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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괜찮다라는 말 속에서 찾아지는 관계의 문화

by 61녹산 2023.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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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유
괜찮아유

 

 

'괜찮아유~~'라는 유행어를 만든 텔레비전의 코미디 프로도 있듯이 한국 사람들은 괜찮지 않을 때에도 '괜찮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북한 사람들도 '일없다'라고 하니 이는 우리 민족의 특수한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다. 속으로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인데도 '괜찮아유~~'가 나온다. 아마도 남이 걱정할까 봐, 자신의 약점을 들킬까 봐 사용하는 듯싶다. 서정주의 시 <내리는 눈발 속에는>에서 괜찮다라는 말이 네 번이나 되풀이되는데 이는 오히려 그 말이 괜찮지 않다. 괜찮지 않다로 들린다. 역설법인 것이다. 

 

  괜찮아유~~에 담긴 참뜻을 이해하려면 관계를 중시하는 동아시아 문화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괜찮다'라는 말은 '관계하지 아니하다'의 긴 말이 여러 차례 줄어서 된 말이기 때문이다. 서양은 곧 법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한다면 동양은 관계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중국의 '꽌시'가 중국사업 용어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한국의 '정', '덤' 문화가 바로 증거이다. 미국의 한 외교관은 중국을 '개인적 집단주의', 일본을 '집단적 개인주의'라고 부른다.

 

  누에를 치는 방법을 분석하다 보면 재미난 점이 도드라져 드러난다. 누에는 대단한 식욕가다. 그러면서도 뽕잎이 아니면 입에 대지 않는 아주 까다로운 식성을 가진 귀족 가축, 벌레이다. 그래서 누에 치는 법이 그 나라의 문화마다 틀리게가 아니라 다르게 자리잡고 있다. 독일에서는 누에가 아무것이나 먹을 수 있도록 아예 그 누에의 종자를 바꿨다고 한다. 독일의 나치가 인종 개량을 그리고 인종 말살 정책을 괜히 썼던 것이 아니다. 철저한 개인주의로 모든 사물의 존재를 전체가 아니라 작은 한 원자로 파악하는 서구 합리주의를 대표한다.

 

  우리는 누에의 종자를 고치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 습성을 길들여 자기에게 편하도록 뜯어고치지도 않았다. 한국인의 누에 치기 특성은 누에를 내 쪽이 아니라 내가 누에 쪽으로 나가 최대한 누에의 편의를 맞춰주는 쪽으로 발전했다. 누에 먹이인 뽕잎을 썰 때 보릿짚 위에서 썰었느냐 도마 위에서 썰었느냐, 그리고 도마라면 그것이 잣나무 도마냐 괴목 도마냐에 따라 고치의 질이 좋아지고 나빠지곤 한다. 그리고 누에 옆에서는 방아를 찧지 않았고 집 안에 곡성이 나서도 안 되었다. 월경 중인 며느리는 잠실에 드나드는 것을 삼갔다. 결국 온갖 조심과 정성으로 누에를 치다 보면 누에가 달라지고 그것을 키우는 사람의 성품도 달라진다. 누에는 생산성을 사람은 고도의 수양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옛말에 며느리감을 고를 때, 누에를 친 것이 아홉 번이면 업어가고, 다섯 번이면 손잡고 가며, 세 번이면 놔두고 돌아간다고 한 것도 누에 하나 치는 데도 누에와 인간관계를 존중하고 그 관계에서 생산성과 교양성 두 가지를 동시에 얻는 것이다.(一石二鳥)

 

  겉으로만 보기에 생산성과 인간성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문명의 비극인 것이다. 이로 인해 공장은 인성의 사막이 되고 도시는 범죄의온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모든 자연물을 관계로 보는 우리 한국 문화가 4차 산업혁명에서 진가를 발휘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 우수 DNA인 것이다. 이 관계의 문화를 잘 키워가고 제대로만 발전시킬 수 있다면 정말 한국인들은 '괜찮은' 사람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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