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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말미잘의 어원 : 말의 항문을 닮은 생물

by 61녹산 2023.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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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잘
말미잘

 

 

말미잘은 바다에서 살며 대부분이 암석에 착생하고 다른 동물이나 모래진흙 속의 돌이나 조가비에 붙는 것들도 있으며, 어떤 것은 떠다니기도 한다. 착생하는 것도 조건에 따라 이동할 수 있다. 몸은 원통형이며 위쪽에 입이 열려 있고 항문은 없다. 몸은 골격이 없이 말랑말랑하고 체벽의 근육은 발달하였다. 입 주위는 여러 개의 촉수가 나 있고, 체벽의 안쪽에는 격막(隔膜)이 붙어 있다. 크기는 5∼10㎜에서 60∼70㎜까지 다양하다. 플랑크톤을 비롯하여 작은 물고기·새우·게 등 동물질이 촉수에 닿으면 무엇이든지 먹는다. 촉수에는 독물질이 들어 있는 자세포(刺細胞)가 많이 있어 촉수에 닿은 먹이를 자세포 속에 간직하고 있던 자사로 찔러 마취시킨다.

소화관은 없고, 몸 속의 빈곳을 위강(胃腔)이라 하며 여기서 먹이를 소화하고 찌꺼기는 입을 통하여 밖으로 내보낸다. 체벽과 촉수는 신축성이 매우 높아 건드리면 촉수와 체벽을 심하게 움추린다. ≪자산어보 玆山魚譜≫에는 석항호(石肛蠔)라 쓰고 속명을 홍말주알(紅末周軋)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특정종을 지칭한 것이다.

 

말미잘의 외양은 몸은 원통이고, 몸 끝에 왕관 모양의 화려한 촉수가 뻗어 있으며, 입과 항문이 하나로 되어 있다. 곧 몸의 구조가 단순하고 원시적이어서 몹시 흉측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붕장어를 잡으려고 바다에 던져둔 주낙에 걸려 올라오면 재수 없다고 걸리는 족족 버렸다. 그러던 말미잘이 '붕장어 매운탕'에 보조재로 들어가면서 여름철 보양식 '말미잘 매운탕'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지금 부산시 기장에서는 여름철 원기를 돋우는 보양식으로 '말미잘 매운탕'을 특별 음식으로 먹고 있다. 

 

말미잘이라는 말은 1950년대 이후 문헌에서야 발견되나 일찍부터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전으로는 <국어대사전 1961>에 처음 올라 있다. '말미잘'은 '말미주알'에서 줄어든 어형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미주알'은 '항문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을 가리킨다. 이를 '밑살'이라고도 하는데, 그저 항문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미주알고주알'의 미주알도 그와 같은 것이다. 

 

미주알은 그 동의어인 밑살을 통해 추정해 보면 '밑(항문)'과 '살ㅎ > 살'을 포함하는 어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알'은 '배알(배살ㅎ, 창자), 창알(창자)' 등의 알과 같은 것이어서 '살ㅎ'에서 변한 것임이 분명하다. '밑'과 '살ㅎ'이 속격조사로 연결된 형태가 심하게 변형되어 '미주알'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보면 미주알은 '밑(항문) 부분에 있는 살' 정도로 해석된다. 이러한 의미는 '미주알'의 시제 의미와도 부합되기에 근거가 충분하다 하겠다. 

 

'말미주알'의 '말'은 타는 동물 말[馬]을 가리킨다. 부산시 기장에서는 '말미잘'을 '몰심'이라고도 하는데, '몰'은 중세국어 '말(아래아)'에서 변한 것이어서, 이로써도 말미잘의 말이 마(馬)의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말미주알은 말의 항문으로 해석되며, 말미주알에서 줄어든 '말미잘' 또한 그러하다. 말미잘의 구반(口盤) 가운데 입(또는 항문)이 마치 '말의 항문'과 같은 모습이어서 '말'과 '미주알'을 이용하여 그 명칭을 만든 것이다. 방언형 '말똥구녁(전남), 말똥구먹(전남)'은 이러한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사물을 얼마나 예리하게 관찰했으면 바다에 사는 자포동물(刺胞動物)의 명칭을 '말의 항문'을 끌어들여 만들었을까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한편 말미잘의 '말-'은 '크다[大]'는 뜻의 접두사일 가능성도 열어놓아야 한다. 이는 '말-'을 '말매미, 말벌' 등의 그것과 같은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의 주장이다. 접두사 '말-(大)'은 명사 '말[馬]'에서 온 거이다. 이에 따르면 말미잘은 큰 미주알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말의 항문'이라는 주장보다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말미잘 : 바다의 아네모네
말미잘 : 바다의 아네모네

 


아네모네란 꽃이 있다. 봄바람을 타고 잠깐 피었다가 스쳐가는 바람결에 지고 마는 화려하지만 너무도 연약한 꽃이다. 그리스 신화 속의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는 자신의 아들 에로스(로마신화의 큐피터)의 화살을 맞고 아도니스라는 청년과 사랑에 빠진다. 신과 인간의 부질없는 사랑은 결국 아도니스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고 슬픔에 젖은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에 생명을 넣어 아네모네 꽃을 피웠다. 그래서 꽃말이 '사랑의 괴로움'인가 보다.  여기서 아네모네는 그리스어의 아네모스 (Anemos / 바람)에 어원을 두고 있다. 말미잘(산호충강 육방산호아강 해변 말미잘 목에 속하는 자포동물의 총칭)을 영어로는 바다의 아네모네(sea Anemone)라고 부른다. 말미잘이 무성한 곳을 찾으면 조류에 하늘거리는 촉수의 화려함이 마치 한 떨기 꽃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말미잘은 입과 항문이 하나인 자포동물의 일종이며 화려한 촉수는 지나가는 작은 물고기를 유혹하여 포식하는 도구로 사용 된다. 그런데 말미잘은 민감한 동물이다. 화려한 촉수를 뽐내다가도 위험을 느끼면 순식간에 촉수를 강장 속으로 거두어들여 화려함을 감추고 뭉텅한 원통형의 몸통만을 남긴다. 몸통만 남은 말미잘은 아무런 매력이 없다. 다시 말미잘의 화려함을 보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인내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강장 속에 숨어있던 촉수가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며 말미잘은 새롭게 활짝 피어난다. 말미잘의 촉수가 화려하고 매력적이라 해서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혼쭐난다. 이들 촉수에는 독을 지닌 자포가 있어 침입자나 먹잇감이 접근하면 총을 쏘듯 발사하기 때문이다. 자포가 지니는 독성은 작은 물고기를 즉사시킬 정도인데 사람도 피부에 직접 닿았을 때는 피부발진이 생기며 심한 경우 호흡곤란 등으로 상당기간 고통을 당한다. 말미잘의 화려함에 유혹되어 잘못 건드렸다가 고생하다 보면 아네모네의 꽃말 ‘사랑의 괴로움’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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