는 ‘표시나 특징으로 어떤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하게 함. 또는 그 표시나 특징’이란 뜻이다. 즉 ‘표를 안다’는 뜻이 아니라 ‘표를 해 놓은 것’ 또는 ‘표로 표시한 것’이란 의미이므로 ‘표식’이 아니라 ‘표지’로 읽어야 한다.
‘도로표지’, ‘교통표지’, ‘표지등’, ‘안내표지’ 따위로 쓰인다.
한편 ‘표지’와 비슷한 말로 ‘표시’가 있는데 두 말의 차이를 헷갈려 하는 이들도 많다. ‘표시’(標示)는 ‘(어떤 사실이나 내용을) 문자나 기호, 도형 등으로 나타내는 것’을 뜻한다. 가령
“밑줄을 그어 표시를 해 뒀다”
라고 할 때 그 행위는 ‘표시’를 하는 것이고 밑줄 자체는 ‘표지’가 된다. 즉 표시해 둔 마크가 곧 표지인 셈이다.
위험물에 관해 안내하는 방법을 알리는 글을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위험물에는 반드시 위험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 (㉠표지/㉡표시)가 부착돼 있어야 하며 (㉠표지/㉡표시) 상단에는 관리자가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있음을 알리는 (㉠표지/㉡표시)를 해야 한다."
알쏭달쏭 헷갈리는 표지(標識)와 표시(標示). 어떻게 구분해 써야 할까? '표지'는 '표시나 특징으로 어떤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하게 함. 또는 그 표시나 특징'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다른 대상과 구별해 어떤 대상을 확정하고, 그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표상적(表象的) 또는 개념적 특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표시'는 '표를 하여 외부에 드러내 보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명사이긴 하지만 동사적 성격이 강한 단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표지'는 '통행 금지 표지' '공중전화 표지' '화장실 표지'에서와 같이 '표지판'과 같은 사물을 주로 의미한다. '표시'는 '가격 표시' '원산지 표시' '경계 표시'처럼 '표시하다'는 동작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위험물에는 반드시 위험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 ㉠표지가 부착돼 있어야 하며 ㉠표지 상단에는 관리자가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있음을 알리는 ㉡표시를 해야 한다"
와 같이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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