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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점잖다의 어원자료 : 의젓하다

by 61녹산 2023.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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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다

 

어떠한 사람을 '점잖다'고 하는 것일까? 국어사전에서는 '점잖다'를 '언행이 묵중하고 야하지 아니하다, 품격이 속되지 아니하고 고상하다(『표준국어대사전』), '몸가짐이 가볍거나 까불지 않고 례절있게 듬직하고 의젓하다(북한의『조선말대사전』)로 각각 풀이하고 있는데, 이들 풀이말 중에 그 의미로 보아 가장 가까운 단어는 '듬직하고 의젓하다'가 아닌가 한다. 왜 그런 사람을 점잖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 의문은 '점잖다'의 어원을 이해하면 쉽게 풀릴 것이다.


'귀찮다'가 '귀치 않다(아니하다)'에서 온 말인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점잖다'가 '점지 아니하다'가 줄어든 말임을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그런데 '점지 아니하다'의 '점다'가 무엇일까? '점다'는 '젊다'로 변화한 것인데, '젊다'로 되기 이전에는 '졈다'였었다.

 

"녜 졈던 사람도 오라면 늙나니 人生애 免할리 업스니잇다" <석보상절(1447년)>

 

이 '졈다'가 '졂다'로 변화한 시기는 16세기인데, 이때에 '졂다'가 '젊다'로도 표기된다. 왜 '졈다'에 'ㄹ'이 삽입되어 '졂다'로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졈다'의 대립어 '늙다'의 'ㄺ'에서 유추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졀믈 쇼(少) <칠장사판천자문(1661년)>

졂다(少年) <한불자전(1880년)>

슌인니 나히 절멋더니 <이륜행실도(1518년)>

젊을 쇼(少) <신정천자문(1908년)>

 

그러니까 '점잖다'는 '졈디 아니하다'가 줄어든 말이고, 그 뜻은 '젊지 않다'인 것이다. 이러한 추정을 내린 것은 '졈디 아니하다'가 최초로 나타날 때에 '젊지 않다'가 아닌 '점잖다'의 의미를 가지고 나타난다는 사실 때문이다.

 

졈디 아니한 거시 엇디 가히 지만하리잇가 <속명의록언해(1778년)>

우리 친히 가 빌고져 하되 졈지 아닌 사람이 염치업애  <인어대방(1790년)>

 

이미 15세기에 '졈다'가 보이니까 그 부정형인 '졈디 아니하다'도 15세기에 쓰였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졈디 아니하다'가 오늘날처럼 '젊지 아니하다'의 뜻이 아닌 '점잖다'의 의미를 지니고 쓰인 관용어로서만 사용된 시기가 언제인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점잖다'를 '젊잖다'로 쓰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물론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어사전』에는 '젊잔타'와 '젊잔하다'가 올림말로 쓰이었지만), '졈디 아니하다'의 '졈다'는 '젊다'를 뜻하는 '졈다'와는 다른 변화 과정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졈다'가 '졂다' 또는 '젊다'로 변화하였어도 '졂다'는 오늘날의 '젊다'를 뜻하는 말이 되었지만, '졈디 아니하다'는 '점잖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미 관용구가 되어 '젊다'의 의미를 잃어버린 '졈디 아니하다'가 '졂디 아니하다'로 변화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졈지 아닌 사람이 졀믄 사람과 詰亂하여 무얻하올고'<인어대방(1790년)>

 

에서 보듯이 '졈지 아닌 사람'은 '점잖은 사람'을, '졀믄 사람'은 '젊은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인 것이다. 의외이지만, '졈디 아니하다'가 문헌상에 처음 나타나는 시기는 18세기이다. 그리고 '졈디 아니하다'가 '졈잖다'나 '점잖다'(표기상으로는 '졈잔타'나 '점잔타')로 축약되어 표기된 시기는 19세기 말이다.

 

졈잔타〔長者〕<한불자전(1880년)>

네 샤특하 교타 저러한 졈잔은 사람들이 <천로역정(1894년)>

 

이것이 오늘날 '점잖다'로 된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점잔타'로 표기되면서 이것을 '점잔하다'가 축약된 것으로 해석하여 '점잔하다' 등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졈잔하신 도련임이 이 거시 웬 이리요 <춘향전>

점잔하다〔儼偉〕<국한회어(1895년)>

 

이것이 오늘날 '점잖다'에서 '점잔'이 명사처럼 쓰이게 된 동기이다. 즉 '점잔 + 하다'로 분석되니, '점잔'을 명사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미 19세기의 대역사전에 '점잔'이 그 뜻은 오늘날과 약간 다르지만 올림말로 등재되어 있는 것이다.

 

점잔〔俊秀〕<국한회어(1895년)>

 

이것이 오늘날 '점잔을 빼다, 점잔을 피우다, 점잔을 부리다, 점잔스럽다, 점잔이' 등처럼 사용하게 된 동기인 것이다. 결국 '젊잖다'는 '졈디 아니하다 > 졈지 아니하다 > 졈지 않다 > 졈잖다 > 점잖다'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단어이다. 젊지 않은 사람은 '듬직하고 의젓한' 사람인 셈이다.

 

점잖다
점잖다

 

엄격한 유교적 가풍 속에서 자란 사람은 어려서부터 '점잖다'는 말을 수없이 들으면서 자라게 된다. 무의식중에 '점잖은 사람', 곧 '점잔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조금씩 갖게 된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요, 말의 힘이다. 점잖지도 못한 사람이 주변에서 점잖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저절로 점잖은 척이라고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린 시절 내가 그랬다. 주변에서 항상 점잖은 아이, 진중한 아이 등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본래의 진짜 나의 끼를 숨겨야만 했다. 그러다 한번에 탁 터져 버린 사건이 고등학교 1학년 축제에 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이고 참석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던 일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물론 이 작은 반란은 불과 하룻만에 진압이 되었지만 내 인생에서 그리 통쾌함을 느꼈던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점잖다'는 그렇게 일찍부터 쓰인 단어는 아니다. 구 구조에서 어휘화한 것이어서 역사가 그리 깊지 않다. 이 말은 19세기 말 문헌에서야 '점잖다'로 처음 보인다. '점잖다'는 '졈디 아니하다'라는 구에서 출발한다. 

 

"셜사 넉넉히 역절질할 꾀랄 하엿다 하고 졈디 아니한 거시 엇디 가히 지만하리잇가 뭇자오시대" <속명의록언해 1778>

 

에 보이는 '졈디 아니하다'가 바로 그것인데, 여기서 '졈디 아니하다'는 그 축약형인 '점잖다'와는 다른 의미를 띤다. 18세기의 '졈다'는 '유(幼 어리다)'의 뜻과 어울려 '장(壯 젊다)'의 뜻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 시기의 '졈디 아니하다'는 '어리지 않다' 또는 '젊지 않다'로 해석된다. 중세국어에서는 '졈다'가 '유(幼)'의 뜻만 갖고 있었으므로 이 시기의 '졈디 아니하다'는 '어리지 않다'의 의미를 띠었을 것이다. 

 

'졈디 아니하다'는 구개음화하여 '졈지 아니하다'<인어대방 1790>로 변한다. 

 

"가만가만히 웃깃을 바르고 몸을 바르고 눈과 얼굴에 아모조록 졈지 안이한 위엄을 보이려 한다." <이광수, 무정 1917>

 

에서 보듯 20세기 초의 '졈디 아니하다'는 지금의 '점잖다'와 같은 의미를 본격적으로 갖고 있다. '어리지 않다'나 '젊지 않다'에서 '의젓하다'는 의미로 변한 것이다. 

 

'졈지 아니하다'에서 어휘화한 '점잖다'도 

 

"간악한 백셩아 네 샤특한 교랄 저러한 점잔은 사람들이 증참하난 거살 듯나냐 듯지못하냐" <천로역정 1894>

"박진사의 위인이 졈잔코 인자하고 근엄하고도 쾌활하야 어린 사람들도 무셔운 션생으로 아는 동시에" <이광수의 무정 1917>

 

등에서 보듯 '의젓하다'는 의미를 띤다. 이로써 보면 형태 변화와 함께 의미 변화가 20세기 이전에 이미 완료되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졈잖다는 제1음절의 모음이 단모음화하여 '점잖다'로 변한다. '점잖다'에 대한 작은 말은 '잠잖다'다. 흥미로운 것은 '점잖다'를 통해 '점잔'이라는 명사가 만들어진 사실이다. 현대국어 '점잔이(점잖은 사람)'나 '점잔을 빼다, 점잔을 피우다' 등의 '점잔'이 바로 그것이다. 

 

요즘은 세상이 하도 어지럽고 수상하여 '점잖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저 잘날 사람, 언죽번죽한 사람 천지다. '점잔이'가 많아야 품격 있는 사회다. 어려서 주위 집안 어른들이 그토록 마르고 닳도록 '점잖은 사람'을 강조하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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