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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낯빛에 담긴 한국문화의 의미

by 61녹산 2023.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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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철의 속미인곡 일부 구절
송강 정철의 속미인곡 일부 구절

 

 

일본에는 지금도 사원들에게 표정 훈련을 시키는 회사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기에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놀란 표정을 짓고 눈과 눈썹을 올리고, 원위치로 돌아가 양미간에 주름 잡고". 이런 테이프의 구령에 맞추어 전 사원이 여러 가지로 표정 운동을 한다고 한다. 안면 에어로빅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미소 훈련은 일본 항공에서 스튜어디스 훈련용으로 만든 테이프가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인간의 몸에는 1백 78개의 근육이 있고 그중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0개가 안면에 모여 있다고 한다. 평소에는 그 근육의 극히 일부밖에 쓰지 않기 때문에 이 안면 체조를 하면 남보다 훨씬 더 표정을 풍부하게 꾸밀 수가 있다. 물론 그 목적은 고객들에게 항상 미소와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 친절을 서비스하자는 데 있을 것이다. 이제는 진짜 얼굴과 거짓 얼굴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아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는 표정 관리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표정이라는 것은 원래 감정이나 기분이 얼굴에 나타나는 것으로 그 말 속에는 잘 관리된 얼굴이라는 인위성이 담겨 있다. 

 

'낯빛'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에는 표정이란 말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알뜰살뜰한 뜻을 가지고 있다. 표정이라는 한자 말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마음의 정(情)을 겉으로 나타낸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마음을 가시화하여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요, 겉으로 꾸며 보이는 것이 표정이다. 이것이 극단화하면 슬픈 때에도 웃는 표정을 짓고 우스울 때에도 눈물을 짓는 것이, 표정을 전업으로 하는 배우의 얼굴이 된다. 

 

그러나 낯빛은 감정을 겉이 아니라 오히려 안으로 숨기려고 할 때 생긴다. 1백 가지 이론보다 松江(송강)의 시가 한 편을 읽어보자. 송강은 <속미인곡(續美人曲)>에서 이 낯빛이라는 말을 절묘하게 구사하여 한국인의 섬세한 표정관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 있게 보여준다. "반기시는 낯빛이 예와 어찌 다르신고"라는 시구가 바로 그것이다. 이때의 낯빛은 그냥 표정이 아니라 표정 속의 표정이다. 겉으로 아양을 떨고 미소를 짓는 꾸민 표정이 아니다. 그것은 굳게 닫은 창문 틈으로 어렴풋이 한줄기 빛이 새어나오는 것처럼 낯빛은 감추고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배어나오는 내면의 표정이다. 송강이 말하는 그 낯빛은 표정 훈련이나 미소 체조로 찍어낸 그런 물리적 표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 민족은 직접적으로 자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면의 표저, 그것이 낯빛이 되고 내색이 되는 것이다. 표정은 외색(外色)이라고 한다면 낯빛은 바로 내색(內色)인 것이다. 그래서 이 낯빛을 읽을 줄 모르는 서양 사람들은 한국인을 평가할 때 쉽게 무표정하다고 말해 버린다. 칼집에 들어 있는 칼날을 보고 칼날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그들이 무표정하다고 하는 그 낯빛 속에서 천 가지 만 가지 섬세한 감정의 굴곡과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낯빛이라는 말이 더욱 재미난 것은 낯은 얼굴이니까 顔(얼굴 안)이고 빛은 그 뜻대로 색(色)이기에 낯빛을 한자로 고치면 안색(顔色)이 될 것이다. 그런데 안색이라고 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는 뜻보다는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점이 재밌다. 늙은이라고 하면 낮춤말이 되고 노인이라고 하면 높임말이 되는 한자어 우위의 풍토 속에서도, 낯빛이란 말만은 희한하게도 안색보다 훨씬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내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 민족 특유의 그 낯빛 문화 속에서 우리 민족이 살아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낯빛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다. 표정 훈련보다는 남들의 낯빛을 잘 읽는 섬세한 감수성이나 눈치 훈련을 쌓는 것이 더 효과가 크다. 그러면 무뚝뚝해 보이는 한국인의 불친절 속에서도, 오히려 판박이 일본인의 미소보다는 더욱 따뜻한 친절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반대로 웃는 얼굴에서도 무서운 태풍의 예고를 들을 수가 있다. 사회, 정치, 경제 이 모두를 움직이는 것도 그런 낯빛이다. 송강의 가사는 단순한 사랑의 시가 아니었다. "반기시는 낯빛이 예와 어찌 다르신고"라는 그 변화는 바로 달라진 정치의 낯빛이기도 했던 것이다. 낯간지럽고 닭살이 돋는 표정 훈련보다 송강의 가사를 읽으며 손님들의 낯빛을 잘 헤아려 속마음의 가려운 곳을 적절히 긁어주는 한국적 서비스 정신을 어떻게 살리는가? 거기에 한국 미래의 낯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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