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를 벌리다와 장사를 벌이다 중 어는 게 맞습니까?"
"......"
"한국 역사의 '체제'가 붕괴됐다고도 하고, '체계'가 붕괴됐다고도 하는데 어느 것이 바른 표현인가요?"
"......"
"국정홍보처에서 얼마 전 전광판 광고를 통해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홍보했지요? 홍보처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야후 코리아>에서도 '우리말 바로 쓰기'란 특집기사를 다뤘지요?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 발행하는 잡지부터 바로 써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2004년 국정감사에서 모의원이 당시 국정홍보처 홍보자료에 한글 표현 오류가 심각하다고 지적하면서 국정홍보처장을 상대로 한 질의다.
해마다 국정감사 때면 국어의 잘못된 사용실태를 질타하는 의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2006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해 9월에는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M의원이 당시 10월 개관을 앞둔 중앙박물관의 전시물 설명문에 오탈자가 200여 곳이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런가 하면 2003년에는 <표준국어대사전>의 오류가 세상에 공개되기도 했다. 정부에서 120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서 50여 만 단어를 수록, 지금까지 나온 사전을 집대성한다는 목표로 만든 것인 만큼 파장도 무척 컸다. 그리고 2002년에는 중학교 국정 국어교과서 표기, 표현에 오류가 많다는 사실이 국감에서 드러났다. 이는 그만큼 우리말에 대한 인식이 커졌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정치권에서 국감자료로 다룰 만큼 우리말 오류가 심각하다는 뜻도 포함된다.
'벌리다'는 '둘 사이를 떼어서 넓히다'로 쓰이고, '벌이다'는 '일을 베풀어 놓다'란 뜻이다. 따라서 '장사를 벌이다'가 맞는 말이다. '체계'는 '통일된 전체'란 의미이고, '체제'는 '제도나 조직의 양상'이란 뜻으로 구별되므로 '한국 역사의 체계'라고 해야 할 곳이다. 우리말에서 글자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는 말이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특히, "수천 마리 철새 떼가 일시에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라...."라고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푸드득'은 새의 날갯짓 소리가 아니라 사람이 볼일을 볼 때, 특히 되직하지 않고 액체를 많이 머금은 물질이 터져 나올 때 나는 소리다. 새가 날아 오를 때는 '푸드덕' 소리가 난다. 그러니 만일 새가 머리 위에서 '푸드득' 했다면 매우 난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워낙 많아서 일일이 외우기는 힘들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게 국어사전을 항상 옆에 두고 찾아보는 습관을 들이는 일이다. 역시 언어는 반복만이 최고의 답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정작 놓칠 수 없는 것은 앞서 나온 2004년 Y의원의 보도자료다. 엄숙하게 한글 오류를 지적하는 보도자료문 제목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다. 그 제목은 <한글 홍보할려면 '장사를 벌리다', '장사를 벌이다' 정도는 구분해야>였는 데 이때 '홍보를 할려면'은 '홍보하려면'이라고 해야 바른 표기가 된다.
어떤 사물의 구석진 곳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귀퉁이’와 ‘모퉁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두 표현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구별해서 사용해야 할 단어들입니다.
먼저 ‘귀퉁이’라는 말은 사물이나 마음의 한구석이나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가슴 한 귀퉁이에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왔다.’와 같이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뜻으로는 ‘물건의 모퉁이나 삐죽 나온 부분’으로 ‘책의 네 귀퉁이가 다 닳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요.
앞서 말씀드린 예문에서 ‘귀퉁이’라는 말을 ‘모퉁이’로 바꿔 보면, ‘가슴 한 모퉁이에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왔다.’가 되는데, 왠지 어색하게 들립니다.
그 이유는 ‘모퉁이’라는 말은 길이 각이 지게 꺾이거나 구부러진 곳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모퉁이’는 어떤 장소의 가장자리나 구석진 곳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라면 ‘방 한 모퉁이’ 같은 표현은 쓸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모퉁이를 돌다’는 가능하지만 ‘귀퉁이’는 길에 대해서는 쓰이지 않기 때문에 ‘귀퉁이를 돌다’ 같은 표현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축사를 가름합니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흔히 듣곤 한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이나 올바른 표기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위에 인용된 표기도 잘못된 것이다.
“이것으로 축사를 갈음합니다.”라고 써야 바른 표기이다.
소리가 서로 비슷할 뿐만 아니라 사용되는 자리도 비슷하여 혼동되는 것 중에 ‘가름’,‘갈음’,‘가늠’ 등이 있다.
먼저, ‘가름’은 ‘가르다’의 어간에 명사형 어미 ‘-ㅁ’이 붙은 형태이다. 즉 ‘가르+ㅁ’으로 분석된다.‘가르다’는 ‘분류하다, 나누다, 따로따로 구별되게 하다’의 뜻을 나타내는 동사(움직씨)이다. 그 뒤에 ‘-ㅁ’이 붙어서 ‘가름’이라는 명사(이름씨)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름’은 곧 ‘분류, 구별’의 뜻을 나타낸다.
예문을 들어보면 ‘너의 생각만으로 잘잘못을 가름은 옳지 않다.’라거나 ‘어떤 사물을 가름하는 데에는 일정한 기준이 필요합니다.’라고 할 수 있다.
‘가름’과 자주 혼동이 되는 ‘갈음’은 ‘갈다(대체)’의 어간에 명사형 어미 ‘-음’이 연결된 형태로 ‘갈+음’으로 분석된다. 이 때의 ‘갈다’는 ‘바꾸다, 대신하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형광등을 갈아 끼웠다.’ 혹은, ‘사람들이 봄옷으로 갈아 입었다.’라고 할 때의 ‘갈아’가 그런 뜻으로 쓰인 보기이다. 그러므로 ‘갈음’은 ‘바꿈, 대체, 대신’의 뜻을 나타내는 명사이다.
그러나 ‘갈음옷’ 등에 쓰이는 이 ‘갈음’이라는 낱말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흔히 접하는 것은 ‘갈음’ 뒤에 ‘-하다’가 결합된 꼴, 말하자면 ‘갈음하다’라는 동사이다. 이 말의 뜻은 ‘대신하다, 바꾸다, 대체하다’이다. 가령, 앞에 인용한 ‘이것으로 축사에 갈음합니다.’에 쓰이는 ‘갈음’이 바로 이것이다. 또한, ‘이번에 침대를 새것으로 갈음했어요.’, ‘케익이 없으면 떡으로 갈음하지요.’라고 쓰기도 한다.
‘가르+ㅁ’,‘갈+음’ 처럼 뚜렷이 분석되지는 않으나 그 소리가 비슷한 ‘가늠’은 ‘목표에 맞고 안 맞음을 헤아리는 표준’이라는 뜻을 가진다. 총기에 붙어 있는 ‘가늠쇠, 가늠자’ 등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가늠’의 경우에도 그 뒤에 ‘-하다’가 붙으면 새로운 낱말 ‘가늠하다’가 된다. ‘안개가 끼어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어요.’, ‘그 무게를 가늠해 보아라.’라고 사용되기도 한다.
‘가름’, ‘갈음’,‘가늠’은 그 소리가 비슷할 뿐만 아니라 그 뒤에 ‘-하다’가 붙어 새말을 생성시키는 것까지 비슷하다. 하지만 그 어원과 의미가 다른 낱말이므로 잘 구별해서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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