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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의약품 설명서 속 전혀 알 수 없는 말들 : 섬휘안점 유천포장 객출부전

by 61녹산 202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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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사용설명서 속 어려운 용어
어려운 용어 쉬운 용어로

 

 

염좌(삠), 면포(여드름), 진해제(기침약), 하제(설사약) 등 소비자가 의약품 설명서를 읽어도 도무지 알 수 없었던 단어들이 점차 설명서에서 사라지게 된다.

식약청은 의약품 사용설명 용법, 주의사항의 전문용어 중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개선 가능한 용어를 발굴해 쉬운 용어로 개선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식약청에서 주로 개선하는 용어는 한자 또는 영문으로 된 전문용어(기면→졸음, 헤르니아→탈장), 한자로 된 줄임말 표기를 쉽게 풀어서 표기(밀전하여→뚜껑을 꼭 닫아, 점증요법→점차 양을 늘이는 방법) 등이다.

예를 들어

 

"교상으로 미란하면 이 약을 도찰하세요"

 

라는 난해한 약 설명 대신,

 

"물린상처로 인해 짓무르면 이 약을 문지르세요"

 

로 이해하기 쉽게 바뀌게 된다.

이번 조치가 정착될 경우 일반의약품 등을 접하는 소비자들이 약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할 수 있어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식약청은 알기쉽게 풀이된 용어들을 각 제약사에 배포해 일반의약품 용기포장 또는 사용설명서를 쉬운 용어로 기재하도록 권고하고, 향후 의약품 허가사항에도 쉬운용어를 반영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의약사 등 전문가단체 통보해 의약품 처방 및 복약지도에 참고토록 하고, 소비자단체에도 통보해 일반 소비자들이 의약품 사용설명서등을 읽고 이해하는데 참고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식약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전문용어 중 개선가능한 표현을 발굴해 점차 쉬운용어로 개선해 소비자가 이해하기 쉬운 의약품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의약품 사용설명서 기본 형식
의약품 사용 설명서 기본 형식

 

섬휘안점, 유천포장, 객출부전, 흉내고민, 태자독성, 담즙울체.

 

고사성어 같기도 하고 무슨 암호 같기도 한 위의 난해한 말들은 엄연히 우리말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들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는 아니고, 일부 사람만 알아보는 전문 용어에 해당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제법 자주 그것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기에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대체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다른 말을 살펴보면 감을 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염좌, 열창, 건선, 소양증, 난청, 농양, 동통, 이명, 현기, 발한, 토혈......

 

이쯤 되면 비로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나라 안 관심이 온통 촛불집회에 쏠려 있던 2008년 6월 말 일부 신문의 지면 한쪽에는 알쏭달쏭한 제목의 기사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게안, 고창, 담마진...... 무슨 뜻인지 아세요."

 

시중 약국에서 유통 중인 일반 의약품의 포장 용기와 설명서에서 찾아낸, 뜻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자 용어들이다. 식품의약품 안전청에서 이미 2002년 '일반의약품 표시기재 가이드라인'을 통해 어려운 한자어로 된 의약품  설명을 쉽게 풀어 쓰라고 권고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한국소비자원이 그 실태를 밝힌 것이다. 식약청은 당시 바꿔 쓸 용어 241개를 선정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권고 사항이고 실제로는 여전히 '가역적(되돌릴 수 있는), 개선(옴), 객담(가래)' 같은 알쏭달쏭한 말들이 사용된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이런 어려운 한자 용어는 사실 조금만 신경쓰면 쉽고 익숙한 말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우선 염좌열창, 소양증은 그중 비교적 낯이 익은 말들이다. 이들을 대체하는 말은 각각 , 찢긴 상처, 가려움증이다. '경면'이란 의식을 잃어 가는 수면에 가까운 상태를 뜻하는데 '졸음'이라 할 수 있다. '계안'이란 낯선 단어는 우리가 잘 아는 티눈이다. 고창장 안에 가스가 차서 배가 붓는 병으로 '고창증'이라 하면 곧 복부 팽만감을 말한다.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담마진'은 '두드러기'를 전문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동계'나 '심계 항진' 같은 것은 심장의 박동이 빨라짐을 말하는데, 두근거림이라 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맥립종'이라 하면 무슨 큰 질병같이 느껴지지만 실은 누구나 앓아 본 적 있는 다래끼이다. '농양'도 '고름집'으로 순화된 말이다. '화농'은 얼핏 불에 데어 고름이 생긴 것을 말하는 듯하지만 외상을 입은 피부나 각종 장기에 고름이 생기는 것을 뜻한다. '곪음'이라 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건선'도 알 듯 말 듯하지만 '마른비늘증'을 이르는 말이다. '현훈'이라 하면 여간해서 알아 보기 어렵지만 '어지러움'이라 하면 누구나 다 안다. '개선'도 아리송한 단어인데, ''을 가리킨다. '섬망'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바로 '헛소리'를 말한다. 

 

이런 것들은 그나마 <표준국어대사전 1999> 등에 올라 있어 조금만 정성을 들이면 확인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섬휘안점, 유천포창, 객출부전, 흉내고민.......' 등 더 낯선 수많은 용어들은 아예 대사전에도 없고 식약청의 가이드라인에서조차 다루지 않은 것들이다. 의약품의 난해한 한자어 설명이 제조사가 의도한 것이든 무의식적인 결과였든 간에 소비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읽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 일방적인 설명이 소비자의 공감을 얻지 못할 것임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일반적인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읽는 이를 염두에 두지 않은 거창한 한자어, 무겁고 현학적인 표현 등은 곧바로 글쓰기의 실패를 가져온다. 물론 한자어와 쉽게 풀어 쓴 말은 기능이 서로 달라 글의 종류에 따라 적절히 조절해 써야 한다. 다만 일반적인 글쓰기에서는 굳이 어렵고 딱딱한 한자어를 쓰기보다 쉽게 풀어 쓰는 게 자연스러운 글쓰기의 요령이다. 가령 '해후하다, 회동하다'라는 말은 '만나다'를 쓰면 충분할 것이고, '대치하다'나 '무마하다' 같은 말은 '맞서다'나 '달래다'라고 쓰면 글이 훨씬 편해진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최근 의약품의 사용설명, 용법, 주의사항 등 전문용어를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꾸기로 했다.

늦었지만 잘된 일이다. 법조문 만큼이나 어렵고 난해했던 약 사용설명서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바꾸는 일은 빠른 수록 좋다. 전문가들만 아는 용어로 환자들을 주눅들게 했던 어려운 용어는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졸음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을 굳이 기면이라고 표기하거나 탈장헤르니아, 뚜껑을 꼭 닫아밀전하여, 점차 양을 늘리면점증 요법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해 왔다.

복약지도를 제대로 듣지 못한 환자들은 이런 말들을 대할때 참으로 난감하다. 먹는다면 될 것경구투여로 하거나 빈속공복, 문지르다도찰하다, 물린상처교상으로 표현하는 것은 섣부른 지식인들의 장난질이다.

이제 만시지탄이지만 이런 우스갯소리를 식약청이 고친다고 하니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식약청이 강제로 고치기 전에 제약사 사용설명서 작성자들은 잘난체 하면서 한자를 쓸 것 없이 바로 알기쉬운 우리말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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