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은 아마도 '맘마'와 '지지'일 듯 싶다. 먹을 것을 줄 때 맘마라고 가르쳐 주고 더러운 것을 먹으려면 지지라고 말린다. 에덴 동산에도 선악과가 있었듯이 아무리 귀여운 아이라도 금지의 언어가 있어야 한다. 유아는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이 입으로 가져가는 방법이다. 그래서 장난감을 삼킨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어머니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의약품에는 반드시 어린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라는 경고문이 찍혀 있고 2016년 어린이 사망률(인구 10만명당)은 3.9명으로 10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0살 영아의 사망원인 1위는 질식사라고 한다.
그런데 맘마는 저절로 익힐 수 있지만 지지란 말은 학습을 통해서만 획득되는 문제점이 있다. 지지라는 말은 발음부터가 어렵다. 아이들이 제일 쉽게 발음할 수 있는 것은 맘마처럼 'ㅁ' 자가 붙은 말들이다. 우리나라의 엄마(어머니)가 그렇고 영어의 '머더(mother)', 불어의 '메르', 러시아의 '마츠'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지는 'ㄷ'이나 'ㅂ' 자 줄을 익히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발음할 수 있는 말이기에 어렵고 발음하기 힘들다. 조금만 과장하면 지지라는 말을 터득해야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이다. 즉 질서와 규율, 욕망과 억제, 옳고 그름 등 사회적 개념의 씨앗이 모두 이 지지라는 말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탁번의 소설 <맘마와 지지>에 이와 관련된 상징적 의미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한밤중에 도둑이 들자 어른들은 무서워 꼼짝 못하고 있는데 아이가 벌떡 일어나 도둑을 향해 '지지'라고 소리 질렀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요즘 속상한 것은 자유방임주의와 과보호 속에서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이 지지 학습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라는 데 있다. 세상에는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고 욕망이 있어도 참고 절제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 몸에 배어 있지 않다. 어린이 비만이 부쩍 늘어가고 10대의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점이 바로 지지 학습을 받지 않았기에 생긴 현상이다. 물론 노인들도 사망 원인 이유가 자살이라고 하니 세대를 불문하고 큰 걱정이다.
지지로도 모자라 '에비'라는 말로 협박을 했던 봉건적 유아 교육도 문제였지만 지지는 없고 맘마만 있는 자유방임의 유아 교육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결석률이 20퍼센트나 되고 고교 중퇴자가 50%를 차지한다는 미국의 통계 숫자들이 남의 이야기만은 아닌 듯 싶다. 유아 교육 뿐이겠는가. 사회 개혁의 언어도 어려운 철학 용어나 경제 용어가 아니라 지지라는 이 단순한 유아 언어 속에 간직된 말이라는 것을 모른다. 먹을 것과 못 먹는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분별할 줄 모르는 데서 생겨난 것이 바로 우리가 제대로 겪고 있는 부패요 비리인 것이다. 절제를 모르는 2023년의 대통령과 검찰의 민낯이 나는 왜 이리 부끄럽고 죄송스럽기만 한지 모르겠다. 교육이란 큰 걸게의 한 조각에 몸을 담고 있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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