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서 갈라진 것이 머리가락(머리ㅎ+가락), 손에서 갈라진 것이 손가락, 발에서 갈라진 것이 발가락이다. 그리고 몸 전체에서 갈라진 것이 가랑이라고 할 때의 그 가락[脚 : 다리각]이다. 영어의 헤드와 헤어, 핸드와 핑거는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지만 우리의 인체어를 보면 이렇게 몸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 구조체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과 논밭을 '가는 것'도 같은 뿌리에서 생겨난 말이라고 하니 자못 호기심이 땡긴다. 어원이 아니라도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는다(주경야독 : 晝耕夜讀)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교육과 밭갈이는 항상 같은 개념으로 한데 묶여 써왔다. 한마디로 교육이란 마음밭(心田)을 가는 쟁기질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맛있는 살을 만드는 유일한 비법은 딱 한 가지다. 흙을 잘 갈아주는 길밖에는 따로 없다. 벼를 베고 난 벼 그루는 그냥 불로 태우지 않고 봄이 될 때까지 세 번 정도 깊이 갈아 완전히 분해시킨다. 그리고 그 때 계분(鷄糞 : 닭의 똥으로 만든 비료) 같은 유기 비료를 넣어준다. 그러면 공기가 깊이 그리고 고르게 스며들어 굳어 있던 흙들이 싱싱하게 되살아난다. 이러한 밭갈이의 근본 정신을 놓치고 농약이나 마구 뿌려대는 오늘의 안이한 농업기술을 보면서 오늘의 학교 교육이 함께 비춰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메말라 굳어져가는 정신을 온전히 갈아엎는 것을 말한다. 고정관념이나 타성에 젖은 마음에 새 지식의 공기를 스며들게 하여 오로시 담기게 하는 것이다. 한때 세계 최강국이었던 19세기의 영국이 그리고 20세기의 미국이 점점 쇠퇴해 가고 있는 그 근본 원인은 바로 제때 밭갈이를 해주지 못한 교육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만 해도 세계 제일의 공업국이었던 영국이었지만 그 당시 국민 중 3분의 2개 문맹이었다. 그에 비해 뒤쫓아오던 미국의 공업 중심지인 뉴잉글랜드 지방에서는 95%의 성인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그래서 영국을 앞지른 미국이 이제는 고등학교 학생의 반수가 중도 퇴학을 당하고 대부분의 공장 노동자(65%)들이 글을 몰라 작업 지시서를 읽지 못하는 문맹국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결국 20세기의 선진국들은 교육의 위기를 심하게 앓고 있다. 남의 걱정을 할 때가 아니다. 입시 부정으로 땅에 떨어진 한국의 교육 환경은 지금 산성화 된 흙처럼 점점 쓸모없이 굳어져만 가고 있다. 웬만큼 자주 그리고 깊은 쟁기질을 하지 않고서는 다시 살리기 어려울 지경에 도달해 가고 있는 중이다. 물갈이나 농약을 치는 극약 처방이 아니라 그 근본적인 토양을 바꾸는 밭갈이의 교육 정책이 조속히 나와야 할 때이다.
"가르치다"가 밭갈이와 같은 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하고 교육의 본질을, 교육의 근본 정신을 되찾을 때이다. 학교는 사회와 완전히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손가락, 발가락처럼 우리 몸에서 갈라져 나온 한 부분이다. 사회와 학교는 유기적 존재들이다. 한국말의 가르치다가 밭을 가는 것에 그 어원을 두고 있는 데 비해 교육(Education)이라는 영어는 젖을 먹인다는 라틴계의 에듀카레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서양에서의 교육은 젖을 먹이는 것, 그래서 성장시킨다는 의미가 강하게 작용한다. 한국의 교육이 식물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서양의 교육은 동물의 육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의 토양과 동물의 젖(우리는 학교에서 인재를 배양(培養)한다고도 하고, 북돋운다고도 하는 것이다. 흙에서 식물을 키우는 노하우가 바로 교육 언어 그 자체인 것이다.
근대교육이 들어오면서 한국의 교육철학은 서구적인 것, 즉 식물에서 동물적인 것으로, '밭갈이'가 '젖 먹이기'로 변했다. 식물은 아무리 성장해도 토양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 헌데 동물은 조금만 크면 어미의 젖을 버리고 떠나버린다. 독립적이고 배타적이기까지 한다. 서양의 교육은 젖 먹이기보다 어떻게 젖을 떼는가 하는 훈련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오히려 개성과 독립성을 지향한다는 그럴듯한 포장까지 덧씌워 가면서 말이다. 그러나, 밭갈이는 젖떼기와 같은 이유식 교육이 아니라 끝없이 새 흙을 북돋우는 교육이다. 동물로 가정하면 새 젖을 공급해 주는 평생 교육에 그 중심이 있는 교육이 밭갈이 교육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절실히 되찾아야 할 우리의 교육혁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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