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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상표 이름이 일반명사로 굳어진 말들 : 정종, 호치키스, 포스트잇

by 61녹산 202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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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유연제 : 피죤
섬유유연제 : 피죤

 

'빨래엔 피죤'이란 광고 문구로 유명해진 섬유유연제가 있다.

피죤은 1978년 출시된 국내 첫 섬유유연제다. 27년 간 섬유유연제 1위 제품의 명성을 이어가며 소비자들에게 '섬유유연제=피죤'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피죤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섬유유연제를 일컫는 보통 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특정 상품의 대명사가 된 브랜드에 대해 알아보자. 선선한 날씨에 제격인 바바리코트의 인기는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데 사실 바바리코트의 정식 명칭은 '트렌치코트(Trench Coat)'이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트렌치코트가 바바리코트로 불리게 됐을까? 영국 버버리(Burberry)사에서 출시한 트렌치코트는 오래도록 사랑받으면서 '버버리코트'라는 단어를 유행시켰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의 바바리라는 발음을 그대로 가져와 '바바리코트'로 부르게 된 것이다. 

'폴로 셔츠' 역시 고유명사에서 대명사가 된 대표적 사례다. 폴로 랄프로렌은 피케 셔츠로 유명한 패션 브랜드인데 이 브랜드의 피켓 셔츠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옷깃이 있는 티셔츠는 모두 폴로셔츠라 불리게 됐다.

사륜구동 군용차를 '지프차'라 부르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지프차는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 지프(Jeep)에서 유래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은 3명 이상 승차가 가능하고 어떤 길에서도 달릴 수 있는 다목적 사륜구동 군용차가 필요했다. 이를 지프 사가 생산하게 됐고 전쟁 후에도 지프차는 계속 사랑을 받았다. 다른 회사에서도 민간용으로 개조해 비슷한 모델을 생산했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형태의 사륜구동 자동차를 지프차라고 통칭했다.
  
'호치키스'라는 말 역시 스테이플러 대신 널리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스테이플러 제조사 중 하나인 E. H. 호치키스(E. H. Hotchikiss)에서 유래했다. 일본에 처음 수입된 스테이플러에는 E. H. 호치키스 사의 상표가 새겨져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이 상표 그대로 부르기 시작했고 이 이름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로 넘어오게 됐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스테이플러와 호치키스를 혼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다고 한다.

샤프라는 단어도 제조사 이름이 보통명사로 굳어진 경우다. 영어권에서는 샤프를 '메커니컬 펜슬(Mechanical Pencil)'이라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샤프'라는 이름이 일반화돼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자동식 연필이 일본 기업 '샤프(Sharp)'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포클레인 역시 제조사명에서 유래했는데 1960년대 한 프랑스 기업의 굴삭기가 국내에 처음 도입됐다. 당시 굴삭기의 정식 명칭은 '엑스케베이터(Excavator)'였는데 공사 관계자들은 굴삭기에 적힌 'Poclain(포클렝)'이란 제조사 명을 중장비의 명칭으로 오인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우리나라에선 영어식 발음을 따라 포클레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국내에도 대명사가 된 브랜드가 적지 않다. 조미료 브랜드로 잘 알려진 미원이 대표적이다. 출시 당시 '한 가구에 미원 한 봉지씩은 있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60~1970년대 최고의 인기 선물로 꼽힐 정도였는데 1956년 출시 이후 오랫동안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미원은 지금도 조미료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칼에 베었을 때 제일 먼저 찾는 대일밴드도 빼놓을 수 없다. 1971년 대일화학공업에서 출시한 대일밴드는 수십년 간 일회용 밴드 시장을 선도한 제품이다. 지금도 많은 소비자들이 일회용 밴드보다 대일밴드라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지만 일회용 밴드 제품이 다양해지면서 현재 대일밴드의 시장 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렇듯 하나의 브랜드가 대명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수십 년간 브랜드의 명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 장수 브랜드들의 도전과 개척정신, 그리고 품질제일주의는 오늘날에도 브랜드의 가치를 빛내고 있는 듯하다.

 

 

스테이플러 : 호치키스
스테이플러 : 호치키스

 

추석은 음력으로 8월 15일이다. 이날은 '중추절' 또는 '한가위'라고도 한다. '한'이란 말은 '크다'란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란 뜻의 옛말이다.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란 것이다.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 가운데 약주는 어느 지방에서든 빠지지 않는다. '약주(藥酒)'는 맑을 술의 다른 말이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술을 점잖게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맑은 술이란 다름 아닌 '청주(淸酒)'를 가리킨다.

 

그런데 요즘도 이 청주를 가리켜 '정종'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 '정종(正宗)'은 일제 강점기 때 들어온 일본의 청주 상표 중 하나가 널리 쓰여 일반명칭처럼 잘못 굳어진 것이다. 이 말은 일본 전국시대를 누볐던 다테 마사무네란 사람에서 유래했다. 다테 마사무네는 도요토미 히데오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잇는 유명한 사람인데, 그의 가문에서 자랑하는 두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바로 정교하고 예리한 칼이고, 다른 하나는 쌀과 국화를 빚은 청주였다. 옛날 일본 사람들은 청주를 빚으면서 가문의 이름을 붙였는데 이 술맛이 너무나 좋아 사람들이 이를 가리켜 '국정종(菊正宗)'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청주
정종 vs 청주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정종'이란 말은 일본말 마사무네를 우리음으로 읽은 것이고, 이는 옛날 일본의 수많은 청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예로부터 써 오던 일반명칭은 '청주'이다. 그러니 '정종'을 굳이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본래 고유명사이던 게 일반명사처럼 널리 쓰이는 말이 꽤 있다. 

 

크레파스, 포스트잇, 호치키스, 스티로폼, 포클레인, 지퍼, 바바리, 롤러 블레이드, 바리캉, 샤프펜슬

 

이들 가운데는 바꿔 써야 할 말이 있고, 적절한 대체어가 없어 그대로 굳은 말도 있따. 외래어(정확히는 외국어)가 지나치게 많은 글은 읽기에 자연스럽지 않다. 문제는 '지나친 외래어 사용'의 기준을 어디까지로 잡느냐 하는 것이다. 이때 흔히 제시되는 게 우리말 대체어가 있느냐의 여부일 것이다.

 

'크레파스'는 일본에서 만든, 막대기 모양의 화구(畵具)를 나타내는 상표명이다. 프랑스어 크레용(crayon 그림을 그리는 막대 모양의 채색 재료)에 파스텔(pastel)을 결합시켜 만든 말이다. 일본말로는 구레파스인데, 이를 그대로 읽어 나이 든 사람들 중에는 지금도 [구레빠쓰]라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우리가 미술용품을 말할 때 본래 용어인 크레용을 두고 굳이 일본에서 만든 크레파스란 말을 쓸 이유는 없을 것이다.

 

포스트잇 : 붙임쪽지
포스트잇 : 붙임쪽지

 

'포스트잇(post-it)'은 미국으 3M사가 만든 상품명이다. 한쪽 끝의 뒷면에 접착제가 붙어 있어 종이나 벽에 쉽게 붙였다 떼었다 할 수있도록 만든 종이쪽을 가리킨다. 오래도록 마땅한 대체어없이 그냥 포스트잇으로 불리던 이 말은 2004년 11월 국립국어원에서 '붙임쪽지'란 말로 바꿨다. 아직 설익은 말이지만 단순히 포스트잇이라고 하기보다 붙임쪽지라고 하면 의미가 훨신 분명해진다.

 

'여러 장의 종이를 사이에 끼우고 누르면 ㄷ자 모양의 가는 꺾쇠가 나오면서 철하게 만들어진 기구'를 '호치키스(Hotchkiss)'라고 한다. 이런 기구를 나타내는 말은 '스테이플러(stapler)'이지만 호치키스란 상표명이 유명해지면서 지금은 원래의 일반 용어를 밀어냈다.

 

단열재나 포장재료 등으로 많이 이용되는 '스티로폼(styrofoam)'은 속에 작은 기포를 무수히 지닌 가벼운 합성수지이다. 이 역시 원래 상표명이데 이 제품이 대중적으로 쓰이면서 보통명사화했다. 화학 용어로서의 정확한 말은 '발포 스티렌 수지'이지만 일상 용어로는 쓰이지 않는다. 스티로폼으로 외래어 표기가 정착되기 전에는 '스티로폴' 또는 '스치로폴' 등으로 쓰이기도 했으나 모두 잘못 쓰던 것이다.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며 다른 것과의 관계를 구별 짓는 과정이다. 그렇게 탄생한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한다는 것은 그 말이 '상징'의 힘을 갖췄다는 것을 뜻한다. 수사학적으로는 일종의 전의(轉義)를 통한 어휘화이다. 이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아 부족한 어휘의 공백을 메워주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런 점에서 위에 나온 말들을 모두 굳이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경우라면 가능한 한 대체어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또 태생적으로 적절치 않은 말도 구별해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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