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이 맞나요? 숫가락이 맞나요?
현행 한글 맞춤법에 의하면 '숟가락'과 '숫가락', '젓가락'과 '젇가락' 중에서 맞는 표기는 '숟가락'과 '젓가락'이다. '숟가락'과 '젇가락', '숫가락'과 '젓가락'이 아니라 '숟가락'과 '젓가락'이 짝을 이루는 점이 특이하여 관심을 끈다. 이러한 의심은 '숟가락'의 어원을 통해 맞춤법 규정을 조금만 살펴보면 금방 해결이 된다.
숟가락의 문헌상 분포
'숟가락'과 관련된 단어는 이른 시기의 문헌에 보이지 않는다. 19세기 말 문헌에서야 '슐가락, 슈가락, 수가락, 숟가락, 슉갈' 등으로 다양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숟가락'이 19세기 이후부터 쓰인 단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 가운데 '슐가락'이 그 원형에 가장 가까워 보이며, 이는 음성적으로 '술가락'과 같은 것이다.
숟가락 숫가락 술가락
'술가락'을 형태소 분석해 보면 '술'과 '가락'이 결합된 형태로 파악된다. '술'은 15세기 이래 오랫동안 '숟가락'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는 '젓가락'을 뜻하는 '져'와 15세기 이래 줄곧 대립해 왔다. 그러다가 '숟가락'을 뜻하는 '술'은 '밥술(밥을 먹는 데 쓰는 숟가락)', '첫술(음식을 먹을 때에, 처음으로 드는 숟갈)'의 '술', '수저'의 '수'에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현대국어에서 '술'은 '숟가락'이라는 의미를 잃고 "밥 두어 술"에서 보듯 '음식물을 숟가락으로 떠 그 분량을 세는 단위'라는 의존명사로 쓰이고 있다. '가락'은 '길고 가는 물건'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술가락'은 '술(숟가락)'을 이용하되 숟가락의 긴 모양에 초점을 맞추어 만든 단어로 보인다.
술 + 가락
한편 19세기 문헌에 '슐가락'과 함께 나타나는 '숫가락'은 '술가락'에 사이시옷이 개재된 '숤가락'에서 'ㅅ' 앞의 'ㄹ'이 탈락한 어형이다. 20세기 초 문헌에는 '숫가락, 술가락'과 더불어 '숟가락'도 보이는데 빈도가 조금 적다. '숟가락'은 '숫가락'과 비교하면 제1음절의 종성 표기에서만 차이가 있다.
숤가락에서 ㄹ탈락으로 숫가락이 된다
이렇게 보면 '숫가락'과 '숟가락' 가운데 역사적으로 맞는 표기는 '숫가락'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숟가락'을 표준어로 삼은 이유는 '숫가락'이 '술가락'에 사이시옷이 개재된 '숤가락'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숫가락'의 제1음절 받침에서 나는 [ㄷ]음이 '술'의 [ㄹ]음에서 아무 까닭 없이 그렇게 변한 음이 아니라 사이시옷의 현실이므로 이와 같은 규정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심짌날 이틄날 숤가락에서 ㄹ탈락으로 삼짓날, 이틋날, 숫가락이 가장 자연스럽다
이러한 규정에 따라 '삼짌날'에서 온 '삼짓날'도 '삼짇날'로 '이틄날'에서 온 '이틋날'도 '이튿날'로 표기하고 있다. 사이시옷이 개재된 어형에서 변한 것이라는 역사적 정보를 놓치고 엉뚱한 규정을 만들어 그에 따라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진짜 문제는 일부 국어학자들도 이러한 규정을 아무 비판 없이 수용한 채 '숟가락, 삼짇날, 이틀날' 등의 어원을 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논란을 회피하기보다는 논란을 학술연구의 핵심과제로 삼아 서로 협력하여 그 결과물들을 국민들에게 돌려드리는 것이 바로 학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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